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단상] 책, 왜 읽으세요? 책, 왜 읽히세요? #05 오래 만나는 법, 약속잡기
INTRO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은 시작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돌진하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한해 두해 나이를 먹을수록 우린 시작점에서 망부석처럼 굳어버립니다. 그건 두려워서입니다. 정확히는 실패라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보다, 실패라는 ‘경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두렵나요? 무엇이 여러분을 시작점 앞에 묶어두나요?
#1
딱 작년 이맘때 생애 첫 다이어트를 했습니다. 직장생활 2년차, 늘어야 할 교수·학습 실력은 안 늘고 살만 늘더군요. 학교에서 이리저리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최고의 친구는 저녁의 탄수화물과 고기, 매운 맛이었습니다. 고3때보다 늘어난 배둘레에 아찔해진 순간,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집 앞에는 달리기하기 적당한 천변이 있는데요. 제가 그곳에서 달리기를 한 횟수를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 것 같나요? 네, 달리기하기가 너무 힘들어서였어요. 달렸다가 걸었다가를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이 살빼는데 참 좋다고 해서(천천히 달리는 조깅과 달리, 전속력 달리기와 걷기를 반복해야 해서 더 힘들더군요), 공복유산소가 참 좋다고 해서 저는 삼일 동안 출근 전 아침 천변은 삼십분씩 달렸습니다. 아이고. 폐가 찢어질 듯해도, 목이 말라 타는 것 같아도, 빈속인 배가 꽈배기처럼 꼬여도 목표지점까지 계속 달렸어요.
그리고 나흘째, 저는 천변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불 속에서 나오기도 전부터, 달리는 상상만으로도 폐가 아프고, 목이 타고, 배가 꼬이는 것 같았거든요. 포기하고 한 시간 더 자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2
그 천변은 출근길이기도 해서, 그후로도 수없이 걸어다녔지만 지금도 달리기를 하러 나서고 싶은 생각은 잘 들지 않아요. 사실 짧은 조깅 정도는 즐겁게 할 수도 있을텐데 불구하고요. 무엇이 제 발을 꽁꽁 묶어둔 걸까요. 조깅을 하지 못하는 제 실력일까요, 제 능력을 벗어나도록 내달린 삼일의 기억일까요.
올해 다시 운동을 시작했지만, 많이 걷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짧은 인생동안 얻은 교훈은 급하게 열정적으로 하는 것보다, 오래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이어트도 일상생활에 무리가 갈 정도로 운동하고 식단조절하며 빨리 끝내기보다, 내 삶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 적게 먹고 많이 걷는 게 좋다고 결론내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하루가 두렵지 않습니다. 편도 삼십분 걸리는 출퇴근 걷기도, 가볍게 운동하러 헬스장에 가는 마음도 어둡지 않습니다.
#3
여러분의 책읽기가 시작점에 멈춰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저 시간이 없어서거나 귀찮아서라면 다행입니다. 시간이 생기면, 귀찮음이 가시면 책을 읽을 테니까요. 하지만 혹시 두려워서 멈춰 있지는 않으세요? 재미없는 책을 꾸역꾸역 완독하느라 지쳤던 기억, 지인이 정말 훌륭한 책이라 추천해서 읽었는데 나는 이해가지 않고 재미없어 왠지 읽고 나서도 주눅들었던 기억, 연말에 한 해 동안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스스로를 질타했던 기억. 그런 기억들이 여러분의 발목을 시작점에 묶어둔 건 아닌지요?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하세요. 최근 독서모임에서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이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이 책의 핵심은 “직관이 먼저고, 논리는 나중이다.”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인간은 일단 마음가는대로 결정하고 이유는 나중에 가져다 붙인다는 거예요. 이미 책에 대한 두려움과 귀찮음이 있는 상태라면, 우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읽지 않겠다’로 결론이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책을 읽지 않는 상황은 합리적인 이유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정당화합니다. 그러니 생각(고민)하지 마세요. 일단 읽으셔야 합니다.
#4
그럼 어떻게 읽냐고요?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움직이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첫째, 책을 곁에 두세요. 읽지 않더라도 가방에 얇은 책을 한 권 넣고 다니거나, 침대 맡에 호흡이 짧은 에세이를 놓아두세요. 처음부터 정자세로 세 시간동안 책을 읽는 건 힘들어요. 십분의 독서가 삼십분이 되도록 도와주는 건 토막독서입니다.
둘째, 약속을 만드세요. 책하고만 약속하면 어기기 쉽습니다. 책과 나 사이에 사람을 넣으세요. 독서모임에 나가거나 북콘서트에 가기로 약속하는 겁니다. 책과 나만 있을 때 우리의 관계는 수직적입니다. 재미있고 유익하면 우리가 매달리고, 재미없고 어려우면 우리는 책을 내팽겨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때 우리의 관계는 수평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 아니라도 우리가 만나면 할 이야기가 풍성하거든요. (이 책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엄청 재미있습니다.)
셋째, 기록하세요. 이건 선택사항입니다. 기록하기가 숙제가 되면 안되거든요. 독서기록장을 쓰는 게 귀찮아서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기록하기 귀찮아 책을 안읽는 사태가 발생하면 안되겠죠.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나의 생각, 마음에 든 글귀, 책에서 생겨난 질문 등을 정리해보세요. 연필로 적어도, 컴퓨터 자판으로 쳐도, 사진으로 찍어도 됩니다. 나중에 모인 걸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답니다.
OUTRO
너무 당연한 소리를 늘어놓아서 당황하셨나요? 네, 책읽기에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습니다. 일단 하는 것, 그것만한 비법이 또 있겠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건 급하게 열정적으로 하는 것보다 꾸준히 오래 하는 것 아닐까요? 오랜만에 글을 쓴 저도, 요즘 3년차 슬럼프에 빠진 건지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 책읽기도 가끔만 하고 있는걸요. 그래도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습니다. 읽고 싶어지면 또 재미나게 읽을 테니까요.
여러분도 부담갖지 마시고, 일단 오늘 한 권 곁에 두세요. 그러면 얼마 안 가 그 책과 만나는 날이 올 거에요.
+
다음 시간에는 번외편으로, 독서모임 잘 고르는 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곧 봬요!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