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쌤이알고싶다] 박지희 선생님 2
지난 인터뷰와 이어지는 <2부> 글입니다. <1부>에선 박지희 선생님의 교육관, 온작품 읽기 이야기를 담았다면, <2부>에서는 내공 깊은 한글 교육 이야기와 더불어 내부형 공모교장으로서 바라보는 학교와 사회에 대한 고견을 이어갑니다. 작년 말 인터뷰임에도 휴업 중인 요즘,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유효한 질문과 맹점들을 던져주신 박지희 선생님의 혜안에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합니다. 박지희 선생님의 분야를 넘나드는 경험과 성찰, 파도 파도 또 나오는 화수분 같이 멋진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작년에 학교를 옮기며 생각지 않았던 1학년을 맡게 되었어요. 왜 종합장에 줄긋기를 해야 하는지 크게 고민하지 않고 줄긋기를 시키고, 자모음을 가르치다가 듣게 된 선생님의 <기초학력의 첫걸음, 한글 교육>(아이스크림) 연수는 정말 저에겐 한글 지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습니다. 3월이 지나고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다 같이 연수를 들었었는데, 그동안 저희가 했던 한글 수업이 부끄러워질 정도였죠.
‘한글 책임교육’이 처음 학교에 들어오면서 한글 교육에 대한 관심이 동시에 높아졌어요. 국가 정책적으로 2017년부터 초등 1학년 1학기 교육과정 내 한글 교육 시간을 27시간에서 68시간으로 늘리고 체계적인 한글 학습을 하도록 하였죠. 한글 교육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아이스크림에서도 관심을 보여 1학년 담임을 10여 년간 동안 하면서 쌓아온 것들을 바탕으로 한글 교육 연수를 찍게 되었고요.
농담이 아니라 선생님의 한글 교육 연수가 전국에 모든 1학년 선생님에게 ‘필수’연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1학년 선생님 뿐만 아니라 모든 초등교사들이 듣는다면 더 좋겠고요. 연수 제목처럼 한글 교육은 기초학력의 첫걸음이기에 대한민국 어느 초등교실에서나 필수적이고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니까요. 저도 이전에 2학년 담임을 두 번 해보긴 했지만 한글을 모른다는 가정하에 수업을 꾸려가야 하는 1학년은 완전히 접근법이 다르더라고요. 일 년에 몇 시간만 한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1년이란 긴 호흡으로 학습자와 함께 모음과 자음을 하나하나 즐기듯 배우고 익히는 것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네. 실제로 몇몇 지역 교육청들은 아이스크림과 제휴를 맺어 신청자들에게 무료로 원격연수를 개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사실 이렇게 하면 연수 강사나 회사가 얻는 경제적인 이득은 적어지겠지만(웃음) 그래도 더 많은 선생님이 접하시면 좋겠어요. 제가 현장에서 아이들과 해온 것들이 모두 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미리 그 길을 걸어본 사람으로서 고민하는 선생님들께 어떤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전 이미 선생님의 한글 연수를 두 번 보았는데, 학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2020년 학급 교육과정에도 반영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에 계셔서 하는 말이 아니라(웃음) 이렇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하나하나 교실 속에서 쉽게 적용 가능한 연수는 처음이라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왜 이런 것들을 교대 다닐 때 배우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대 교육과정에 체계적인 한글 지도 프로그램이 신설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단 한글 교육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배운 많은 것들이 현장에서 무용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곤 했습니다. 제 딸아이도 교대를 나왔는데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실정이더군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제가 석사학위가 따로 있지도 않고 가방끈이 짧잖아요.(웃음) 그래서인지 대학에서 연수할 기회는 많지 않았는데 작년에 제 책을 좋게 읽으신 대학원장님 추천으로 한국외대 교육대학원에서 강의했었습니다. 꼭 제 연수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교단에 서기 전 선생님들에게도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배우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육대학 교육과정에도 구체적인 한글 지도 방법과 중요성 등에 대해 다루는 체계적 학습 기회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박지희 선생님의 《1학년 첫 배움책》과 연수 자료로 만든 1학년 학교 적응 기간용 줄긋기 연습장 예시.>
요즘 제 딸아이가 한글에 조금씩 관심을 보여서 그럴까요? 부모의 입장에서도 너무 유익한 연수였습니다. 학습자에게 부담 주지 않고, 즐겁게 단계적으로 함께 배울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다루어주셔서요. 막무가내로 자녀를 붙잡고 한글을 가르치시는 분들 이야기를 가끔 듣는데 안타깝더라고요.
