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학교를 그만두었나. -12-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두 번째 임용고시와, 사립초
모르면 차라리 용감하기라도 해서 속이 편할 텐데, 내가 아는 그 시험이다 보니 두 번째 임고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언제든지 다시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시 돌아가는 길은 녹록치 않았다.
임용 1차 시험 전 날, 새벽 4시까지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때에 계속해서 마음 속으로 되뇌였던 말이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나와 당장 사라진 월급을 걱정 할 때에는 기적 처럼 개인 교육 의뢰가 들어 왔었고, 회사에서 6개월 사용한 노트북에 갑자기 블루스크린이 떴을 땐 전액 환불이 되었으니 말이다.
11월 둘째 주 토요일, 임용 1차 시험을 치고 나와서 이번엔 솟아날 구멍을 내가 미리 뚫어 놓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립 임용 시험과 동시에 사립초 채용을 함께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사립초는 지난 번 탈락의 경험이 있어 이번엔 조금 더 치밀하게 준비했다. 사립초 임용 과정에 자세히 알아보니 5년 마다 근무 학교를 옮기는 공립과 다르게 정년까지 쭉 해당 학교의 구성원으로 근무해야 하기에, 바로 선발하기 보다는 기간제로 어느 정도 근무 태도를 본 뒤 정교사로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임용 1차 시험이 끝나자 마자 바로 사립초에서 3개월 기간제 근무를 시작했다.
2월 중순, 교대를 졸업하고 3월 1일자 발령으로 바로 근무를 시작해서 내 교직 진로에 기간제 경험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참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11월 말 부터 오전 오후까지는 정말 오랫만에 5학년 3반 '담임 교사'로 근무했다. 익숙하면서도 하나 하나 모두 새로웠다.
(생각지도 못했던, 2번 째 임용고시)
퇴근 후 저녁 시간엔 임용 2차 시험을 준비했다. 현역도 아닌데 그렇다고 서울 임용 시험에 대한 정보가 딱히 있는 편도 아니라 스터디 구하기가 꽤나 어려웠는데 그래도 어째저째 구하게 되어 일주일에 2번씩 스터디 모임에 참가했다. 임용 1차 시험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 통과 하긴 했으나 1배수 밖이라 합격 여부가 불투명하여 공립과 사립 둘 다 열심히 준비하라는 결과로 받아 들여졌다.
현직으로 근무 한 뒤 준비하는 임용 2차 시험은 묘하게 달랐다. 우리 모두 경험해 본 그 시험, 임용 2차 시험은 크게 면접, 수업 실연으로 나누어 준비하는데 확실히 면접은 예전보다 훨씬 편했다. 현역때야 교육 경험이 없으니 당연히 백지 상태에서 열심히 외워 넣었던 것을 면접의 답으로 줄줄 다시 풀어 놓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때는 이게 뭔지도 모르고 단어들도 마냥 생소했던 '학폭위'와, '두드림'과, '이질집단 구성'과 '학부모 상담'의 기술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래도 나름 2년 간 현장에서 굴렀던 덕에 학생과 수업, 교사에 대해 물어 보는 '교육관'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이 편하게 나왔던 것이다.
오히려 나는 스터디를 통해 수업 실연에 대해 지적을 받아 이것들을 고치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 했다. 임용 2차 수업 실연용은 체크리스트들의 점수를 놓치지 않아야 할 수업인데 나는 교실에서 내 수업이 어느 정도 습관화 된 까닭이었다.
연습 중에 허공에 대고 불러 오는 여러 개의 학습판, 도움 쪽지, 수준별 학습지, 홈페이지에 게시 된 다음 번 수업을 위한 동영상이 실제 교실에서 준비하기엔 불가능 하며 과하디 과한 학습 단계들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자꾸 요소들을 없애는 듯 했다. 수업 장면을 볼 수 없고 혼자서 수업 하는 연기를 하는 수업 실연이기에 실제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게 정말 수업을 나타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당시에 작성했던 사립초 지역 및 채용 인원 정보)
공립 2차 시험 준비와 함께 사립초 채용 기간도 시작되었다. 대구에는 사립초가 매우 소수이기에 선택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울은 사립초 수가 꽤 많아서 리스트를 작성해 보니 50개가 조금 안되는 학교들이 있었다. 학교마다 워낙 특색이 강하기에 일단 종교가 맞지 않는 학교들을 제외하고 위치를 고려하여 기간제로 근무하던 학교를 포함하여 4개 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3개월 정도 사립초에 있어 보니 공립초의 장단점이 서로 반대 요소가 되어, 당연히 사립초에도 많은 장단점이 존재했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일반 공립에서는 '교과'선생님이 있지만 사립초의 경우 예체능 계열 및 영어 과목의 전문 '강사'선생님이 많았다. 주당 시수가 일반 공립에 비해 매우 적었지만 대신 줄어든 시수 만큼 학교 행사는 일반 공립에 비해 많았고 행사 진행을 위한 행정 업무는 대부분 실무 주무관이 맡아서 진행해 주는 덕분에 그만큼 학생 관계에 신경 쓰면 되었다. 혹시 모를 불합격들에 계속해서 대비했던 덕인지 얼마 뒤 2곳의 사립초 채용 합격 통보와 공립 임용 시험 합격 통보까지 받았다. 몰랐으면 공립초로 고민 없이 왔을 텐데, 사립초에 근무해보니 또 매력적인 요소가 많아 끝에는 고민을 꽤 했다.
