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년생이 곧 간다. #그들에게 연애가 필요한 이유 -3-
(제목사진 출처: 책/페이스북 '소소한 하루')
장고도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고 가끔은 썸도 타고.
아직 어린데 연애해도 되나 스스로 고민도 하고, 연애한다고 가끔 부모님께 눈치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00년생들이 연애하고 싶은 이유와, 00년생들에게 연애가 필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반 00년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인터뷰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공통적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 되었기에 특별하지 않아 보일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다시 보니 그 이야기가 가장 진지했고 많은 친구들이 공감했던 이야기다.
Q. 왜 연애를 하고 싶어 하나요?
-어른들도 솔로면 외롭고, 커플이면 행복해서 좋은 것 처럼 똑같은 이유다. 솔로인 것 보다 커플인게 더 행복하다. 이야기 하고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일이 생기면 내 편을 들어주면서 의지가 되기 때문이다. 혼자면 외롭다.
-친구와의 대화에서는 약간의 가식이 있을 수 있는데 남친이랑은 솔직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친구나 엄마와 나누기 힘든 이야기도 커플이면 서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연애 하는 것 보면 좋아 보여서, 그래서 나도 하고 싶다.
-부모님이 공감 못하는 내용이 있다. 우리끼리 공감되는 내용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Q. 연애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친한 친구와 싸워서 고민일 때가 있었는데 남친이 내 고민 잘 들어줘서 좋았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했다가 사줄 때도 좋았다.
-고민을 들어줄 때 좋았다.
-카톡 할 때 재미 있어서 좋았다.
-고민 들어주면서 내 편 들어줄 때 좋았다.
-내 이야기 듣고 이해해 줘서 좋았다.
왜 연애를 하고 싶은지. 그리고 연애를 하면 무엇이 좋은지 물어보았을 때 많은 00년생들은
1. 내 이야기를 들어 준다.
2. 내 편이 되어 준다.
3. 고민이 있을 때 내 이야기에 집중해준다.
를 이야기 했다. 공통적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공감하고, 리액션 해주며 마음을 토닥여 주는 것을 연애의 목적이자 연애의 좋은 점으로 꼽았다.
듣고 보니 00년생이든, 90년생이든, 80년생이든. 우리 부모님 60년생 세대이든.
어느 세대 할 것 없이 공감 받고 싶어 한다는 가장 흔하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시 돌아 왔다.
우리 00년생들도 어릴 적엔 부모님들께서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웅얼웅얼하는 말에도 격한 리액션과 함께 "그렇지~!" 하며 공감을 받고 자랐다. 4살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직 자녀가 없는 내 귀에는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당최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공감이라고는 1도 안되는 말들을 부모님들 께서는 잘 들어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아는 언어가 많지 않으니 표현에는 제약이 있지만 웅얼대는 말과 표정만 보고도 우리 부모님들은 꺄르르 같이 웃기도 하고 가끔은 "아이구.... 우리 누구 속상했어?" 하며 격한 공감을 제공한다. 이 시기에 부모님의 말과 리액션으로부터 유아의 전두엽이 활발하게 발달한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강조 안해도 알 듯 하다.
앞 뒤 안맞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던 유아기를 지나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에 가까워 지면 이제는 말을 꽤 잘한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 굉장히 잘 표현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온도차가 꽤 있다. 우리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참 갖가지 별일들이 많다. 피자빵을 좋아하기는 한데 피자는 별로 안 좋아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것을 깜빡하고 어제 언니가 피자빵만 잔뜩 사와서 내가 얼마나 어이가 없고 속상했는 줄 아느냐고. 누구는 데이터가 없어서 너무 슬펐다고. 또 누구는 자기는 진짜 많이 참았는데 오빠가 어제 시비 걸어서 한번 성질 냈다가 엄마한테는 자기만 혼나서 방에서 무려 2시간을 펑펑 울었다는 것. 내가 오늘 줄무니 옷을 입고 왔는데 우리반 다른 여학생도 (연한) 줄무늬 옷을 입고 온 탓에 커플 처럼 보여서 약간 민망하다는 것. 등등. 이런 속상하고 별일인 일들에 공감받고 싶은데 작은 표정에도 시시콜콜 이야기를 들어 주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부모님도 바쁘시고, 언니, 오빠 및 형, 누나는 나랑 이야기를 안하고. 학교 왔더니 선생님과는 딱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시간은 없다. 내 취향과, 내가 좋아하는 과자 종류와, 내 어제의 감정과, 내가 얼마나 말랑말랑한 감정을 가졌는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눈 반짝반짝하며 들어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어른들도 똑같다. 엄마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시시콜콜 나누기에는 멀리 살고 있을 뿐더러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다. 내 친구들도 일하고, 공부하고, 각자의 삶이 있기에 가끔 만나 굵직한 수다를 떨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직장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우리반 6학년들에게 얼마나 치였는지.......), 내가 얼마나 노력한 하루를 보냈는지(수업 준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오늘 얼마나 속상한 일이 있었는지(우리반 학생들 장난치다가 유리 깬거 내가 치우면서 손도 다쳤는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처럼 들어줄 사람은 누구일까.
(사진출처: 왼쪽-책/페이스북 '소소한 하루' / 오른쪽-웹툰 '청춘만화')
나와 비슷한 온도를 갖고,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세상에서 제일 집중해서 들어줄 사람은. 역시나 내 연인이다. 연애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나는 내 연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시시콜콜 털어놓으며 공감 받고, 그 과정에서 위로도 받는다. 이 이야기를 우리 엄마한테, 혹은 우리 부장님께. 혹은 우리 교장 선생님께 털어 놓는다면?..... 글쎄. 나도 부담스럽지만 그분들도 온도가 맞지 않아 아주 지루하시지 않을까 싶다.
우리 00년생들도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신명나게 편도 들어주고, 혼났을 적엔 '속상했겠다.' 하며 위로와 함께 '에이, 너무하셨다.' 맞장구도 쳐주고, 학급에서 친구와 괜한 신경전에 대해 '헐, 진짜 힘들었겠다'. 하며 들어줄 존재가 참 필요하지 않을까. 00년생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싶을 테고,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도 연애가 필요한 까닭이다.
(사진출처-채사장 저,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표지, yes24)
채사장의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가슴이 무너진 날, 그 사람에게로 가자. 그의 손을 잡고 이밤을 보내는거다.
바로 그 순간,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일상의 하찮음은 주변부로 사라진다.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는다는것은 그래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중.
아직 어리니까, 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세계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우리에겐 별일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그들에겐 가슴이 무너진 날일 수 있다. 그런 날, 세상에 하나뿐인 너를 위해 우주가 돌아가게끔 해주는 것이 00년생의 연애 이유이자, 90년생, 80년생, 우리 모두의 연애의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