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영화를 만나다.]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교사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영화 특집을 맞이한다는 이야기에 딱 한가지가 떠올랐다.
"파란 약을 먹으면, 이야기는 끝이 나고. 빨간 약을 먹으면 이상한 나라에 계속 남게 되고."
모피어스가 네오를 만나 처음 주는 선택지.
결국 영화에서는 빨간 약을 먹고 현실을 알게 된다.
매 학기가 끝날때 쯔음, 선생님들은 생활기록부 작성에 열을 올린다.
학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써야 하는 타자는 늘고...
미리 써 놓은 특이점이 없으면 어떻게 써 줘야 하는지 정말 고민에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생활기록부 작성에 있어서 "지침"이 있다는 사실.
1. 가능한 부정적인 용어는 탈피하고 학생의 긍정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도록 하는것이 좋다.
2.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 후 발전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것도 지양하라.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솔직히 매학기 끝날때 생활기록부 쓰고 나면 교감선생님이나 교장선생님이 따로 부르신다.
그리고 내용의 수정을 요구하신다.
왜?
내가 부정적인 모습도 써 놨다고....
생활기록부가 법정 장부로서 반영구 보존하게 되고,
학생이 차후 진학을 할 때 근거자료로도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학부모들도 이 생활기록부의 한 마디에 일희일비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장점만 가지고 있는가?
솔직하게 학생에 대해서 모든 내용을 쓸 때마다 관리자 분들과 사소한 의견 다툼이 생길 때가 있었다.
요즘은 그래서 거의 포기하고 그냥 쓴다....
학부모 면담시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의 교직 생활에서 느낀 점 중에 하나가 학생들이 보이는 이중성이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은 고학년들을 담당하다 보면 가정에서 보이는 모습과 학교에서 보이는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점을
학부모 면담을 통해 서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확인은 나 혼자 하지, 학부모님들은 거의 대부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러한 괴리가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 아이가 그런 아이가 아닌데..."
"집에서는 ......"
이라는 말로 시작해 많은 충돌을 겪게 된다.
그래서 사실 학부모님들과 다툼도 꽤 많았고
현재까지 나는 학부모님들의 반응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학교에서 파란 약을 줄 수는 없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충격을 느낄 때가 중학교에 진학한 직후이다.
초등학교때까지 매번 "잘한다."라는 생활기록부를 받다가
중학교부터는 전체 종합부터 매 과목마다 등수가 적힌 칼같은 통지표를 받게 되고
"배신당했다"라고 소리치게 된다.
그리고 십중팔구는 아이를 데리고 학원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많이 봤었다.
초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의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제공해 주는 생활기록부의 긍정적인 표현.
하지만 긍정적인 표현의 강요라면 이건 그냥 파란 약을 계속 강제로 먹이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