[2020 책학기] 3강. 배움이 뭔데? (배움의 발견)
이 책을 읽게 된 건, 뒷면에 적힌 추천사를 잘못 이해해서였습니다.
"열여섯 살까지 학교에 가본 적 없던 소녀가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기까지"
이 문장을 읽고, 홈스쿨링을 한 천재 소녀의 이야기구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녀를 키워낸 건, 홈스쿨링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1. 배움의 시작
타라의 아버지는 모르몬교(초기 기독교로 회귀하자 주장하는 종교) 근본주의자였습니다.
이후 대학과정을 마친 타라는 과거 아버지가 조현병과 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타라의 아버지는 모르몬교의 교리에 따라 가족들이 생활해야 하고, 이를 방해하기 위해 정부가 자신들을 해할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부의 도움을 받는 건 타락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타라와 남매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습니다.
타라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았고, 의료기록도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타라는 공교육을 받지 않고 홈스쿨링을 한 것입니다.
타라는 학교 대신 집에서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
저녁마다 자신이 해석한 모르몬교의 교리와 정부의 음모를 설교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낮에는 가축을 돌보고 멸망의 날에 대비한 비상식량을 만듭니다.
10대가 되어서는, 고철 처리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갖가지 위험한 일을 하다 크게 다치기도 합니다.
정부의 의료혜택을 받지 않으려고 약초술을 공부하는 엄마를 따라, 산파 보조를 하기도 하고 에너지 치료제라는 약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 모든 삶을 구성하는 것이 타라의 배움이었습니다.
상식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뜻합니다. 타라의 삶은 아버지와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것이 그녀의 상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말을 섞으면 안되는 존재였습니다. 이쪽 사람(근본주의자)이 아닌 저쪽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자신의 틀거리를 깨부수는 악마의 속삭임이었으니까요
2. 금 간 자신을 발견하기
시간이 가고, 타라는 성장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의구심들이 생겨납니다.
위험한 고철 처리장 일을 하다 살이 찢기고, 뼈가 부르지고, 온몸에 전신 화상을 입은 가족들을 약초와 에너지치료로 다스리는 엄마.
더운 여름 발목까지만 바지를 걷어올려도 창녀라고 욕하고, 공부하고 싶어하는 타라에게 악마가 씌였다며 괴롭히는 아빠.
친절하다가도 자신의 말을 조금이라도 거역하면 머리채를 잡고 목을 조르는 숀 오빠.
이 모든 게 이상하게 보이기도, 정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매일이 혼란스럽습니다. 타라는 자신을 자책하고 괴로워합니다. 마치 눈이 세 개 달린 별에 도착한 인간이 괴물 취급을 받았다는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처럼요.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이라는데, 그 사랑의 방식이 타라를 괴롭게 합니다.
어느 날 먼저 집을 탈출해 대학에 간 타일러 오빠는 그녀에게 대학에 갈 것을 권유합니다.
타일러 또한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그녀에게 건네는 말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내용입니다.
그녀는 고민하다 다른 가족 몰래 교과서를 사 오고 SAT 시험을 준비합니다.
그녀가 공부를 시작한 걸 알아챈 아빠는 그녀를 마녀라 욕하고, 집세를 내라, 생활비를 보태라 요구하며 그녀가 대학에 갈 돈을 모으는 걸 방해합니다.
그러나 악착같이 공부하고 돈을 모아 모르몬교 재단인 브리검 영 대학에 가고, 그때부터 삶의 2막이 시작되지요.
3. 자신을 산산조각 내는 배움
그녀가 대학에 간 건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족과 자신의 생각 중 무엇을 더 믿어야 하는가 말이죠.
가족 바깥의 시간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을 둘러싼 가족의 세계가 진짜인지 톡톡 두드려 볼 생각이었는데, 타라 자신을 산산조각 낼만큼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타라 자신이 조각난다는 건, 자신 뿐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의 관계를 부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다른 하우스메이트가 도착했다. 그녀의 이름은 메리였고, 유아 교육을 공부하는 3학년이었다.
그녀는 일요일 날 모르몬교도가 당연히 해야 할 차림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옷차림 인 바다까지 닿는 긴 꽃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옷차림은 내게 일종의 시불리스(집단의 구성원임을 표현하는 암호)였고, 나는 몇 시간동안이나마 덜 외로웠다.
적어도 그날 저녁까지는 그랬다. 소파에 앉아 있던 매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말했다. "내일부터 강의가 시작되니 미리 장을 봐 놔야겟어."