제가 학부모 연수는 되도록 하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전 사실 평일 강의를 거의 하지 않거든요. 제가 일을 굉장히 빨리하는 편인데도 하루라도 강의를 갔다 오면 일이 밀리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아무리 영향이 없다고 해도 결국 다음 날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영향이 생기게 되고요. 하지만 한글 책임교육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이해 수준이 여전히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 되도록 학부모 연수는 하려고 합니다.
한글 교육에 대한 이해 부족은 결국 아이들의 문해력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제가 원격 연수에서도 책읽기를 특히 강조하잖아요? 많은 부모님이 책읽기를 학습의 한 과정이라고만 생각하고 같이 읽지는 않습니다. 학부모도 자녀들과 함께 읽고 아이들 책도 읽어주며 공부하셔야 합니다. 특히 문해력이 낮은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영영 책이랑 멀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교사나 부모가 많이 읽어주어야 해요.
맞습니다. 어른들은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만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 같아요.
부모 교육이 더욱 필요한 이유겠지요. 기본적인 양육방식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습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정말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올해부터 초등 예비소집 시간을 야간까지 확대하라고 서울시 교육청에서 공고했지요. 입학식을 저녁에 하라는 등의 이런 정책들이 오히려 결국 아이들을 외롭게 만들고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일 년에 그 하루는 엄마 손 잡고 와 새로 다닐 학교에서 예비소집하고 함께 맛있는 것 먹는 것이 그 어떤 공부보다 소중한 교육이거든요. 또 올해부터는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들도 방과 후 에듀케어가 모두 가능하다고 지침이 내려왔어요.
사실 이 경우 어린아이들은 사랑이 담긴 돌봄을 받았다는 생각보다는 매뉴얼에 따라 서비스를 받았다는 느낌을 느낄 뿐이거든요. 아이의 삶의 과정을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해버리면 안 됩니다. 아이들의 돌봄을 서비스의 형태로 지급하는 게 결코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아이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어떤 맥락으로 하시는 이야기인지 너무나 공감이 돼요. 저 같은 경우도 육아휴직의 시간이 참 소중했거든요. 육아 체질인지 아닌지를 떠나 많은 부모가 육아 기간 동안 일자리 보장이 어려우니까 그 시간을 더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는 말씀도 참 와닿습니다.
시스템은 가정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는 양육비를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선진국에서도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맡길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중점을 두지요. 어린아이가 있을 때는 무조건 3시에 퇴근하는 것처럼요. 아이가 어릴 때 한시적인 기간일 뿐이잖아요. 또 이들이 3시에 일찍 퇴근해도 일에 지장이 없게 인력을 보충해주는 게 가장 필요하겠지요. 한참 예쁘고 중요한 시기의 자녀들과 보내야 할 부모들을 직장에만 묶어두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법정 인정 육아휴직 기간이 더 길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했거든요. 한국에서 공립 교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아주 좋은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육아시간을 쓸 때 주변에 괜히 죄송하기도 했고요.
《90년생이 온다》는 책을 보고 농반 진반으로 ‘어린이집 세대’가 온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단생활을 시작한 세대라는 것이지요. 병설 유치원 원장으로 민원도 많이 받는데 보통 그 민원의 기저에는 ‘우리 아이를 좀 더 바라봐 주세요.’ 란 요구가 바탕으로 깔려있습니다. 하지만 교사 1, 2인이 20명이 넘는 아이들과 개별적으로 깊은 눈맞춤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요. 나름의 능력 있고 포용력 있는 교사가 눈 맞춘다고 하더라도 2-3살부터 시작된 집단생활은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개별적 존재감에 대한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아이 중 학교에 와서도 결핍감이 채워지지 않아 힘들어하고 개별적으로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게 되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거지요.
