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촉진제 07> 행복의 가격 - 태미 스트로벨
절약하느라 비참했던 나날의 치료제, 미니멀 라이프.
기계처럼 일하고, 악착같이 모았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야 당연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잠깐의 충동을 참지 못 하고 탕진해대는 소비 문화에 비하면 훨씬 건전했다. 빚 없이 살기 위해, 소득 수준에 맞는 집을 임차했다. 봉투 속 현금을 하나, 둘 세어가며 한 푼, 두 푼 아꼈다. 돈 모으는 게임처럼 즐거웠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다. 종잣돈을 만들기는 했지만, 마음은 계속 허전했다.
공허함의 정체는 '미(美)'였다. 외양을 말하는게 아니다. 외모야 의학의 힘을 빌어 얼마든지 개선가능하지만, 삶의 태도란건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다. 근데 내가 사는 모습이 예쁘지 않았다.
보람 있고 성취감도 있었지만, '언젠가의 아름다운 나날'을 위한 '오늘의 행복 유예'였다. 오늘은 아름답지 않았고, 미래를 위해 약간의 비참함을 감수했다. 목적을 '종잣돈'으로 삼았다. 행복하려면 '오직' 소비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했다는 반증이다. 돈으로 즐거울 수 있는데, 그 돈을 모으려면 지출을 삼가야 한다. 계좌를 털지 못 하다니, 무척 곤혹스러웠다. 돈을 쓰지 못해 불행한 마음은 피로한 얼굴로 드러나거나, 때론 충동구매한 육아용품으로 티가 났다.
나는 사치스럽진 않았으나, 우아하게 검소한 사람은 아니었다. 남들의 비싼 물건이 탐나고, 나의 초라함에 기죽기도 했다. 행복하려고 돈을 모으지만, 모으는 과정이 험했다. 절약한다고 비참할필요는 없었는데, 그 땐 비참하게 절약해야 효과적으로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마치, 공부를 즐기지 못 하고, 잠을 줄여가며 고통 위에 입시 준비를 했던 10대의 나 같았다.
변화를 주고 싶었다. 저택 같은 집으로 놀러가면 탄성이 나온다. 넓고 좋은 집이 갖고 싶어진다. 반면, 아담하면서도 정갈한 집을 보면 부럽다. 집주인을 닮고 싶어진다. 훌륭한 집을 보면 물건에 욕심이 나지만, 미니멀한 집을 보면 사람에 호감이 간다. 내가 사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아 불만이었기 때문에, 나의 관심은 '미니멀 라이프'로 점점 기울었다.
268쪽. 소박한 삶은 즐거움과 기쁨을 거부하며 궁핍을 견디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지속될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박함 선물들, 즉 나를 위한 시간, 자유, 공동체가 깊이 스며든 삶을 뜻한다.
재테크 책에서 점차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책으로 옮겨왔다. 재테크 책은 돈을 모으는 데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었지만, 내게 모자랐던 '아름다움'이 없었다. 내게 필요했던건, '삶이 아닌건 살지 않을지어니, 이토록 삶은 내게 소중한 것이다'를 말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강단있는 태도였다.
이번에 읽은 <행복의 가격>도 울림이 컸다. 제목만 봐도 뻔히 보이는 교훈이 촌스럽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겠지 뭐. 머릿말을 읽지 않았다면, '뻔한 얘기네.'하고 덮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의 매력은 '작가' 그 자체다. 그녀는 살아가는 실천 그 자체로 독자를 설득했다.
3만달러(약 3천만원)의 학자금을 채 갚지 못했으면서,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이 책의 저자, 태미 스트로벨. 28평의 아파트에서 물건을 점점 비우다가, 원룸으로, 그 다음은 3.6평의 작은 집(tiny house)을 지어 살게 된다. 작가의 강력한 행동력에 홀딱 반해, 홀린듯이 읽었다.
필요 없는 건 버리고, 중요한 건 챙기고.
69쪽. (멕시코 치아파스로 자원봉사를 가는 중)
나는 개인 소유물을 줄이는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깨달았다. 인생에는 생각했던만큼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태미 스트로벨은 사는 데 많은 물건이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아무나 범접하지 못 할 수행승과 같은 자세는 아니다. 적은 물건, 작은 집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은 꽤 현실적인 도움을 준다.
그녀는 먼저 안 쓰는 물건을 버리고 팔았다. 새아빠가 원목으로 짜고, 엄마가 직접 포도잎을 그려줬던 와인렉마져 비웠다. 차 두 대를 팔고, 자전거를 들이며, 공유차(car-sharing)서비스에 가입했다. 그러자 좁았던 28평 아파트에 오히려 방 한 칸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집을 점점 다운사이징(down-sizing)할 수 있었다. 자동차에 들어가던 온갖 유지비까지 청산했기에, 태미 스트로벨 부부는 빚에서 해방되었다. 지루한 투자회사도 때려치웠다.
