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쌤이알고싶다] 이영근 선생님 1
이영근 선생님을 실제로 뵌 건 지난 여름, 1정 연수 끝 무렵이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강의동을 들어서는데 입구가 다른 날보다 북적거렸다. '뭐지?'
복도 한 쪽에 마련된 책상과 강의실 앞쪽에 책들이 펼쳐져 있었다. 영근샘이 아이들과 살며 만드신 수십 권의 문집들과 학급살이 기록들이었다. 문집도 문집이었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선생님의 학급살이 기록들이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오늘 기분이 어떤지, 아침은 뭘 먹고 왔는지와 같은 소소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는 두툼한 A4용지 묶음들.
영근샘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다. 함께 토론 모임을 이끌고 책도 집필하신 정순샘의 이야기도. 더 미루고 싶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영근샘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지난 9월 마지막 토요일,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두 분을 만났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책이나 SNS 사진으로 보던 영근샘 교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다니 더욱 영광이에요. 《초등 학급 운영 어떻게 할까?》저자 소개 중 ‘아이들이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로 살고자 ‘애쓰고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참 인상 깊었거든요. 요즘 저의 화두와 맞닿아 있어서요. 전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라고 자부했는데⋯. 최근엔 ‘내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거든요. 그래도 노력해보자, 애쓰고 있는 중이랍니다.
영근샘: 처음 선생 했을 땐 저 역시 내 중심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좋은 선생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베푼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글쓰기회를 만나고 선생으로 제 삶을 돌아보며 다듬을 수 있었어요. 선생 스무 해 하면서 조금씩 내 중심이었던 눈이 아이들로 넘어가고 있거든요.
아이들을 미워한 적은 없지만 ‘아, 내가 저 아이를 좋아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땐 많이 미안하지요. 그런 친구들에겐 더 사랑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 더 이름을 불러주거나 관심을 표현하면서요. 제 거친 모습이 선생하면서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성장한 모습이고, 그 바탕이 제 삶을 돌아보는 힘이었다 생각해요.
영근샘: 발령을 받고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주말도 없이 방학도 없이 아이들과 참 열심히 놀았어요. ‘작은 여행’으로 아이들을 돌아가며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요. 제 책 《초등 학급 운영 어떻게 할까?》는 보리 출판사의 ‘살아있는 교육’ 서른다섯 번째인데 제가 선생님 처음 했을 때는 15번까지 나와 있었거든요.
그 책들을 정말 열심히 보고 실천하며, ‘초등참사랑’(http://chocham.com/)이라는 학급운영 누리집도 만들었죠. 그렇게 살다보니 큰 상도 받고 사람들에게 알려졌어요. 하지만 이제와 그때를 돌아보면 좋은 선생에서는 오히려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영근샘은 그래프를 직접 그려주셨다. 명성은 위로 올라가는 화살표↗로, 좋은 선생님으로서는 이렇게 내려가는 화살표↘ 로. )
저는 1정 연수 때 이 부분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선생님을 꼭 뵙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 만남에서도 성찰, 돌아보는 힘으로 말해주셨지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정점을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다잡아가는 성찰의 자세는 결코 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영근샘: 삶에서 커다란 두 가지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초등참사랑’ 인터넷 누리집을 만든 경험으로 서울교대 대학원 컴퓨터과에 갔어요. 오히려 그곳에서 ‘내가 컴퓨터를 못 하는구나, 교육을 컴퓨터란 틀 속에 넣으려고 했구나.’ 하고 느꼈어요. ‘초등참사랑’은 틀이고, 그 안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 진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때가 2004년이었는데, 정순샘과 강릉에서 있었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http://www.kulssugi.or.kr/)의 2박 3일 여름연수회에 참여했어요. 글쓰기회는 1983년 이오덕 선생님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실천하려 만든 연구회로, 전 스물한 해 되었을 때 간 거죠. 이오덕 선생님 돌아가신 다음 해라 이오덕 선생님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어요. 제가 책에서 ‘이런 활동 해보고 싶다’ 했던 선배 선생님들이 그 연구회에 많이 계셔서 그냥 무작정 찾아간 거죠. 그곳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정순샘이 이렇게 말했지요. ‘참 좋다. 여기는 계속 오자.’ 돌아보니 제 삶에서 큰 결정에는 늘 정순샘이 중심에 있었던 것 같아요.
정순샘이 보이지 않는 손이시군요. (함께 웃음)
영근샘: 그렇게 서울경기글쓰기교육연구회 모임에 나갔어요. 나가면서 서울경기 회장도 하고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교육조직부장으로 글쓰기회에 정말 푹 빠져 살았어요. 일꾼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많은 사람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래에서 아이들만 보면서, 교실 속 아이들의 바른 성장만을 바라면서 정말 소리 없이 소박하게 사시는 많은 이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 분들 품에 안겨서 제가 걸어온 길도 돌아보았습니다. 훌륭한 선배님을 알게 되었고, 윤구병 선생님 가까이에서 말씀을 듣게 된 것도 글쓰기회 덕분이지요. 아들 희문이가 방황할 때 멘토 역할을 해 준 것도 연구회 선후배들입니다. 저는 욕망덩어리였는데,(물론 지금도 그렇지만요) 그런 욕망보다 그냥 아이들과 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사시는 좋은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고 잘 보이지도 않지만요. 그분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게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하던 외부활동을 다 멈추고 오로지 글쓰기연구회 일을 했습니다. 아이들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에 빠져 살았지요. 사실 제가 글을 쓰거나 책을 보는 걸 막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그냥 그렇게 산 것 같습니다.