여러 고민 끝에 나는 공립초로 넘어 왔다. 사립초에서는 행정적인 업무를 많이 덜어 놓고 경제적, 사회적 여건 상 큰 태풍 없이 순풍에서 항해는 듯한 교실을 꾸려갈 수 있을 듯 했다. 이 또한 큰 매력이지만 대신 학교 전체의 방향에 따라야 한다는 큰 전제 조건이 있었다. 개성 있는 교실보다는 학교 전체에 어울리는 교실에 가까운 듯 했다. 이것 저것 다양한 경험을 원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여러 일들을 해봐야 하는 내 성격상, 아무래도 교실 단위로 자율성이 큰 공립초가 더 나을 것 같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나는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밖은 확실히 재미있고 '교사니까 어찌저찌 해야 한다.'고 이래라 저래라 규정하는 것이 없었다. 대신 학교 밖은 철저하게 비지니스 관계였고 '교육을 통한 성장'도 대신 투자한 만큼의 성장이었다. 솔직히 말하건데 학교 안은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교육을 위한 곳이라면 당연 그래야 한다. 교과서 값 만큼 공부를 안한다고 해서 학생들을 다그칠 필요도 없고, 학교 설명회에 돈을 투자한 만큼 학부모들의 반응이 열렬해야 한다는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학교는 세상과 뚝 떨어져 고고하게 존재하는 섬이 아니다. 학교도 사회의 일부이다. 교실 공간과 교사들에게 비지니스와는 똑 떨어진, 자본에 욕심 내지 않는 고고한 삶의 태도를 요구하며 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교육까지 진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최저 시급도 지켜주지 않고 회사를 가족처럼 생각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다.
다시 학교 현장에서 참 많은 선생님들을 만난다. 학생들 마다 뛰어난 강점이 있듯, 참 뛰어난 강점을 가진 선생님들을 뵐 때마다 이 분들이 밖에서 기획자였다면, 혹은 개발자였거나 디자이너였거나 또는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 였다면, 그 것 또한 끝내주게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 현장과, 자신의 강점을 공존시켜 가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가끔 자신도 학교를 떠나야 할 것 같다고 고민하시는 선생님들도 있다. 그만두는 것 까진 아니더라도 학교 공간에서의 제약을 답답해 하는 선생님들도 참 많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전, 9월 1일자로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다른 선생님의 소식을 들었다. 유독 교사라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제약이 심하다. 교사가 유튜브를 해도 되는 것이냐, SNS의 인플루언서가 되어도 되는 것이냐, 직접 민원을 받은 선생님도 있다. 강점을 지키면서도 학교 현장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나는 학교 밖 세상이 궁금해서 다녀왔다. 정말 운 좋게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학교 밖에서는 교사 출신 회사원이었고 지금은 회사원 출신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의든 타의든 가지지 않았을 때 그것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나는 학교 밖을 나가보니 학교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느끼고 왔다. 그리고 역으로 바깥 세상도 참 좋았다. 지금은 학교로 돌아오니 학교라는 공간의 제약과 교사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얼마나 큰지도 알 것 같다.
학교에는 조금만 더 유연성을 더하고, 학교 밖에서는 학교에 대해 조금만 더 유한 시선으로 다가면 좋겠다. 수치로 표현이 되지 않는, 그래서 학교 외부에선 절대 알 수 없는, 교실에서의 매일 일상의 순간들과, 학생들과의 관계 속에서 쌓이는 정 때문에, 학교 만큼 최저 시급을 받으며 가족처럼 일하고 있는 회사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왜 학교를 그만 두었을까, 학교의 안 밖에서 학교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곳인지 알기 위해 그만 두었고 다시 왔다. 엄마가 가끔 농담삼아 물어본다. 또 학교를 그만 둘 꺼냐고. 그럴 때 마다 나는 ‘학교에 뼈를 묻을 것이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울 엄마는 또 말씀하신다. ‘이 지지배야, 내가 너 학교 그만 둔다 했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 줄 알어?! 그 때 내말은 귓등으로도 안듣고 어?!.....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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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는 왜 학교를 그만두었나’ 글들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댓글과 응원으로, 참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