한 시간 후 집에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두 개의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주일에는 쇼핑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나는 일요일에는 껌 한 통 사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메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달걀, 우유, 파스타 등 장을 봐온 것들을 제자리에 넣기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 쓰는 냉장고에 그런 물건을 하나하나 집어넣을 때마다 주님의 계명을 어긴단 사실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아버지가 건강에 대한 주님의 조언을 어기는 물건이라고 했던 다이어트 콜라를 그녀가 냉장고에서 꺼내는 것을 보고 나는 내 방으로 도망치듯 후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47)
나는 다른 학생들이 질문하는 것을 본 게 기억나서 손을 들었다. "이 단어를 모르겠어요. 무슨 뜻이에요?"
침묵이 흘렀다. 수군거림도, 부스럭거림도 없는 완벽한, 거의 폭력적이다시피 한 침묵이었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도, 연필을 사각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수가 입에 힘을 꽉 줬다. "질문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더니 다시 하던 강의로 되돌아갔다.
종이 울리자 바네사는 자기 공책을 가방에 서둘러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잠시 손을 멈추면서 말했다. "그런 걸 가지고 농담하면 안 돼. 농담할 주제가 아니잖아."
그리고 그녀는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가버렸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교실을 나갈 떄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코트의 지퍼가 고장 난 척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그러고는 바로 컴퓨터실로 가서 내가 질문한 그 단어를 검색했다. 그 단어는 바로 <홀로코스트>였다. (252)
이런 경험은 매일 반복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법, 화장실에 갔다 손을 씻는 것,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교재를 구매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배워야 했지요. 하지만 타라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 두려워 태연한 척 했습니다. 매일이 긴장이었고, 고립이었습니다.
그녀 자신에게 닥친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배움이었습니다. 나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방법이자, 스스로를 깨부수는 위협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깨닫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브리검 영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배움은 그녀를 위협했지만, 그녀는 당당히 부서집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배움은 나를 둘러싼 무언가를 깨뜨리고 그 안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는 걸요.
4. 지식의 성장과 '나'의 성장의 시차
타라가 대학시절,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때 만난 교수가 한 말이 있습니다.
"학생은 가짜 사금파리가 아니에요. 그런 가짜는 특별한 빛을 비출 때만 빛이 나지요.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나가든, 그것은 학생의 본 모습이에요. 늘 자기 안에 존재했던 본질적인 모습. 케임브리지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 안에 가지고 있는 거에요. 학생은 순금이에요. 브리검 영으로 돌아가든, 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학생을 보는 눈은 변할지 모르고, 학생이 자신을 보는 눈도 변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순금도 빛에 따라서는 덜 빛나 보일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빛이 덜 난다면 그게 허상이 거예요. 지금까지 항상 그랬어요."
어떤 말은 사람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습니다.
타라가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건, 이 말을 듣고 10년쯤 더 지난 후의 이야기지만 분명 오래도록 자신을 다독인 말입니다.
저는 아이들을 칭찬할 때면 늘 즉각적인 반응을 바랐습니다. 당장 그들이 변하길 바라며 조급해했지요.
하지만 이 부분을 다시 읽을 때면 교육이란 한방에 터지는 폭죽이 아니라, 오랫동안 서서히 퍼지는 물 속 잉크와도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5. 모두가 '배움의 발견'을 한 건 아니다
타라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집에 남은 나머지 남매들도 같이 떠오릅니다.
책의 마지막 장면, 할머니의 장례식에 모인 가족들은 두 파로 나뉘어 앉습니다.
가족에서 탈출하려 혼자 공부해 대학에 간 리처드 오빠, 타일러 오빠, 타라. 그리고 부모님 밑에서 일하며 아버지의 말대로 사는 나머지 가족.
그곳엔 큰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폭력성이 강해졌고, 타라를 때리고 죽이겠다 협박했던 숀이 있습니다.
타라와 함께 숀에게 맞았었지만, 가족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아 자신의 기억을 왜곡한 오드리도 있습니다.
여전히 밤마다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어머니와 에너지 치료제를 만들면서 그 밑에서 일하는 토니와 루크도 있습니다.
모두가 타라처럼 역경을 이겨내고 고등학교 공부를 독학해 대학에 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타라 또한 대학에서 1등을 하고 장학생으로 케임브리지에 가는 과정이 없었다면, 처음 접하는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런 성적을 받아 '역시 네가 틀렸어'라는 자신과 주변의 비난을 받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배움의 발견'이 가능했을지 생각해봅니다.
6. 역사를 쓰는 건 '바로 나'
배움이란 무엇일까요?
헤르만 헤세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라고 했습니다.
카프카는 "책은 얼어붙은 내면을 깨트리는 도끼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말합니다.
열여섯,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