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데뷔했습니다.
갓 데뷔한 아이돌을 보면, 뮤직뱅크 1위에 눈물 흘리고 연습실에서 자고, 빡세게 춤추고, 혼신을 다해 노래한다. 팬 서비스는 또 어떻고? 팬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소중히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팬들 한 명, 한 명에게 고마워한다. 그런데 아이들로 10년을 산 10년 차 아이돌을 보면 또 그렇지는 않다. 1위 소감 발표에 팬들에게 감사 인사하는 것을 잊지는 않지만, 예전과 같은 눈물이 흐르진 않는다. 여전히 춤은 잘 추지만 힘을 빡 주는 신선함보다는 관록에서 나온 춤 선이다. 팬들의 관계도 풋풋함과 설렘임도 있지만 친구 사이의 우정과 같은 정겨움이 느껴진다. 미디어에서 10년 차 아이돌이 되었다고 하면 진행자들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곤 한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오래 버티셨어요?"
그 질문은 나에게 와서 꽂힌다. 나는 어떻게 10년을 보낸 거지?
나도 교실의 슈퍼스타, 아이돌이다. 스무 명의 눈동자는 나를 쫓는다. 출근을 하면 어린이들은 예리한 눈으로 오늘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왔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열심히 관찰하고 듣는다. 그들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지금의 나는 10년 된 아이돌이고 신규의 나는 막 데뷔한 신입 아이돌이다. 신입이나, 지금이나 나의 마음은 한결같다. 다만 뚝딱임이 줄고 노련해졌을 뿐, 그리고 체력이 떨어졌을 뿐. 여기서 구르고, 저기서 구른 아이돌처럼 이제는 전보다 수업 준비도 수월하고 나를 내려놓고 가르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웃기게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절로 나온다. 관록의 아이돌, 그것이 10년 차 선생님의 모습이다. 몇 년 지나지도 않은 때지만 신규로 발령받았을 때의 나를 떠올리면 열정이 똘똘 뭉친 갓 데뷔한 신입 아이돌이었다. 연차만 달라졌을 뿐 나는 오늘도 교실의 아이돌이고, 어린이들과 함께한다. 그때는 알지 못한 것들을 지금은 몸으로 깨우친 것이 있고, 그때만 할 수 있던 것 중 지금은 할 수없는 것도 있을 뿐이다.
내가 처음 일하게 된 곳은 우리 집에서 왕복 2~3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출퇴근에 한 시간씩 걸리는 곳으로 출근하면서도 1시간 정도씩 일찍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하면서까지 수업 준비를 꼼꼼히 하고 퇴근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학교는 고요하다. 교실 밖으로 밝아지는 하늘이 보인다. 그 고요한 학교에서 수업 준비도 하고 수학이 부족한 학생에게 일찍 등교하라고 하여 보충 수업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등교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스무 명이 넘는 어린이들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아침에 했던 명상? 그런 거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이들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질서 정연한 모습에서 어지러운 교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교실의 열기가 식는다.
모두가 퇴근한 후 로그아웃된 다른 선생님들의 메신저를 보면서 '후후. 오늘도 열심히 일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한 시간씩 늦게 퇴근하여 집에 가는 길은 고되었고 나는 6개월 넘게 집에 가자마자 미친 듯한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엄마는 항상 너는 왜 제 시간에 퇴근을 하지 못하니. 라고 하며 같이 저녁 먹게 제시간에 퇴근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나는 엄마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내 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느라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것도 많았다. 매일 칠판에 편지를 쓰고 퇴근했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으니까, 오늘 하루도 힘내자. 어떤 날은 요즘 교실이 더러운 것 같으니 청소하자는 잔소리, 어떤 날은 그저 여러분이 참 사랑스럽다는 말은 남기기도 했다. 학생들이 나의 칠판 편지를 보고 댓글을 다는 건 아니지만 매일 꾸준히 편지를 쓰고 갔다. 그때는 이것이 열정인 줄 몰랐다. 그땐 이런 일상이 당연했으니까. 그땐 그렇게 애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니까. 이제는 잔소리도 관심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차마 부끄러워서 말을 못 했던 고백을 여기서 처음 해보고자 한다. 어린이들이 꿈에 나타난 적은 없는가? 내가 온 마음을 다해 담임교사로 있던 해에, 어린이들이 꿈에 나타나곤 했다. 근데 그냥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내 친구라는 설정이다. 꿈에서 우리들은 친구고 베프였다. 어떻게 이런 꿈을 꿀 수 있는지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우리들, 어린이들과 나는 꿈에서 친구처럼 대화하고 같이 놀았다. 내가 어린이들이랑 진짜 어린이처럼 놀다니. 하루가 24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담임으로서 내가 우리 반 어린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많다. 고학년을 맡는 때면 하루에 6시간을 같이 있기도 한 것이니, 내 인생의 1/4을 같이 보내고 있다. 온종일 우리 반 어린이들과 함께한 것으로도 모자라, 퇴근하고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교실에서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날에는 하루 내내 어린이들 생각을 해서 그런지 특히나 그런 꿈을 꿨다. 그 해, 내 마음의 방향은 언제나 우리 어린이들이었다. 다들 제자들이 친구로 나오는 꿈, 한 번씩은 꿔본 적 없는가? 과몰입의 결과, 나는 꿈에서 아이들과 허물없이 놀았다. 그해에 만났던 어린이들의 이름과 얼굴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잊으라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가끔 일이 고될 때 찬란했던 그 시절을 꺼내어 현재를 사는 힘으로 쓴다. 그 아이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오늘도 현재를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오늘의 나도 옹골찬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에도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