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잔 떠줄래?
내게도 열정 넘치던 총각 선생님 시절이 있었다. 승진이고 뭐고 아이들 곁에 있다면 참 스승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던 그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당시 그 학교에서는 젊은 남자 선생님이라고 하면 어려운 업무나 어려운 학생을 담당하는 것이 당연했다. 불만이 있다면 그와 관련된 이해나 설명 없이 응당 그래야 했던 현실이었다. 그렇게 우연 아닌 필연으로 K와 나는 만나게 되었다.
K는 특별했다. 복잡한 가정사와 전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로부터 예상은 했지만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서적 방임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많이 평범하지 못했다. 특히 가정에서 관리가 안 되어 늘 냄새나고 청결하지 못했다. 양치질은 언제 했는지 치석이 도가 지나쳐 늘 잇몸에서는 피가 났고 뭐든 입에 넣고 빠는 습관 덕에 옷에서는 악취가 진동을 했다. 곁에 있는 나조차 머리가 아플 지경이니 3학년 어린 짝꿍들의 아우성은 당연했다.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었다. 게임과 음란물에 방임되어 노출되어 있는 K는 늘 교실 문제의 핵심이 있었다. 1, 2학년 때에는 친구들을 짓궂은 장난으로 괴롭혔고, 3학년이 되자 다른 친구들이 K를 피하고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K의 위험행동은 심각해져 갔다. 보호자의 무관심으로 상담치료도 진행되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 종일 그냥 내 옆에 두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k는 하루 종일 내 곁에 있었다. 그로부터 나를 제외한 모두가 편했다. 아이들은 K가 선생님과 함께 있어 괴롭힘당하지 않았고, 다른 선생님들은 금쪽 이를 나서어 맡아주니 편했다. 하나뿐인 보호자도 더 무관심해졌다. (내 새끼인지 남의 새끼인지... 차라리 챙기지 말 걸 후회도 많이 했었다.) 관리자 역시 민원이 줄어드니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아무도 안 받아줬던 K도 내가 옆에서 놀아주고 함께해 주니 익숙해지는 듯했다. 불편한 건 나뿐이었던 것 같다.
자세히 보았던 가까이 보았던 K는 더 심각했다. 무엇부터 고쳐줘야 할지 몰랐다. 어쩌면 고쳐준다는 생각 자체가 교사로서의 거만함이라고 느껴졌다. 오죽 답답했으면 내가 찾아간 상담소에서 그냥 누군가 같이 있어 주는 것부터 하라는 말에 혼 내든 놀리든 그렇게 눈에 보이게 있었는데 그게 서로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출장이나 회의로 자리를 비울 때면 참았던 돌발행동이 터져나갔고 나의 마음은 오히려 분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급식시간에도 언제나 함께였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고, 동화책 속 주인공처럼 짐승에 가까운 모습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은 한숨을 자아냈다. 내가 미쳐 밥 한술 뜨기도 전에 K는 식사를 종료했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만화 캐릭터처럼 웃는 아이의 입에는 덜 씹힌 음식물이 잔뜩 보였다. 식사시간에 화내기 싫어서 내 물 한 잔 떠오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가 가져온 물에는 음식물이 떠다녔다.
기싸움. 다 큰 성인이 초등학교 3학년 10살짜리와의 기싸움이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어쩌겠는가 이게 초등 교사의 업인 걸. 한바탕하고 나면 현타가 밀려오는 이 일상은 불완전한 존재에게 불완전한 세상을 완벽한 듯 알려줘야 하는 교사의 영원한 숙제다. 힘으로 억누를 수도, 논리적으로 이해시키기도, 동정으로 부탁하기도 어려운 교사의 마음에 이런 행동은 좌절 그 자체로 다가왔다. 잠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그 물을 마셨다.
K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 눈이 떤 것일지도 모른다. 역스러움과 분노가 뒤섞어 내장을 뒤틀었다. 시간이 멈춘다면 화장실로 달려가 뱃속 깊은 곳까지 꺼내서 씻어내고 싶었다. 마지막 한 모금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일각의 시간도 K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경고이자 오기이며 분노였고, 인내의 채찍이었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후 나는 나지막이 다시 이야기했다.
“다시 떠줄래.”
K는 대답 없이 물을 떠왔고 맑은 물이 가득 찰랑이고 있었다.
이후로 K는 달라졌다.라고 쓰고 싶지만 그런 건 동화책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 같다.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K는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나 역시 그날 일을 회자하거나 앙심을 품고 K에게 복수하지도 않았다. 둘만이 아는 일로 그렇게 묻혀갔고 떠올릴수록 역해서 한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도 기억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난 학교를 떠났고 K는 잊혀가는 듯했다. 후일에 들은 이야기로는 이듬해 불미스러운 일로 다른 학교로 떠났다고 한다.
아이가 중2가 되던 해 사이버가정학습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쪽지 한 통이 왔다. “저 K입니다. 이제 공부하려고요.” 간단하면서도 의미 모를 마지막 메시지로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성인이 된 K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나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그날의 해골물은 K에게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K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나를 못살게 구는 선생님에게 골탕을 먹인 속 시원한 날일까. 괜히 장난치다 선생님한테 죽을뻔한 무용담으로 남을까. 아니면 어떤 기억조차 남지 않는 나만의 기억으로 남을까. 과연 내가 잘한 일이었을까. 어쩜 그날 K를 혼내줬어야 할까. 행여나 K를 다시 만나게 되면 물어나 볼 수 있을지 모를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대답 듣지 못할 물음표만 남겨본다.
가끔 냉기가 가득한 식당의 종이컵만 한 은색 컵을 마주할 때면 그날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