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반 바둑돌 진로교육 도전기 : 직업 정하기(첫째날)
"선생님은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해요.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성격은 어떤지 등등. 그래야 갈림길에서 자신 있게 나만의 길을 선택할 수 있어요. 둘째 사회. 여러분이 서 있는 그 길을 공부해야 해요. 자갈길인지, 모래 길인지, 구부정한 길인지, 반듯한 길인지.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 등. 그 길을 알아야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재미있는 시스템을 도입할 겁니다."
"시스템이요?"
"사회 시스템을 우리 교실로 축소해서 가져올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봅시다."
"우리 사회는 돈으로 굴러가요. 그런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요. 돈을 모르면 우리 사회를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돈을 직접 벌고 쓰는 경험을 시킬 겁니다. 우리 반 학급 화폐는 바로"
나는 준비한 상자를 열었다.
"바둑돌입니다."
"흰 돌 하나는 우리 돈으로 약 1,000원으로 약속할게요. 그냥 느낌만 주는 거예요. 검은 돌 하나는 5,000원입니다. 그러면 흰 돌 몇 개가 모여야 검은 돌 한 개가 되나요?"
"5개요."
"맞아요. 그러면 지금부터 진짜 우리 사회에서 돈을 어떻게 벌고 어디에 쓰는지를 찾아볼게요. 그리고 우리 교실에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소득과 소비의 예를 모두 아이들에게 이끌어 냈다. 생각보다 많은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소득 부분에 '보험' 이야기가 나와서 놀라기도 했다. 이때 보험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부연 설명을 했다.
이제 이 내용을 어떻게 교실에 적용할지 정해야 한다. 소득 부분은 내가 먼저 직업을 통한 근로소득과 일회성 알바로 제한했다.
"우선 이 두 가지로 돈을 벌어볼게요. 처음부터 너무 많이 도입하면 어려워요. 만약 여러분이 잘 적응하면 그때부터 사업과 부동산을 적용할게요."
문제는 소비였다. 돈을 쓰고 싶게 만들어야 아이들이 학급 화폐에 관심을 가진다. 매력적인 소비 콘텐츠를 이끌어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세금 : 교실에서 쓰는 자릿세, 전기세, 수도세 개념으로 일주일에 한 개 아니면 두 개 걷자는 얘기가 나옴. 결국 투표로 일주일 1개로 결정됨. 세금을 결정하기 전 일주일에 최저임금으로 흰 돌 5개를 받을 수 있다고 얘기함.
* 임대료 : 부동산 개념은 이 시스템에 적응한 뒤에 하기로 얘기함..
* 식비 : 급식비 얘기가 나옴. 반대 의견이 많아서 내가 다른 의견을 제안함. 교사가 간식을 줄 때 그냥 주는 것은 재미없으니 간식을 아이들에게 팔겠다고 함. 이때가 아이들 반응이 가장 좋았음. 간식으로 일단 흥미를 끌어야겠음.
* 생활비 : 준비물 빌릴 때 돈을 주자는 얘기가 나옴. OK 함. 얼마나 줄지는 못 정함.
* 병원비 : 보건실 갈 때 돈을 내고 가자는 얘기가 나옴.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반대로 무산됨.
* 여행비 :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결석할 때 돈을 내자는 얘기가 나옴. 현장체험학습은 부모님과 떠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한 듯. 이 문제는 학부모가 민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교사 자체 커트. 대신 다른 제안을 함. 우리 반에서 체험학습 갈 때 간식이나 음료를 바둑돌을 내야만 가져올 수 있는 건 어떠냐고 물어봄. 대부분 고개를 저으며 반대함. 무산.
* 기부 : 이때는 내가 생각해 둔 게 있어서 먼저 제안함. 과자 파티나, 자유놀이 시간 등을 일정 금액 이상의 기부가 나오면 하는 게 어떻겠냐고. 예를 들어 과자파티 기부칸에 몇 개 이상, 자유놀이 시간 기부칸에 몇 개 이상 넣으면 실행하기. 아이들 대부분이 좋다고 함.
* 벌금 : 벌금제도를 도입하기로 함. 돈을 뺏는다는 개념에 혹시 반발심이 생기는 아이가 있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투표까지 시킴. 25:3으로 벌금제 통과. 조금 걱정됨.
아이들의 의지를 불타오르게 할만한 매력적인 소비 콘텐츠가 부족하다. 이 부분은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 학급 쿠폰제 등을 고민하고 있다.
***
다음은 소득이다. 이 부분은 일부러 뒤로 뺐다. 1인 1역과 연계하기 위해서다. 먼저 아이들에게 '직업'의 개념을 가르쳤다.
"여러분이 밥을 먹는 게 직업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직업은 다른 사람들이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개념이에요. 예를 들어 선생님은 누가 필요로 하는 일이죠?"