영유아기부터 아이들을 집단시설에 맡겨지는 이 시스템은 결국 집단적 결핍감으로 자리 잡아 학교나 사회의 위기가 될 것입니다. 종종 잠자리에 누워 ‘나중에 이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처리하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들면 다가올 미래가 문득 두렵기도 하죠.
말씀해주신 것처럼 작년부터 도봉초등학교의 공모형 교장 선생님이자 유치원장으로 계시죠. 지금 박지희 선생님이 살아내고 계신 내부형 공모교장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교사일 때는 ‘나와 교장의 관계, 교장이 교사를 어떻게 대하는가.’ 정도가 교장과 관련된 제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교장이 된 지금은 ‘학교가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이고, 이 상황에서 내부형 공모교장으로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결론은 학교에 과도하게 맡겨진 짐을 쳐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교육 말고는 다 사라져 버려라!” 이렇게 크게 외치고 싶을 정도예요.
사실 공모 교장은 교장들 사이에서나, 세상의 잣대, 교육청과 공모 교장의 관계에서 볼 때 약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승진 루트를 철저히 받아 교장이 된 사람들은 공모 교장은 진짜 교장이 아니라고까지 여기기도 해요. 이런 상황에서 학교가 힘없는 평교사 출신을 공모 교장으로 데려가면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은 결국 '관계'라고 보았습니다. 공모 교장이 업무팀들이나 교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보여줘야 교장 선출보직제로 인한 학교 관계들에 대한 답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이 학교에서 처음 만난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민원을 대하는 저의 태도 때문에 마음이 열렸다고 하시더라고요. 교사의 잘못이 아닐 때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사과해, 사과해” 하는 경우도 많은데, 저는 그렇게 접근하지 않아 좋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이 학교에서 처음 만난 업무팀 선생님들과도 벽을 허물고 소통할 수 있었어요. 수시로 제가 묻기도 하고 제가 놓친 것 아무런 절차 없이 말씀도 해주시고요.
“같이 봐주세요. 무엇이 문제인지 잘 파악이 안 되어요.” 라는 말을 교무실의 업무팀 선생님들에게 자주 합니다. 이런 고민을 나눌 분들이 주변에 안 계셨다면, 혼자 참 힘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지금 돌아보면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만약 그 당시 판단을 잘못했더라면 완전히 망했겠구나, 싶은 순간들이요. 주변의 선생님들 덕분에 제가 이만큼이라도 교장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아,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왜 제가 위로가 되는 거죠.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시는 귀도 정말 굉장한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 학교의 교장이나 교감처럼 교육자이자 관리자의 역할을 하시는 분들께는 더더욱이요.
관리자에게 중요한 또 한 가지는 ‘배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교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많이 발생하거든요. 교사 입장에서는 우리 반에 발생하지 않으면 없는 일이지만, 학교 전체적으로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발생하지요. 그것들을 교장으로서 당연한 내 일이라 여기고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감당해가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갈수록 부모님들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아이들이 처해있는 정서적 환경도 열악해요. 그러다 보니 생각도 못 한 것들이 민원으로 들어옵니다. 이 경우에도 관리자이자 교육자로서 같이 해결한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좋을 텐데.. ‘왜 이래. 왜 이렇게 잠잠한 날이 하루도 없어. ’, ‘왜 저 학급에서는 자꾸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이렇게만 생각하면 결국 관리자 본인만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가 힘들어지죠.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박지희 선생님께는 예외인 것 같아요. 그게 다 깊은 내공이겠지요.
전 반대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고 사람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대한 책무성을 갖고 자리 값을 해야 한다는 말로 생각하면서 애써 노력하는 편입니다.
