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知의 세계] 르누아르,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 (1)
저는 르누아르의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급고백)
이유는 그림이 정말 예뻐요.
그래서 프랑스를 여행할 때마다 오르세 미술관에 꼭! 반드시! 들러서 르누아르의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왜 르누아르의 작품은 유독 예뻐 보일까?'
색감도 핑크빛이고 사람들도 다 동글등글한 것 같고...
미술을 공부하기 전 처음 르누아르의 작품을 보았을 때는
단순히 '예쁘다'에서 멈췄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감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르누아르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르누아르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기전에 '오르세 미술관'에 대해 잠깐 말씀드릴게요.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 센강에 있습니다.
원래는 기차역이었는데 큰 화재 이후 지금의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래서 내부가 상당히 특이합니다.
전체가 뻥- 뚫린 구조이고 중간의 복도를 중심으로 작은 전시실들이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가서 왼쪽 전시실부터 순서대로 관람하면
시대별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5층으로 올라가면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여러분을 반겨줍니다.
(간혹 작품들이 섞여있어서 0층에 고흐 작품이 있기도 해요.)
오르세 미술관 5층에는 시계가 있습니다.
이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는.......
시계 너머로 보이는, 강 건너 있는 것은
한달 내내 관람해도 다 관람하기 힘들다는
루브르 박물관입니다.
2017년 1월,
설레는 마음으로 오르세 미술관에 입장했습니다.
르누아르의 감동을 최고치로 높이기 위해
당장 5층으로 달려가지 않고
그리스시대 미술부터 차근히 감상하며
천천히 19세기로 다가가고 있었어요.
어휴 19세기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3시간이 넘게 걸리더라구요.
점점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5층 인상주의로 들어서는 순간.
네.
르누아르의 작품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냐구요?
서울에 있었습니다.
전 당시 신규 발령을 받은 해라 정신이 없었고,
근무지가 경남이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하는 전시회는 꿈도 못꿨습니다.
게다가 1월 초에 출국을 했으니 당연히.... 몰랐....
그렇게 5시간을 오르세에 있었으나,
르누아르 작품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악모..ㅇ...
아니 추억이 있네요.
(넉다운.)
그럼 이제 르누아르의 이야기로 들어가볼까요?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년 2월 25일~1919년 12월 3일)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여성의 육체를 묘사하는 데에 있어 특출난 표현을 선보였으며 풍경화에도 뛰어났다. 인상파 중에서 세잔의 엄격에 대비되는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게 화려한 멋을 보인 것은 르누아르이다. 세잔이 풍경 속에 자연의 정신을 품듯이 르누아르는 여인을 그려서 미의 도취를 자아내고 있다.
- 출처: 위키백과
미술을 전공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나봅니다.
사실 르누아르는 그림을 배우고 그리기에는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그가 그림을 그린 곳은 캔버스가 아니라
'도자기'였습니다.
도자기에 꽃을 그려넣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그 돈으로 그림을 그렸죠.
그렇지만, 그마저도 공장에 기계가 들어오면서
일자리를 잃게됩니다.
도자기 공장을 그만둔 르누아르는 부채나 양산에 꽃을 그리며 미술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미술계에서 화가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바로 '살롱전'이었습니다.
르누아르의 '살롱전' 첫 당선작은 초상화였습니다.
살롱전에 당선된 이후 르누아르에게 초상화 주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초상화 화풍을 그대로 그리던 르누아르는 이렇게 어둡고 딱딱한 초상화가 점점 싫어졌습니다.
"이런 어두운 초상화는 아무 의미가 없어."
이후 르누아르는 자신만의 색을 넣은 그림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르누아르의 색이 점점 드러나는 것이 보이나요?
초상화를 그릴 때는 여자와 아이, 그들이 웃는 모습을 주로 그렸습니다.
(1) 행복한 분위기를 표현하기위해 르누아르는 검정색 물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 그림의 테두리를 강조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서 몽글몽글한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3) 사람의 머릿결과 피부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을 표현해내려고 했습니다.
르누아르 초상화를 보다보면 한 소녀가 계속 등장합니다.
이 아리따운 소녀는
소녀가 아닙니다.
(반전, 심지어 세 번째 사진의 여자는 아내가 아니라 유모 가브리엘 입니다.)
이 소녀는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 '장 르누아르'입니다.
첫째 아들에 비해 조용하고 차분했던 장 르누아르를 많이 그렸습니다.
아마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모델이 되어 잘 앉아있었겠죠?
르누아르는 부드러운 머릿결을 좋아했기에 아들 장의 머리를 자르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르누아르 작품에서 장 르누아르는 '아들'이 아닌 '딸'처럼 보였습니다.
(여담)
르누아르는 여자 모델을 많이 그렸습니다.
여배우, 친구 아내, 옆집 여인 다 그렸죠.
집에서 아이들 봐주는 유모도 그렸는데요,
그려도 너무 많이 그리고 유모가 바뀌어도 또 그려서
아내가 많이 질투했다고 해요.
이렇게 아리따운 소녀, 아니 소년은 커서 훗날 프랑스 영화 감독이 됩니다.
장 르누아르 (Jean Renoir)
1984.9.15(프랑스) ~1979.2.12
르누아르의 초상화를 몇 개 더 보며 초상화는 마무리하겠습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구요,
제가 좋아하는 작품 2점입니다. :)
2편에서는 르누아르의 다른 작품들을 보여드리면서 이야기해드릴게요. 다음에 만나요!
* 모든 그림은 위키미디어에서, 사진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