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책학기] 2강. 공교육에 관한 짧은 생각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코로나로 교육계가 정신없습니다. 개학연기, 그리고 온라인 개학, 오프라인 개학에 관한 논의.
교사들은 수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밑빠진 독에 물붓는 심정입니다.
이럴 때 기운 빠지는 말이 들립니다. "알아서 집에서 공부하는 게 더 편함. 어차피 공부할 애는 하고 안할애는 안함."
그런 것도 같습니다. 열심히 하는 애들은 과제를 바로 올렸지만, 몇 명의 고객님들껜 과제 해달라고 전화를 걸어 사정했으니까요.
어차피 배울 앤 배우고, 안할 앤 안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까지 떠먹여줄 필요 있나? 싶은 생각이 스칩니다.
공교육은 왜 필요한가? 우린 왜 아이들에게 교육을 떠먹이는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한 권의 책을 가져왔습니다.
2019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작가가 쓴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입니다.
흥미로운 논의가 가득한 책인데, 오늘은 그 중에서 '교육'에 관한 내용을 다뤄봅니다.
1. 공교육의 시작
공교육의 시작은 대량생산 시대와 궤를 같이합니다. 대량생산 시대가 되면서 수많은 공장노동자가 필요했고, 이는 도시화와 학교설립으로 이어집니다. 3R, 읽고 쓰고 셈하기를 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금과 같은 형식의 학교가 필요했던 겁니다.
현대사회에서의 공교육은 의무교육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의무교육이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공통된 교육과정에 의거한 교육, 세금으로 운영되는 무상 교육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전 세계의 어린이 중 ( )%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보기] 30% 2. 50% 3. 70% 4. 90%
정답은 4번입니다. 이 내용은 <팩트풀니스>라는 책에 나옵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공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2000년에 있었던 유엔 새천년개발계획에 따르면, "2015년까지 모든 남녀 아동이 초등학교 과정을 완료할 수 있게 한다"가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그 결과, 1999년부터 2006년 사이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54%에서 70%로, 동부아시아와 남부아시아에서는 75%에서 88%로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전세계 어린이 중 90%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그럼 전세계의 교육 평등화는 이루어진 걸까요?
3. "아프리카 애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가."
2009년 여름, 우리는 인도 카르나타카 주 나가사지 마을에서 샨타라마를 만났다. 그녀는 마흔 살로 4년 전에 남편이 맹장염으로 세상을 떠난 후 여섯 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었다. 남편은 가족에게 생명보험금도 연금도 남기지 않았다. 위로 세 아이는 중등학교 이상을 마치거나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그 밑의 열 살 먹은 아들과 열네살 먹은 딸은 학교를 다니다 그만둔 상태였다. 학교를 그만둔 딸은 인근 농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생활이 어려워지자 학교를 보내지 못하고 철든 자녀를 일터로 내보낸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109)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상황이지요? 어렸을 때 텔레비전 후원광고에서 말입니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프리카 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너흰 복받은 거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 애들은 왜 공부를 좋아할까?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지기 때문인걸까?'
과연 그럴까요?
바로 이어지는 뒷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딸을 인근 농장에 보낸 것은 학교를 그만둔 뒤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보기 싫어서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학교에 보냈다.
마을 근처에는 공립 학교는 물론 사립학교까지 여럿 있었는데, 공립학교에 등록한 두 아이가 수시로 학교를 빼먹는 것을 참다못한 샨타라마는 결국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단념했다. 우리가 그녀와 대화를 할 때, 엄마 곁에 있던 열 살 먹은 아들은 학교가 재미없다고 웅얼댔다.
학교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계 전역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는 나라마다 아이들의 결석률이 14퍼센트에서 50퍼센트까지 편차를 보인다. 특히 집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결석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억지로라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거나 아예 그럴 마음조차 없는 부모의 태도 때문으로 보인다. (110)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끄덕였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공부하는 걸 싫어하는데, 아프리카 애들이라고 다를까요?
그런데 다른 점도 있습니다. 바로 높은 결석률입니다. 교육이 권리임에도 학생들은 학교를 자주 결석합니다. 어른들도 학교에 가야할 것은 크게 강조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4. 꼴등을 위한 교육 VS 1등을 위한 교육
우리나라 초등교육은 꼴등을 위한 교육에 초점이 맞춰 있습니다. 부진학생을 지도하는데 큰 시간을 할애하죠. 똑똑하고 알아서 척척 해내는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 가면서 상황은 점점 달라집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죄가 되고, 나의속도가 아닌 입시의 속도에 따라 학습해야 합니다. 성적을 내고, 그에 따라 줄을 세워 대학에 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소득 국가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요?
교과 과정은 체계적이고 과학 중심적인 방향으로 바꾸어 교과서는 매우 두껍고 무겁습니다. 오죽하면 인도 정부가 초등학교 1,2학년생의 책가방 무게를 3킬로그램 이내로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2008년 인도의 교육실태 연례보고서는 5학년생 가운데 2학년 수준의 글을 읽지 못하는 학생의 비율이 공립학교 47퍼센트, 사립학교 32퍼센트였습니다.