작년에 교장 연수를 다니면서 교장연수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우린 왜 교장이 되려고 하는가, 교장은 사회에서 어떤 위치이고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을 다루지 않았어요. 그런데 교장연수 과정을 보면 실무적인 것에 주로 치중되어 있습니다. ‘학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 사회에서 학교와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교육계 내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느껴졌습니다.
교장은 학교 관리자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리더이기도 하지요. 리더로서 선생님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철학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물론 민원이 안 들어오게 하고, 선생님들과 갈등이 없애는 방법들도 중요하지만 갈등을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니까요. 사실 갈등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지만 갈등을 회피하거나 무조건 없애는 것이 능사는 아니거든요. 어디에서 갈등이 생기는지 고민하고, 그 갈등을 잘 해결하려는 ‘자세’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철학의 부재’란 단어만큼 작금의 현실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용어도 없는 것 같습니다. 교육자로서 ‘왜’와 ‘역할’에 대한 질문, 철학 하는 태도와 자세 등을 새겨봅니다. 선생님과 대화하면서도 삶을 관통하는 어떤 철학이 느껴져 더욱 설득력이 높아지는 듯하거든요. 결론은 1학교 1박지희 교장 선생님 (철학) 보급이 시급합니다.(웃음)
저는 관리자의 언어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장 연수에서 그런 주제도 다루길 바랐어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제가 교사로 있을 때 관리자들의 언어가 소통의 큰 걸림돌이 되는구나 했거든요. 예를 들어 회식장소를 정하는데 관리자가 “난 이런 거 싫어하고 이건 좋아해.” 라고 말하는 순간 어느 누구도 자유롭게 결정할 수가 없어지죠.
또한 관리자의 언어는 더욱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여기 또는 이 학교, 학급은 왜 이래요?”라고 모호하게 자기 감정을 말하면 모든 사람이 긴장하면서도 어디를 손봐야 할지 모르고 혼란스러워지거든요. 때로는 자기 취향을 숨기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아주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등이 교장의 언어이자 관계철학이 될 수 있겠지요. 이런 것도 교장연수에서 다루어야 할 주제 아닐까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교장, 교사 관계를 망치는 것들은 의외로 그런 것들이거든요. 저에게도 가장 큰 숙제입니다.
어쩌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연습, 감수성 발달 연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타인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마음 역시 공부고 연습이니까요.
맞아요. 반면에 교장의 역할 또한 너무 비대한 상황입니다. 교장은 교실과 선생님들을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시설관리 같은 그 외 교장의 할 일들이 너무 많아요.
정말 제대로 하려고 하면 학교의 관리자만큼 어려운 직업도 없을 것 같아요. 도봉초도 지금 대대적인 공사 중이지요?
네. 도봉초는 1964년도에 개교한 오래된 학교거든요. 본관, 서관, 후관 이렇게 3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관과 후관에는 계단이 한쪽만 있어요. 당시 소방법에는 위배가 안 된다고 하지만 혹시라도 현관에서 불이 나면 끔찍한 상황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아주 위험한 건물구조입니다. 서울시 교육청에 상황을 말하니 조사를 나왔죠. 저는 조사가 나오면 해결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위험하겠다고 말하며 그냥 그렇게 끝인 거예요.
학교의 소유권이 교육청이라면 관리도 교육청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봉초는 무려 56년이나 된 건물이라 교사 연구실, 시청각실 하나 없거든요. 학교가 낡고 시설이 현재 교육과정과 맞지 않으면 알아서 교육청에서 바꾸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재건축 건으로 생전 만날 일 없던 정치인들을 만나고 다니며 종종 ‘이게 왜 교장이 할 일이지?’ 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행정실의 경우도 교육청에서 각 학교 관리팀을 짜서 주무관의 출퇴근도 교육청에서 모여 각 학교의 필요에 따라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행정실과 교사들의 갈등 관리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 모든 걸 개별학교에 맡기고 교장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교장이 늘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장의 일은 학생 상담, 학부모 교육, 교권 지키기, 교사 연수 등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 시설물 관리와 행정실과의 관계 등은 저로서는 정말 생각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네요. ‘교장의 학생 상담, 학부모 교육과 교권 지키기’ 등의 단어는 특히 반갑고요.
