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학급 운영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나요?
교사의 한 해 시작은 3월 2일입니다. 3월 2일을 위해서 1, 2월 두 달을 쏟아내어 준비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할 지 고민하는 시간동안 어찌나 설레던지요.
그렇게 야심차게 준비했던 3월 첫 날.
그리고 어느덧 한 달.
여쭈고 싶어요.
일에 치여, 아이들에게 치여
찬란한 학급 운영의 꿈은 어떻게 무너지고 있나요?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바로 교실 살이입니다.
하지만 꽃바람같은 4월의 간지러운 물결에도 쉽게 무너지는 것이 있죠.
'초심'입니다.
나와 너의 마음은 절대 같을 수 없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이 것도 해야지, 저 것도 해야지' 하면서 세상의 모든 자료를 탐냅니다. 분명 작년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 같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새로운 의지를 물태우며 다가올 아이들을 위해 준비합니다.
작년에 들었던 연수에서 인상 깊었던 다른 선생님의 학급 운영 방식을 도전하기도 합니다. 새로 만난 동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옆반 선생님이 하고 계신 학급 행사도 따라해보고 싶습니다.
올해만큼은 절대 화를 내지 말아야지, 수업은 꼭 일주일 전에 완벽하게 준비해야지, 꼼꼼하게 검사해야지 등등
그렇게 학습지도 인쇄해두고, 체크리스트도 만들고, 아이들의 루틴도 준비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입니다.
3월 2일, 교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 아이들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같지 않습니다.
아무리 너희들에게 좋은 활동이라고,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설명해도 아이들은 모릅니다. 점점 기운이 빠지고 힘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제 자신입니다.
계획했던 프로젝트를 하나 둘 씩 포기하는 것은 아이들이 힘들어해서가 아니라 '내가 힘들어서, 내가 지쳐서'입니다.
마치 수학의 정석 문제집에서 집합 부분만 손때가 탄 것 마냥 아이들의 참여도도, 나의 열정도 그렇게 점점 가라앉습니다.
학교는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3월의 학교는 매우 바쁩니다.
'기초 조사서 받기, 학급명부 작성하기, 각종 신청서 및 안내장 회신 받기'와 같은 학급 내의 업무
'업무 추진 계획하기, 각 부서 업무 협조하기, 교육과정 설명회'와 같은 학교 업무
상황에 따라 학년 교육과정 짜기, 학습 준비물 신청하기, 각종 예산 사용하기 등등
게다가 학부모 공개수업과 학부모 상담주간까지 아주 환상적인 콜라보입니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하루를 복기할 틈도 없이 쌓이는 메신저와 전화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몰려오는 기한안에 쳐내는 것만으로도 3월은 충분히 힘듭니다.
근데 대체 그 많은 것들을 검사하고, 점수를 매기고, 정리하나요.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사치인 3월에 말입니다!
검사해야할 것들이 하나 둘씩 밀리고, 기록할 거리들을 하나 둘씩 미루다보면 산더미처럼 쌓여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저는 수학익힘책을 검사할거라고 걷었다가 도저히 시간이 없어 검사를 못했는데, 수업은 해야해서 그냥 다시 나눠준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처음 마음먹었던 체크리스트 몇 가지를 이 악물고 모른척하며 하나 둘 폐기합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 때의 아이들과 다르다
'작년 애들은 잘 했는데, 올해는 왜 이렇지?'
같은 학년을 연이어 맡는 경우 편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나의 교실을 작년에 만들어 봤으니 그대로만 하면 될 것 같지만... 그럴리가요.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기 초부터 함께 만든 학급분위기는 2월이되면 정점을 찍고 종업식으로 마무리합니다. 즉, 완성된 학급이 나의 최근기억이라 힘들었던 작년 3월이 이미 희미해진 상태입니다.
다시 돌아 3월이 된 지금, 삐걱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작년 학기 말 아이들과 현재 학기 초 아이들을 비교하지 마세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전여친을 떠나보내듯 아련하게 잊어주세요.
내 마음이 비어야 새로운 아이들이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올해는 망했다
우리는 어떻게든 1년을 살아야합니다.
그러기에 이제 겨우 1/12만 달려왔는데, 왜 섣부르게 판단하십니까? 선생님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무너지지 마세요. 그냥 올해의 선생님에게 맞지 않는 방식이었던 것뿐이니까요.
이 모든 걸 해내는 멋진 분들도 많습니다. 그 분들이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까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그분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탓하지 마셔요.
'나는 끈기가 부족해, 섬세하지 않아.'
그렇다면 그런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시면 됩니다.
선생님이 끌고 나갈 수 있고, 선생님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세요. 모든 학급 규칙과 학급 시스템이 꼭 3월 첫 날에 다져질 필요는 없습니다. 4월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남은 11개월을 어떻게 잘 지낼지 고민하는 겁니다.
"맞아.. 맞아 맞아......"
글을 읽으시는 동안 한 번이라도 '맞아'라는 생각이 드셨나요?
그렇다면 저는 성공입니다.
선생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시면 좋겠습니다.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놓지 못해 잡고 있기보다 함께 더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새롭게 시도해보세요.
꾸며지고 화려한 학급 운영이 아니라 진짜 선생님의 학급으로 꾸며지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