지금 말씀처럼 스스로의 욕망을 고백하고 인정한 후 그걸 더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다듬어 가시는 모습이 제게 멋지게 다가왔어요. 조금씩 비슷하고 조금씩 다른 저마다의 욕망을 누구나 지니고 살아가지만, 그걸 계속 돌아보며 정제하는 모습은 흔치 않으니까요. 그냥 그렇게 살았다는 담담한 말이 주는 울림도 큽니다.
그럼 두 번째 변곡점은 무엇일까요?
영근샘: 2011년에 교육연구년을 하는데 토론을 주제로 했어요. 우리 사회에 토론이 없고, 토론을 겪어보기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이명박 대통령 시기였는데 사회 전체에 토론이 없었죠. 사실 지금도 비슷하고요. 대부분 어릴 때 토론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먼저 우리 집부터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정순샘과 희문이, 수민이까지 넷이 주마다 (좋아바)우리 집 회의를 했어요.
희문이가 5학년 때부터 일요일마다 우리아이토론을 했어요. 희문이 친구들을 모아 중3때까지 5년, 수민이는 엄마 친구들을 모아서 6학년부터 4년으로 7년 동안 주마다 3시간씩 우리아이토론을 했죠. 둘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아이토론을 할 수 없어요. 작년부터는 마을 학생들을 모아서 제 교실에서 두 주에 한 번 하고 있어요.
내가 사는 곳에서 토론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또 마을에 토론 지도자 과정 만들어서 학부모 교육을 했어요. 우리 마을에는 제가 하는 우리아이토론 말고도 몇 곳에서 토론모임을 하고 있어요.
우와. 말 그대로 토론 씨앗을 뿌리는 일이네요. 자신이 발 딛고 사는 곳을 변화시키는 게 가장 어렵고도 진정한 혁명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영근샘: 그 다음으로는 내가 있는 공간인 교실에서 토론이 일어나야죠. 그런데 보통 교실에서 토론을 잘하지 않아요. 저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과 토론 모임, ‘초등토론교육연구회’(http://cafe.daum.net/debateedu)을 꾸렸어요. 우리 모임은 일곱 지역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모임하다 방학 때 한 번씩 모여 사례를 나누는데 지금까지 열일곱 번 토론연수회를 했어요. 토론연수회에서는 특강이나 사례를 발표하는 모임 선생님들도 강사비를 받지 않고 오히려 회비를 내고 참가해요. 그러니 연수회비가 많이 싼 편인데도 조금씩 남기도 해요. 우리 모임은 전체 회비가 없음에도 <개똥이네 놀이터>를 다섯 곳에 보내는 ‘나누리’를 하고 있어요. 지역 회장들과 ‘모임을 더 키울까요?’ 하고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오히려 다들 꺼립니다. 그런 것에 억지로 힘쓰지 말자며 마음을 모았습니다. 함께 삶을 나누려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라 더 오래 길게 가는 것 같습니다.
정순샘을 비롯해 초등토론교육연구회 회원들이 함께 《월화수목금토론》(창비교육)이란 책도 쓰셨죠. 사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많이 있지만 토론에 관한 책, 그것도 과목별 교육과정과 직접 연계해 바로바로 수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책이란 점에서 아주 특별한 것 같아요. 토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에게 너무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럼 이제 정순 샘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초등 학급 운영 어떻게 할까?》에서 영근샘이 처음 1학년 담임을 하셨을 때 정순샘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저도 지금 여덟 살들과 고군분투하고 있어 더욱 절실합니다. 하하.
정순샘: 저는 날마다 1교시 쉬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요. 날마다 책을 빌려와서 친구들과 서로 추천해주지요. 1학년 아이들이 도서관 가서 직접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서 빌려온다니까요.(자랑스러운 눈빛 뿜뿜!) 그렇게 빌려온 책을 알림장에 씁니다. 책 제목 쓰고 표지를 그리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교사도 아이들과 함께 칠판에 제목을 크게 쓰는 것이에요. 그렇게 1교시는 무조건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에요. 그 주 생일이 있으면 생일책을 읽어줍니다.
생일책은 무엇인가요?
정순샘: 그 주에 아이들 생일이 있으면 부모님께 말씀드려서 선물을 줄 생일책을 미리 받아둡니다. 서로 생일 축하 편지를 써주고 생일 맞은 친구에게 반 전체가 칭찬해주고요. 생일책이 그 아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지요. 이렇게 그 주의 공부 내용과 맞는 것들,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 들을 미리 읽고 연구실에도 놔두고 동학년과도 함께 읽습니다.
또 월요일 1교시에는 주말 이야기를 나누고 시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이 토론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지요. 이번 주엔 이원수 곡의 ‘햇볕’ 노래를 함께 불렀어요. 가사에 ‘열매’가 나와 가을 과일이랑 연결해서요.
저도 주말이야기를 나누고 어제 아이들과 함께 ‘햇볕’ 노래 불렀어요. 시화도 그리고요.
나도 모르게 반갑고 기뻐서 덥석 정순샘 손을 잡을 뻔했다. 아니 실제로 잡았던 것 같다. 이 모습을 보던 영근샘이 기타를 꺼내 반주와 함께 햇볕 노래를 낮게 흥얼거리시고, 그제야 교실 곳곳에 놓인 기타 3 대가 보였다.
저물어가는 오후의 햇살이 우리 셋이 마주 앉아 만든 삼각형 책상에 내려앉았다. 닮고 싶은 웃음과 교실, 가정을 꾸려 가시는 영근샘과 정순샘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이 오래도록 기억될 거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참사랑땀 이영근 선생님과 다사랑 김정순 선생님의 이야기는 2부에서 계속됩니다. 함께 책을 읽고, 운동장을 달리는 정순샘의 1학년 교실 이야기, 공부하고 노는 영근샘의 교실 이야기.
따뜻하고 단단한 두 분의 이야기 더욱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