제 개인적으로 평교사 생활을 하면서 학부모와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니 안 보였던 부분이지만, 지금 교장이 되어 집단으로 학부모와 교사와의 관계를 보았을 때 민주적이지 않은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의 관계를 어떻게 건강하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민주적인 주권자로 대접 못 받아본 사람은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없으니까요.
사실 평교사에겐 민원이라는 것 자체가 정말 놀라고 마음이 졸이는 일이잖아요. 학부모의 민원도 힘들지만 관리자의 태도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교장이 민원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장실 문은 열려 있어야겠지만 교장으로서 원칙을 세워놓지 않고 무조건 들어준다든지 하는 것은 안 되겠지요. 저는 “교장인 저나 담임에게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카톡 등을 통해 어머님들끼리 먼저 막 이야기하고 온 경우나 ‘다른 반은 이런 데 우리 반으로 이렇다’류의 말은 민원사항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한 선생님을 창피 주기 급급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원이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건데, 그게 아니라 ‘모욕주기’에 중점을 둔 경우에는 민원으로 보면 안 되겠지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온다고 해서 무조건 그걸 민원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지요.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가 학부모와 학교, 교사 사이에도 꼭 필요하단 생각이 많이 듭니다.
분별심을 키워야겠지요. 무분별한 민원의 수용은 교사의 교육 활동을 더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오히려 우리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학교 내부에서 교실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법이나 제도로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학부모 민원은 민원 창구를 교장실에 두는 거지요. 담임과의 대면을 원하는 경우는 교장 입회하에 한다든지, 아동학대 사안일 때나 교권침해 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반드시 이렇게 한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냥 학교장 재량으로 하면 관리자에 따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요.
최근 비슷한 문제 의식으로 전교조에서도 <학교 민원 처리 기구(가칭 ‘학교민원조정기구’) 설립과 운용 시스템 마련을 위한 제안서>를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스템이 학교 현장에 팽배한 교사들의 패배감이나 피해 의식을 해소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가 샌드백이 되었고 교사들의 자존감이 무너진 모습을 자주 봅니다. 지금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무기력에 빠져 있는 상태예요. 교육 정책의 경우도 철저하게 교사 패싱이 이루어지고 있지요. ‘교사는 교실 한 칸 밖에 못 바꾸는구나.’란 생각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교실 한칸이라도, 수업 한차시라도 구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 역시 교사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반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건 교사들이니까요.
내가 발 딛고 있는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 같아요.
저는 학교 밖 모임(전교조, 전국국어교사모임)은 교사 발령 때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 했지만, 학교 안 모임은 2007년 교내 동아리를 만들면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속해있는 학교가 바로 우리의 주 생활 터전이잖아요. 학교 밖 동아리는 지적 욕구를 채워주고 그곳에서 이상을 꿈꾸지만 학교로 오면 또 다른 처참한 현실이 가로막고 있지요. 이 공간을 서로를 환대해주고, 서로를 알아봐 주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 2007년부터 학교 안 모임을 꾸려나가며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어요. 이렇게 동료 선생님들과 계속 관계를 맺으며 다져놓은 축과 경험들이 지금 교장을 하는데도 많이 도움이 돼요.
내가 하루를 주로 보내는 직장이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저만 해도 학교에서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웃고 떠들며 너무 잘 지내고 있지만, 제가 정말 관심 있는 공부나 방향에 대해서는 많이 나누지 못한 것 같아요. 선생님이 지금 해주신 말씀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제가 외부에선 강의하거나 신문에서 인터뷰 등을 해왔어도 정작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나눌 기회는 많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학교 내 모임 후 수업에 대한 고민이나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같이 나누기 시작했어요. 주변에 함께 공부하고 싶다고 모이는 선생님들과 공부 모임을 하면서 철학책, 심리학책 등 여러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들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요.