29쪽. 내게 있어 소박한 삶이란, 자동차 없고 빚 없는 생활. 작은 집에 사는 것. 소유물 최소화하기 등을 뜻한다. 누구나 소박한 삶과 행복에 관한 자신만의 정의를 가질 필요가 있다.
태미 스트로벨과 그의 남편은 '돈에서 해방'되었다기 보단, 소유물을 줄여 나가고, 대형 버스 주차장만한 집에 살면서 삶의 유지비를 줄였다. 미니멀 라이프의 근간은 빚을 청산하는게 우선이었다. 빚은 내 능력 이상의 탐심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빚을 다 갚고 나면, 이제부터는 번 돈으로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산다. 저축도 하고, 일은 적게하되, 더 많이 논다.
번 돈 보다 적게 쓸 수 있는 소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력한 무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은데, 미디어의 영향으로 '오직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적정한 소비로 삶에 윤기를 더해주면 좋으련만, 딱 소비라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행복할거란 강박에 사로 잡혀 있다.
51쪽. "작은 집을 선택함으로써 얻는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바로 자유죠. 작게 살면 세상이 커집니다. 금전과 시간 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죠. 지금은 온 세상이 제 거실입니다."
집이 극단적으로 작을 필요는 없다. <행복의 가격>에는 58평에 사는 미니멀리스트, 34평에 사는 8인 가족, 땅콩집에 살며 신생아를 키우는 사례도 나온다. 각자의 상황에서 '빚 없이', '돈에 구애 받지 않는' 상황을 구축해가며 삶의 행복을 좇아간다. 중요한건 어떻게 빚을 청산하고, 삶을 개선시키냐일 뿐, 물건의 개수나 집 평수가 아니었다.
미니멀리스트라 하면, 큰 돈 없이도 자족하며 살 수 있다. 넉넉한 미니멀리스트. 형용모순처럼 느껴지지만, 미니멀리스트들일수록 '넉넉'해진다. 마음이 풍요로워 지기도 하지만, 자산도 두둑해진다. 적은 물건, 작은 집에 살다보면, 시간이 점차로 흐르면서 저축액이 쌓인다. (물론 기본은 빚부터 갚는 일이다.)
속도는 당연히 느리다. 나도 '이걸로 큰 부자되긴 글렀네' 싶다. 하지만 돈 걱정은 없다. 많은 돈 없이도 재밌게 잘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다른 고민은 수두룩 쌓여있지만, 돈 고민은 없다. 그것만 해도 미니멀 라이프의 가장 큰 수완이다. 남편과 단 한 번도 돈으로 다투거나, 울상이 된 적이 없다. 우리의 고민은 육아와 가족, 성평등, 자유 시간 확보, 건강 관리에 쏠려 있을 뿐이다.
21c 전자+금융+화폐+자본주의+4차산업혁명 시대에, 더 요령있는 방법으로 투자를 한다면, 빠르게 돈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목적지를 '목돈'으로 삼고, 맹렬하게 달려가기보다, 목적지를 '간소한 삶'으로 삼고, 살다보니 차츰 모인 돈이 더 좋다.
(취향입니다. 심플 라이프가 정답은 아니죠. / 관련글 : https://dahyun0421.blog.me/221569406427)
옆집 아주머니께서 주신 찐 옥수수, 절약 모임 멤버들이 선물해준 과일, 수*언니와 나눠 먹은 감자전과 와인, 치즈. 큰 아이 하원할 때, 친구들 불러다가 공동육아 하고, 엄마들은 커피에 담소 나누거나, 절약 메세지를 나눈다. 매일매일 따뜻한 이웃들과 부대끼며 살고 싶다.
이렇게 살려면, 큰 집보다 작은 집이 낫다. 유지비를 줄인 덕에 삶의 여유가 찾아왔다. 태미 스트로벨이 전해준 메세지는 책 제목 그대로다.
"You can buy happiness, and very cheap!"
166쪽. 삶의 단순화나 다운사이징이 우리에게 늘 행복만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에도 투자관리회사에서 범죄피해자 대변인으로, 다시 글쓰기로 옮겨가는 과정은 결코 만만찮은, 두려운 변화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날마다 실천가능한 작은 일들을 한 가지씩 해나가는 것 뿐이다.
물건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치밀어 오를 때, 한 번 쯤 다시 복기해볼만한 책이다. 값진 물건을 누릴 때, 포기해야 할 '자유'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집어주기 때문이다. 거대한 쇼핑센터,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사람을 사랑하는 나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니멀 라이프 책을 간헐적으로 수혈해줘야 한다.
저처럼, 미니멀 라이프로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를 다시금 재충전하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어서어서 수혈하시라고요. :-D
블로그에는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더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놀러 오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