"국가요. 국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죠. 국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필요하니까 선생님을 뽑았고, 그 대가로 국가에서 돈을 주고 있어요. 삼성 전자는 어떤 일을 필요로 할까요?"
"핸드폰을 만드는 일이요."
"맞아요. 그래서 핸드폰 만드는 직업을 만들어 사람을 뽑고, 일을 시키고, 돈을 줘요. 직업을 선택할 때는 이처럼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관찰해야 돼요.
그 결과 이제는 밥을 먹는 것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죠?"
"먹방 BJ요."
"그렇다면 먹방 BJ는 사람들의 어떤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걸까요?"
"배고픔이요."
"대리만족이요."
"맞아요. 없던 필요를 이끌어내서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도 있어요. 요즘 사회가 그래요. 참 신기하죠?"
별 반응이 없다. 너무 어려운 개념인가..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우리 반 직업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우리 반이 필요로 하는 일이요."
"맞아요. 지금부터 우리 반이 어떤 일을 필요로 할지 얘기해주세요."
그렇게 나온 여러 직업과 필요로 하는 사람 수.
이제 하나의 직업당 얼마를 주는 게 적당할지 선택해야 한다.
최저임금으로 하루에 한 개씩 일주일에 5개를 최소로 했다. 그리고 너무 큰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 10개까지 주기로 했다.
정말 하나하나 모두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그 과정은 정말 힘들었다. 투표할 때마다 투표한 수를 모두 합쳐서 우리 반 28명이 안 되면 처음부터 투표를 다시 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여러분이 직접 만들어 가는 겁니다."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주문처럼 외웠다. 모든 결정에 한 명도 빠짐없이 참여시켰다. 처음에는 한두 명씩 빠졌지만, 처음부터 다시 하고, 일어서서 투표하는 등 정말 끝까지 가자 나중에는 대부분 직업에서 100% 투표율을 보였다.
수많은 투표와 합의 끝에 직업별로 주급을 정했다.
이제 이 이제 직업을 정할 차례다. 직업 하나씩 호명하고 지원자를 받았다. 인기가 없는 직업은 급여를 하나씩 높이는 방법으로 인센티브를 줬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은 일부러 손을 늦게 들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때 지금 손을 들면 바로 직업을 가질 수 있지만, 하나 더 벌겠다고 기다리면 경쟁이 붙어 직업을 못 가질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칠판 요일과 미세먼지 알림 담당 직업인 '칠판이'는 인기가 없었다. 6개로 시작한 주급은 7개, 8개를 거쳐 10개까지 올랐다. 결국 한 아이가 주급 10개로 '칠판이'를 가져갔다. 앞서 직업을 정했던 아이들이 불만이 쏟아졌다.
"그럴 거면 모두 다 10개로 해요."
"처음부터 다시 해요."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됐다. 일단 끝까지 정하고 얘기하자며 달랜 뒤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시 '칠판이' 문제로 돌아왔다.
"칠판이가 주급 10개를 받는데 그러기엔 형평성이 안 맞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 우리 10개에 맞도록 일을 조금 추가시키는 건 어떨까?"
칠판이도 동의했다. 그렇게 쉬는 시간마다 칠판 관리하기 일이 추가됐다. 그래도 여기저기 불만은 이어졌다. 칠판이도 계속되는 친구들 불만이 불편해 보였다. 결국 칠판이 동의 끝에 주급을
8개로 낮추기로 했다.
"8개 밑은 이 시스템을 파괴하는 거라서 선생님도 허용할 수 없어요. 일단 칠판이의 10개는 다른 직업과 비교했을 때 너무 형평성이 안 맞아서 조정을 했어요. 괜찮나요?"
그제서야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에도 불만인 아이들은 꼭 있다. 확실히 해야 했다.
"그래도 아까 나왔던 의견 모두를 존중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렇게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주급을 모두 10개로 하자는 의견과, 처음부터 다시 하자, 이대로 하자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최종 투표를 진행할게요."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 최종 투표까지 실시했다. 결국 이대로 하자는 의견이 대다수가 되어 확정됐다.
***
나름 학급 화폐 첫날이기 때문에 6교시엔 직접 직업 활동을 했다. 그리고 바둑돌을 지급했다. 하루에 한 개. 추가 수당은 금요일에 주기로 했다. 세금은 수요일에 걷기로 했다. 정하고 보니 내일이 수요일이다. 세금도 내일부터 바로 걷기로 했다.
그런데 바둑돌을 받는 아이들 반응이 영 미지근하다. 좋아하는 건가, 별 관심이 없는 건가. 아니면 2교시부터 시작된 학급 화폐 이야기에 지친 걸까.
사실 나도 지쳤다. 민주주의 과정은 정말 힘들다. 하지만 사회를 만들어가는 건 교사가 아닌 우리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절차라고 위로해본다.
잘 하고 있는 걸까. 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