이렇게 관계를 쌓으면서 학교 안에서의 생활이 재미있어졌습니다. 그러면서 ‘학교는 그냥 4시 반까지만 근무하고 다른 곳에 가서 만족해야지.’ 하던 생각이 좀 누그러진 것 같아요. 종종 젊은 분들에게 그런 생각이 느껴지면 안타깝죠. 자신의 삶 터전에서 동료들과 마음을 나누고 같이 있는 그 순간이 무척 소중하고 의지가 되는 법이거든요.
지금 인터뷰에서도 그렇고《초등국어수업》저자소개나 평소 쓰신 글을 보아도 아이들과 동료들과 함께 울고 웃는 평교사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선생님 따님분도 지금 교직에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런 후배 선생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대부분의 선생님이 그렇듯 저 역시도 대학 재수를 한 것도 아니고 평탄하게 쭉 달려온 인생이었어요. 처음엔 못따라오는 아이들이 이해가 잘 안 되는 거예요.(웃음) 대학 때 야학 활동을 하고 교단에 들어오자마자 전교조 해직 교사가 되었는데요. 그 해직 경험이 없었으면 ‘지금 굉장히 꼴통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하곤 해요.(웃음)
해직된 5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 투쟁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 비정규적 노동자, 도시빈민, 대공장 노조사수투쟁하는 사람들, 양심수 가족들과 5.18 항쟁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 가족을 만나면서 ‘내가 나름 사회운동을 하긴 했어도 시야도 좁았고 진심어린 관심이 없었구나.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없구나. 또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걸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사들이 다양한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다들 말로는 쉽잖아요. 저 역시도 그렇고요.. 하지만 타인에 대한 시혜적인 관점이 아니라 동등한 시선에서 바라보며 나의 것을 내어놓긴 어렵지요. 몸으로, 행동으로 증명하며 살아오신 선생님의 말씀이라 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모두 다 경험할 순 없으니 책을 많이 읽는 것도 간접경험의 방법 중 하나겠지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어떤 모습이 있어요. 외국 여행 중 본 장면이 아름다운 잔상처럼 남아있습니다. 도서관이나 카페에 오래도록 앉아 책을 읽는 노인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지요.
또 지금 제 딸이 힙합춤에 흠뻑 빠져 있는데요.(웃음)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아주 좋아 보여요. 기성 세대들에겐 배척되거나 교사 삶에서 경험하기 힘든 것에 몰입하는 아이들을 현장에서 만났을 때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딸이 같이 춤추는 고등학생들이나 어린 친구들에게 ‘춤꾼이라고 춤만 추는 게 아니라 직업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셔도 따님에 대한 박지희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졌다.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마지막으로 저는 1정 연수를 가든 어디를 가더라도 선생님들께 재미있게 사시라고 꼭 말씀드려요. 모든 선생님이 각자의 자리에서 재미있게 존중받으며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시계를 보았는데 이미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있었다. 박지희 선생님께 홀딱 빠져 밥때도 놓쳐버렸다. 카페를 나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맥주 한 잔씩 나눠마셨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박지희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따님이 부러워졌다.
인터뷰 글을 쓰기 위해 녹취록을 다시 들으며 하이킥을 몇 번이나 했다. 인터뷰어로서의 본분을 잊고 내 이야기를 쏟는 스스로를 확인하는 게 몹시 부끄러워 인터뷰 글을 마무리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핑계를 대자면 그만큼 박지희 선생님의 힘은 강하다. 따뜻함과 강인함이란 상반된 매력과 내공으로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켜버린다.
우연히 이슬아 작가의 책《깨끗한 존경》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박지희 선생님이 떠올랐다. 살면서 롤모델을 가져본 적도 그 필요성을 느낀 적도 없던 내가 박지희 선생님을 뵙고 나선 감히 ‘롤모델’이란 게 생겼다. 삶으로 부딪히며 참교육을 온 몸으로 살아낸 그녀에게 나의 ‘깨끗한 존경’을 바치며 인터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