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학교를 그만두었나.-5- 회사생활의 시작
차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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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17:17
나는 왜 학교를 그만두었나 -5-
# 회사생활의 시작
2015년 3월 2일.
원래 같았으면 교실에서 새학기 맞이 활동으로 이름표 만들기, 교실 규칙 세우기 활동을
한참 하고 있었을 시간이었지만논현동의 사무실 책상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여러 지역으로의 이동 편리를 위해 서울 용산에 있던 사무실은 IT쪽 역량 강화를 위해 논현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예전엔 많은 회사들이 뭐하러 굳이 비싼 강남쪽에 사무실을 둘까 싶었는데,
역시 내가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고 모르는 만큼 좁은 것이었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던 것 처럼 우리 회사는 교육회사였다.
여러 교육기관,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목적형 사업으로의 교육을 구성, 진행했고
교육 장면에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회사 자체 개발 SW 프로그램이 있었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회사의 교육 SW 프로그램은 현장에서 꽤 반응이 좋았다.
같은 벤처회사 멤버이자, 동아리 선배이기도 한 개발자 오빠가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아이디어가 진화하고 발전하고 살이 더해져서 마치 회사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회사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교육 프로젝트 준비에 참여하게 되었다.
준비라는 것은 내가 이전까지 익숙했던 '이런 것을 하게 되었으니 준비 해 봅시다.'가 아니라,
'이런 교육이 필요합니다.'라고 공고를 낸 여러 기관을 직접 찾아서
'우리가 이렇게 한번 해 보겠습니다' 라는 제안서를 쓰는 것 부터였다.
당연히 다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좌충우돌도 있었다.
나에게는 당연히 아는 것인 부분도 있었고, 그에 반해 회사 사람들에게는 당연한데 나는 이것 또한 모르는 부분들도 많았다.
이 때 준비했던 교육 프로젝트는 특성화 학교에 제안할 '진로' 프로그램이었다.
학교에서의 진로 활동인 만큼 보고서를 쓸 때 나의 접근은 당연히 창체의 자.동.봉.진의 '진로' 영역으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에게 자.동.봉.진은 당연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용어였을 것이다.
클라우드에서 찾은 2015년의 회사 다닐 적 자료에서 발견한 내용이다.
같은 팀원들에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에서의 진로교육을 안내하기 위해 만들었던 자료 중 가져왔다.
한 주제에 대해 수업 과정을 구상할 때에도, 시간에 따른 보고서 형태를 가져왔던 팀원과 달리
나는 '수업'이니 교수학습지도안 틀을 활용한 자료를 사용했고 회사 팀원들에겐 생소한 보고서 형태였다.
회사 기준에서도 교직에 있던 나에게는 달랐던 점이 많았을 것이다.
그때 당시 학교에서 내가 일을 하며 쓴 큰돈으로는 백만원 내외가 기껏해야 전부였다.
학교 근처 실버타운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포함하여 약 30명의 인원이 봉사활동을 다녀오는 학교 특색 사업이었다.
교통비/당일 간식/활동 물품을 다 구매하고도 1회에 25만원 내외의 예산으로 마무리했고
1년에 4번 진행했으니 총 예산은 딱 백만원이 들었다.
그렇게 십원 단위, 백원 단위를 준비하다 보니 한 번 행사에 몇 백, 천 단위까지 올라가는 행사를
준비하는 데에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회사가 비영리 단체도 아닌데 수익을 너무 적게 남기고 예산을 편성하기도 하고,
절대 나쁜 뜻은 없는데 너무 아끼고 아껴 남겨 먹는 예산을 짜기도 했다.
또한 회사에서는 출장, 회의 등 일정에 대한 공유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물론 전체에 영향을 주는 행정적인 부분도 크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일과를 교실에서 혼자의 역량으로 해나가는 일이 대부분인 학교와 달리
회사에서는 같이 해나가야 할 부분이 매우 많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부분이 익숙하지가 않아 공유를 놓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기억에 남는, 가장 달랐던 점으로는 매일 바뀌는 자리였다.
아침에 출근하면 어제의 내 책상이 아니라 그날 앉고 싶은 자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출근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생각보다 배워야 할 것은 매우 많았다.
학교는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어 온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작년의 자료를 참고하여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며 교육을 진행하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제안서, 즉 보고서를 통해 담당자를 설득시켜야 했다.
보고서 안에는 교육이 실현되기 전 교육과정을 통해 어떤 부분을 달성할 수 있고,
달성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가 들어가야만 했다.
각기 다른 기관의 요구에 맞게 보고서를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전에는 행정문서를 볼 때, 맨 첫줄의 목표, 방향, 배경 등은
추상적인 이야기라 생각해서 자세히 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그곳에서 다 시작되어 나오는 것임을 알기에 누구보다 그 부분을 꼼꼼하게 읽어보게 된다.
지금 당장 즐거운 '드론'활동, 'VR'활동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 미래사회에 대한 대비를 위해 고민하고 그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시작된 고민에서 만들어진 아주 구체적이고 작은 단계가 바로 '드론', 'VR'을 통해 이루어지는 활동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때 회사에서 내 몫을 하기에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시기였다.
우리 회사 대표(이자 동아리 선배)는 정말 똑똑했다. 무엇보다 본질을 뚫어 보는 능력이 대단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기로 했다.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만큼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마을버스를 타고 272 버스로 환승해서 논현동, 회사 사무실로 출근했고
늦은 밤이 되서야 회사에서 나오는 생활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매일 깜깜한 한강을 건너면서, 서울은 원래 해가 안뜨는 도시인가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