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로 조퇴합니다 (1)
세월이 참 야속하다. 2013년도 패기 넘치던 신규교사 였는데, 잠시 교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고, 또 근무 지역을 옮겼고, 어느덧 정기 전보를 채우고 다음 학교로 넘어와 6학년 부장을 맡게 된 11년차 교사가 되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에듀콜라 업로드 글이 무려 결혼 전이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결혼을 말릴까 말까.
사실 직업을 떠나서 내 개인적인 삶을 기준으로 놓고 보거나 혹은 교사라는 직업을 놓고 보았을 때 '결혼'은 그렇게 큰 변화가 있진 않았다. 새로운 연애 대신 앞으로 이 사람과 믿고 쭉 가야한다는 사실이 나의 퇴근, 맡은 업무, 학부모 상담 등에 큰 영향을 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평소보다 평화로운 삶을 보내며 열심히 학교 근무를 하던 나날들이 지나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임신을 했고 6월 중순 출산을 앞두게 되었다. 출산휴가를 준비하면서 방학이 아닌데 학교를 잠시 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아니 방학식을 안했는데 나만 먼저 방학을 시작해 버리는 느낌이랄까. 이래도 되나, 아니 출근 안했는데 교감 선생님은 왜 나를 찾지 않는가, 기분이 참 이상했다.
얼마 후 나는 진짜로 아기를 낳았고, 출산휴가 90일이 시작 되었다. 병원을 거쳐 조리원으로 이동하니 3주 전까지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사라는 사실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이렇게 전생같이 아득한데 몇 달, 몇 년을 쉬고 나면 내가 교사였던 사실을 까먹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고민할 새도 없이 과거의 나는 잠시 접어두고 이 작은 생명체 하나 먹고 재우는데 온전히 시간을 보냈다. 남들 다 천국이라 표현하는 조리원은 바깥에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약간의 감옥 같았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를 돌보면서도 밤만 되면 그렇게 밖으로 나가 걷고 돌아다니면서, 나를 제외하고 이렇게 재밌게 돌아가는 세상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출산휴가가 정확히 반 정도 지났을 무렵,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복직을 할 것인지 혹은 육아휴직을 들어갈 것인지 말이다. 그냥 휴직이라면 고민도 안하고 당장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텐데, 육아휴직이라니. 하루종일 집에서 아기와 보내야 하는 시간은 덜컥 겁부터 났다. 내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나의 친정 엄마는 본인도 나와 같은 성향이기에, 본인이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고민하던 나에게 명쾌하게 답을 내렸다. "아 봐줄터이 고마 나가라! 집구석에 있으면 니는 병나가 안된다!"
감사하게도 서울에 계신 시부모님께서 매일 아기를 봐주기로 하셨다. 앞으로 명절 때 열심히 전도 굽고, 어머님 아버님께 용돈도 더 챙겨드리고, 아무튼 할 수 있는 효도는 다 하겠다는 마음의 다짐과 함께 교감선생님께 9월 11일 자로 복직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예상했던 육아휴직과 달리 복직하겠다는 말에, 교감선생님께서는 본인께서는 당연히 본인이야 좋으나, 아이는 누가 보냐며 아주 약간의 걱정을 해주셨다. 뭐 저말고 누군가가 보겠죠 허허허.
복직의 그날, 디데이를 얼마 남기지 않은 날. 이제 진짜로 살도 쫌 빼야하는거 아닌가, 출근할 때 뭐 입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집 앞 카페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냐며 연락을 주셨다. 아니 내가 복직하는데 혹시 문제가 생긴 것인가, 혹은 그냥 육아휴직 권유 하려고 하시는건지 알 수 없었다. 간만에 뵌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다고 하셨다. 그게 무슨 일일까. 그리고 왜 그것을 나와 논의하려 하실까.
작년 원래 나의 자리는 교과전담교사였다. 언제나 별일 없으면 6학년 담임을 해오다가 교직 경력에서 두 번째로 맡아본 교과전담이었다. 비록 학교가 작아서 교과전담이나 6과목을 지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점심 급식 시간과, 이전까지만 해도 담임으로 정신없이 보냈던 현장체험학습의 날이 수업 없는 여유로운 날이 된다는 것, 나와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학부모 상담 주간 등등. 아름다운 나날들이었다. 이제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서 워킹맘의 세계에 조금씩 적응을 해봐야지, 라고 생각했거늘.
학교의 6학년 부장 선생님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를 뜨게 되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익숙한 6학년이라 편하긴 한데, 아니 아직 배 꼬맨 자리도 덜 아물었고 몸도 영 찌뿌둥한데 6학년 체육 수업은 어떻게 한담, 이 피끓는 어린이들 보다가 집에 가서 육아는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6교시 수업이 끝나면 2시 30분인데 육아시간은 제대로 쓸 수는 있을까. 고민할 새도 없이 정신 차려보니 복직 전날이었다.
출산 전날, 남편의 도움으로 교과실 짐을 교실로 옮기는 중.
곤히 잠든 아들 안고 컴퓨터 셋팅 하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