이 책의 한 예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초, 마이클 크레머는 교과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케냐 서부 학교로 가 100개 학교 중 무작위로 25개 학교를 선별해 교과서를 지급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교과서를 받은 학생과 받지 않은 학생의 시험 성적에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연구 시작 전에 치른 시험에서 상위권에 속한 학생들은 교과서를 지급한 뒤 성적이 크게 올랐다. 연구자들은 나중에야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케냐의 공용어는 영어이고 학교에서도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교과서도 영어로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영어는 대부분의 아이에게 제3언어(지역 토착어가 제 1언어, 케냐 스와힐리어가 제 2언어)였다. 영어로 된 교과서는 영어가 서툰 대다수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다른 항목(교사 비율 확대 등)을 투입한 실험 결과도 비슷했다. 교수법이나 유인의 변화를 병향하지 않는 새로운 투입은 큰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 (138)
영어로 된 교과서는 극단적 예이긴 하나, 아이들의 학습수준을 반영하지 않은 사례입니다. 교사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영어로 된 교과서로도 공부를 잘 하는 걸 보고, 못하는 아이들을 무시합니다. 너희의 '노오력'이 부족한 거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저의 학창시절이 겹쳐보였습니다. 한글 해석을 봐도 이해가 안가는 영어지문들로 점철된 EBS 수특을 무작정 외우던 10년 전 그때가 말이죠.
4. 교육은 투자의 일종?
수특 영어지문과 고전시가를 달달 외우며 밤을 새던 그땐,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달달 외운 시험으로 점수가 잘 나왔을 땐 우쭐하기도 했지요. 교육이란 나의 노력을 입증하는 수단이고, 내 노력은 언젠가 보상받을거야.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아래 내용을 처음 보았을 땐, 수요 지지자 쪽이 어느정도 공감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공급 지지자란, 충분한 교육기회가 제공되면 알아서 공부를 할 거란 입장으로 학교를 많이 지으면 학생들이 공부하러 올 거란 입장이다. 그리고 수요 지지자란, 확실한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교육을 제공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단 입장으로 교육이 주는 현실적인 이득(평생 수익)이 늘어가면 국가가 간섭하지 않아도 취학률이 높아진다는 입장이다. (112 변형)
그렇다면 교육의 현실적인 이득은 뭔가요? 우리나라에선 좋은 대학에 가고, 높은 소득과 안정성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는 저소득층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을 투자로 생각한다는 건, 아이의 성공한 미래가 이득을 가져다 준다는 뜻입니다. 이는 미래에 연로한 부모를 자녀가 돌보는 이득일 수도 있고, 유복하게 사는 자녀를 보며 부모가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투자'효과가 극적인 아이에게 교육의 기회가 몰린다는 것입니다. 투자효과가 극적인 아이란 똑똑한 아이일수도 있고, 부모가 더 애정하는 아이일 수도 있으며, 미래에 자신을 봉양할 가능성이 더 높은 아이일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출세를 위한 '복권'으로 바라보고, 때문에 아이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알맞은 피드,백을 주기보다는 막연히 높게 기대하고 크게 실망합니다. 그러니 똑똑하고 열의 있는 아이들만 학교에 가고, 엘리트 중심의 학교 수업을 따라갈 만큼 영특하지 못하거나 공부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는 기초교육 이상을 받기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샨타라마의 마을에서 일곱 자녀를 둔 농민을 만났다. 그는 열두 살짜리 막내아들을 제외한 여섯 아이가 초등학교 1,2학년까지만 다니다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던 막내아들을 1년 만에 인근의 기숙형 사립학교로 전학시켰다.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는 소득의 10퍼센트 이상을 막내아들의 교육비로 지출하고 있었다. 막내에게 그렇게 큰돈을 쓰다 보니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자연히 별다른 관심을 쏟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 가운데 막내아들이 가장 똑똑하다고 자랑했다. 심지어 옆에 아이들이 있는데도 대놓고 '멍청하다' ' 똑똑하다'는 말을 거리낌없이 사용했다. 그는 가족 중에서 성공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을 골라 다른 모든 구성원이 그를 뒷받침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가치관을 지닌 듯했다.
부모의 이런 생각은 형제간의 미묘한 경쟁관계를 유발한다.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서 이뤄진 한 연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경우 지능이 높은 학생이 낮은 학생에 비해 취학률이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지능이 높은 형제자매가 있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에 비해 취학률이 낮았다. (131쪽)
마치 몇십 년 전 고도성장기 때 우리나라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장남의 출세를 위해 학교를 다니지 못한 다른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말이죠.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도 겹쳐졌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말할 때 "그건 성공하기 힘들어.", "돈도 많이 못 버는데 문과를 왜 가냐?"라고 말하는 모습이요. 성공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은, 일단 공부해서 대학에 잘 가는 거라며 모든 특성과 흥미를 하나의 길로 귀결시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말입니다. (과연 어른들이 말하는 과정이 진짜 성공가능성이 높은가?에 대해선 다음에 한 권의 책을 다루며 소개하기로 하죠.)
5. 교육의 평등
고등학교 시절 '시험'은 그래도 나의 노력을 평가하는 것이므로, 가장 평등한 사회적 진출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대학' 하나를 기준으로 짜집기된 고등학교 때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지요. 이 생각이 깨졌던 건, 대학시절 뇌과학 책에서 읽은 내용이었습니다.
정확한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노력도 유전이다. 오래 앉아있는 것, 한 가지에 긴 시간 집중하는 것은 유전자의 영향이 크다'는 내용이었지요.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ADHD의 특성은, 선사시대 사냥터에서 큰 역할을 했을 것'이란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학습을 공급자의 측면이 아닌 수요자의 측면에서 보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되고나서 겪는 실제 현장은 번번히 저의 결심을 무너뜨렸습니다. 교사는 한 명이지만 학생은 수십 명인 기울어진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일주일 동안 매일 문자를 보냈지만, 아직도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한숨을 쉽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떠먹여줘야 하나? 다른 애들은 다 했는데 얘는 내 말을 듣긴 하는걸까? 휴, 내가 지식을 떠먹여주기까지 해야해?'
라고 생각하며 아이가 키보드 배틀로 잔소리를 우다다 쓰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 글을 적으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독입니다. 내가 그 아이와 구성해 갈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