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알고 싶다, 진짜 인싸 되는 법
'선생님에게 책을 추천해주세요'
교실에 공지가 붙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책을 추천해달라십니다. 우리가 추천하는 책을 읽어보고 싶으시다네요. 그렇다면 이 책이죠!
선생님, 읽어 보세요!
인터넷 중독 예방 교육을 할 때 선생님이 '게임을 일주일에 얼마나 하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게임 안하는데요?"
그 말을 들으신 선생님이 잠시 고민하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질문을 잘못 한 것 같네요. 휴대폰, 컴퓨터를 일주일에 얼마나 사용하나요? 게임이 아니더라도, 웹툰을 보거나 소설을 읽거나, 유투브를 하는 시간을 포함해서요."
질문이 바뀌자 친구들의 답변도 달라졌습니다. 일주일에 0시간이라 말하던 친구들이 하루에 1~2시간이라 말을 바꿨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저는 유투브를 좋아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반 친구들 중 유투브를 안 좋아하는 친구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직접 유투브 영상을 올리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유투브에서 본 것을 학교에서 따라하거나, 유투브에 나온 인싸템을 학교에 가져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인싸 되는 법>이라는 책을 선생님이 교실에 가져오셨을 때 무척 관심이 갔습니다. 왜냐하면 표지에 네 명의 여자애들이 유투브 영상을 찍는 그림이 그려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목도 '인싸' 되는 법이라니. 우리 반에 이 책을 안 읽읽어본 여학생은 거의 없을 걸요?
교사가 좋아하는 책?! 학생이 좋아하는 책!?
책 추천을 부탁하고 10분 만에 포스트잇이 붙었습니다. <진짜 인싸 되는 법>. 이 책은 제가 구매해서 읽어본 후 교실에 꽂아두었던 책입니다. 제가 추천한 책을 도로 추천받았네요.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땐 엄청 좋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습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 후루룩 읽기 좋은 책이라했습니다. [양파의 왕따일기]와 비슷한 느낌이나, 그보다 깊이가 덜하고 유행을 타는 소재라 오래가긴 힘든 책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교실에서 이 책이 유행했을 때 당황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책과 함께 가져간 다른 책 중에 '여학생들을 저격할 책'은 따로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지요. 우리 반에 한참 연애 바람이 불고 있을 때였기에, 그 책을 여학생들이 좋아할거라 확신했어요. 하지만 저의 예상과 달리 그 책은 시큰둥하게 책장 구석에 계속 꽂혀있고, <진짜 인싸 되는 법>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저와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랬기에 이 책 추천이 반가웠습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책'이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었거든요.
어린이 필독서 = 어린이 고전도서?
몇 년 전 일본작가의 한 소설이 4~5년 동안 소설 베스트셀러 10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책이 훌륭하고 읽어볼 가치가 있어서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베스트셀러를 만드려면 첫 번째 베스트셀러를 다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기를 문학시장의 암흑기라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린이 도서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구글에 '초등학교 고학년 권장도서'를 검색해보세요. 그리고 그 책들의 출판연도를 검색해봅니다. 2005년, 2000년, 심지어 19XX년 출판도서들도 많습니다. 물론 이 책들이 좋은 책이 아니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이런 책들이 권장도서 목록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반 5학년 학생들은 2008년에 태어났습니다. 역사시간에 숭례문 화재를 '자신들이 태어난 해'에 일어난 일로 기억하고, 우리가 '빵꾸똥꾸'라는 말에 웃을 때 옹알이를 하고 있었으며, 겨울왕국이 개봉했을 때 엘사 원피스를 입고 유치원에 간 세대입니다. 아이들에게 손으로 전화를 받는 모션을 취해보라 하세요. 말을 하기 전에 '옆으로 밀기'부터 배운 이 포노사피엔스들은 우리와 다른 모션을 취할 것입니다.
공감과 독서
유명하고 좋다는 고전을 펼쳐놓고 잠드신 적 다들 있으시죠? 남들은 훌륭한 책이라는 데 내가 보면 재미도 없고 공감도 안 되는 책이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책의 삶과 나의 삶에 교차점이 없다면 우리는 깊은 독서를 하기 어렵습니다.
'공감'이란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좋은 독서란 책의 사건이나 주인공에게 공감할 때 발생합니다.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필독서는 과연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요? 사실은 어른들이 감동하고 공감하는 책을 좋은 책이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세상에는 몇 년 간 사랑받은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더불어 현재를 살며 글을 쓰는 좋은 작가들도 많습니다. 우리의 권장도서가 아이들에게 '과거'와 '현재' 모두를 바라볼 수 있게 균형잡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