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야기] 미술, 좋아하세요?
한 사람에게는 다양한 입장이 있습니다.
'나' 자체로서의 삶, '직장'에서의 삶, '가족'속에서의 나 등등
각각의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고 수행할 수 있는 퍼포먼스의 역량은 달라집니다.
모든 입장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면 좋겠지만 사실은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많은 고민에 빠집니다.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은 이 말입니다.
"신은 나에게 모든 스탯을 찍어주시지는 않았다."
미술
미술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미술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흔히
"오~ 그림 잘그리나봐요?"
라고 말합니다.
참 아쉽죠.
그렇다면 그림을 못그린다면 미술을 좋아할 수는 없는걸까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뭘 좋아하면 꼭 그걸 잘해야하는걸까요?
(이건 제가 늘 하는 생각입니다.)
단적인 예로, 일단 저는 미술을 좋아하지만 그림을 못그립니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맞는 삶은 정말 행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삶도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편안한 취미가 생기기 때문에 삶은 더 풍요로워지죠.
미술 작품을 좋아해서 여행을 가면 즐길거리가 더 많습니다.
길을 가다가 보이는 예쁜 풍경들이 마치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주변의 귀엽고 독특한 물건들을 보면 한 번 더 보고 눈에 담아둡니다.
세상의 것들을 즐겁게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삶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저는 반드시 그림을 잘 그려야할까요?
#아는 것
미술을 아는 것은 사물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문화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고 이 문화 속에서는 '시각 이미지'라는 것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시각적'인 자극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나오는 장면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중)
주인공 앤디가 아울렛에서 코발트 블루 색깔의 니트를 집어 입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게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유가 없는 색은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냥 파란색 니트잖아요."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옷들의 색이 달라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색 다음에는 패턴이, 패턴 다음에는 프린팅이, 프린팅 다음에는 옷의 전체적인 스타일이 보였습니다.
그러면 유행을 알게되고 역사를 알게되고, 결국은 문화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패션은 현대인들이 가장 가깝게 접하는 '미술'의 영역입니다.
옷을 골라서 입는 다는 것은 결국 '미술을 아는 것'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은 이렇게 알아가면 됩니다.
우리는 미술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을 고를 수 있으면 되고, 화가가 뭘 그렸는지 생각해 볼 수만 있으면 됩니다.
와인을 처음 접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하는 종류의 와인이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거야."
미술도 같지 않을까요?
수많은 영역와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
미술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더 찾아 볼 것이냐, 여기서 멈출 것이냐.
여기서부터는 미술을 지식적으로 좀 더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과 나의 감상으로 만족하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미술을 아는 것이란,
내가 미술을 즐길 수 있으며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즐기는 것만으로도 미술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는 것
앞서 말했듯이 미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술을 잘하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럼 야구는?
야구를 꼭 잘해야 야구를 좋아합니까!!!!!!!
전 배트를 잡아본 적도 없지만 가을 야구 보러가는 맛으로 가을을 기다립니다!!!
내가 직접 그 과정 안에 있는 것은 '미술을 하는 것'입니다.
과정 안에서 내가 어떤 결과물을 내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것으로 평가를 받거나 값어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잘 그리지 못하면, 결과가 그럴듯하지 못하면 숨어버립니다.
미술은 정말 많은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모든 것이 재료가 될 수 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아는 영역에, 비싼 재료에 발묶여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서예도 미술의 한 영역이고 붓과 먹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죠.)
미술을 잘 하면 정말 좋겠지만, 세상 사람들은 사실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 수준에서 머물러 있는 성인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된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이기에 섣불리 못그린다고 단정짓지 말아야합니다.
잘 그리지 못한다고 주눅들지 마세요.
그것은 못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직 그리는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미술의 테크닉은 마치 수학 공식처럼 정해져 있습니다.
기본기라고도 하죠.
이런 기본기를 충분히 배운다면 누구나 기본적인, 그럴듯하게 여길만한 작품을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계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요?
진짜 내 생각이 담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똑같이 그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아무렇게 그리고 우기는 것은..... 안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의 노력도 사실 대단합니다.
그들의 능력과 시간은 그 무엇보다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가 그림을 잘 그릴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좋아하는 방식 그대로 미술을 즐겨주세요.
자, 다시 생각해봅시다.
누구나가 다 인정할만큼 테크닉적으로 우수한 그림을 그려내는 사람들은 다 미술을 좋아할까요?
아니면 내가 본 것을 작은 종이라도 매일매일 한 장씩 그리는 사람이 미술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
#가르치는 것
저는 교사이기 때문에 늘 '가르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퇴근하고 나면 직장의 것들을 잊어야 윤택한 삶이 된다고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네요.
미술 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들의 소스를 얻기 위해 늘 '이걸 어떻게 수업에 넣어볼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술을 가르친다는 것.
어렵습니다.
무엇을 가르쳐야 잘 가르친 것일까요?
그것은 수업의 목적에 따라 달라집니다.
입시를 위해서, 혹은 대회를 위해서, 특정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라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학교라는 공간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이럴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고민해야하는 것은 학교 미술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학교 미술 교육의 목적은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인생에서 어떻게 미술을 향유할 수 있을지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체험과 표현, 감상의 영역으로 미술이 구분되며, 모든 영역에 대한 성취기준이 존재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태어날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스탯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기 때문에 표현 방식이 더욱 자유롭고 생각하는 뇌가 더 말랑말랑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제대로 자극하기 위해서 교사가 연구를 한다면, 화실을 가서 그림 실력을 배우기보다 오히려 세상을 관찰하고 더 많은 사례들을 읽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아 돌아와 지금 초등학교 교실에 투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고 따라그리고 싶어하며 똑같이 따라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잘 그리는 것와 잘 가르치는 것은 다릅니다.
아이들에게서 잘 그린 그림을 뽑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무엇을 그렸는지 알고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미술을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전문가입니다.
아는 것, 하는 것, 가르치는 것
미술 교육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 입니다.
'미술 교육'에서 '미술'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지는 수업이 난무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번 수업을 통해 어떤 것을 배워가야하는지 목표를 설정하고 수업을 구성해야하지만
어느새 목표는 온데간데없고 "잘 그린 것만 같은" 작품을 뽑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미술 교육은 사라지게 되고, 선생님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만이 미술을 잘 가르친다는 잘못된 편견을 가집니다.
편견을 전환으로 생각해보세요.
못그리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고
못그리기 때문에, 오히려 쉽고 재밌는 것을 잘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지금의 방식대로 미술을 좋아하셔도 된다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