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여행 최혜경 선생님 상편 완결 : 좋은 수업은 좋은 수업문화가 만들어 간다.
2017년 5월 25일 아침 8시에 서울역 지하철에서 내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려
겨우 대구행 기차에 올라 탔다.
나의 배움을 위한 수업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구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간다.
이번이 3번째 방문이다.
수업을 공부하다보니 책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좋은 수업을 보는 것이 절실했다.
그래서 수업을 보러다닐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누구에게 부탁할지
어디부터 가야할지 몰랐다.
그러던 중 나승빈 선생님이 수업교실에서 이야기했다.
"대구 최혜경 선생님 수업 보러가는데 같이 가실래요?"
갈급했던 나에게 승빈샘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같이 가지는 못했다.
그 후 최혜경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서 날짜를 잡았다.
사전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선생님의 모습을 먼저 접할 수 있었다.
'아이들 스스로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서로 도우며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격려한다.'
모두 좋은 말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하도록 만든다는 말인가?
선생님의 수업을 보러 갈때에는 이런 마음가짐이었다.
'가서 수업기술을 많이 배워 와야지. 어떤 수업방법을 쓰시는지 궁금하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도착해서
인사드리자 마자 수업하는 교실로 최혜경 선생님과 함께 향했다.
1학년 수학수업시간.
눈씻고 찾아보아도 특별한 수업기법은 보이지 않는다.
기법보다 더 눈에 들어 온 것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몸동작.
미소로 한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낮지만 따듯하고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들은 이내 몰입한다.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러나 내 예상을 뒤흔든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수업 후에 나눈 대화에서
나는 예상치 못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다.
1학년 수학수업시간.
특별한 수업기법은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은 신경도 안쓰시고 한 아이와 대화를 하셨다.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마주치시며 미소어린 얼굴로 대화를 지속하셨다.
양은석: "선생님 아이 한명하고 수업 중에 이야기 하시던데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떠들거나
딴짓해서 수업에 지장이 있지 않나요?"
최혜경:"뭐가 문제가 되나요?"
양:........
최: "한 아이만 보는 것은 그 아이와 대화하는 거예요. 다른 아이들은 들을 수도 있고 안들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억지로 듣게 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듣는걸까요? "
맞다 억지로 듣게 한다고 듣는게 아니다. 그래도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건데.....
최: "들을 아이들은 듣고, 안들을 아이들은 그 아이 흥미가 아닌거예요. 수업으로 돌아오면 아이들이 다시 들어요. 오직 그 아이를 위해서 이야기 나누는거예요.
그리고 익숙해져 제가 작은 소리로 한 아이를 도와주면 다른 아이들도 듣고 있어요.
아이들이 편안해 하죠.
왜냐하면 내가 그 상황이 되어도 선생님이 그렇게 해줄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오직 그 아이 하나를 위해서 귀기울이고 마음을 내어준 적이 있던가?
양: "그래도 수업중 대화가 길어지면 진도 못나가잖아요."
최: "그건 교사인 내 목표죠.
아직도 수업 들어가기 전에 교실 문앞에서 다짐해요.
내 목표에 치중하지 말자."
맞다. 나의 목표를 완수하려고 하는 순간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최혜경 선생님은 교실 문앞에서 항상 다짐한다고 하신다.
많은 자료를 준비했다고 할지라도 교사인 나의 목표를 위해서 수업을 하지 말자.
아이들을 보자.
최: "예전에 수업준비를 철저히 할 때가 있었어요. 잘하려고 의욕이 앞서니까 한번두번 가르치다가 반복적으로 안되는 아이에게 야단을 친거예요. 그런데 그 주변 아이들 얼굴이 일그러지더라고요. 그때는 몰랐어요.
방과후에도 남겨서 지도를 했어요.
그런데 우리반에 모범적이었던 한 아이가 와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선생님 그러지 마요.'"
못한다고 다그치지 말라는 그 아이의 말을 10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고 하셨다.
순간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그 말이 나에게 하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선생님 그러지 마요.'
눈물이 흘렀다.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학생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선생님 그러지 마요"라는 말은 교사로서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학생이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지, 학생이 어떤 마음인지, 학생의 배움을 위한 접근은 어떠해야하는지 한번 더 헤아려 보라는 신호였다.
교사의 입장과학생의 입장을 두루 살피는균형이 필요하다.
배움의 관점과 태도의 관점.
수업 중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어려워요"라고 소리쳤다.
양은석: "선생님 한 아이가 '어려워요.'라고 했어요. 수업 도중에 갑자기 그런 말을 큰소리로 내뱉으면 화나지 않으세요?"
최혜경: "아니요."
양: .......
최: "아이가 어려워한다는 것은 자신의 문제가 됐다는 거예요. 머릿속이 혼란해서 알고 싶다고 표현한 거예요. 아이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죠."
아.....
나는 그런 말이나에게 도전하는 것처럼 느꼈었다.
나는 그 것을 배움의 관점이 아니라 태도 문제로 보았다.
교육을 아이들로부터 시작하려는 교사의 철학과 성찰이 이러한 관점과 이해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최: "어렵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아이가 힘든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알게 할지 생각해요. 이 아이가 스스로 알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까?"
'어떻게 아이를 가르칠까?'와 '어떻게 아이가 스스로 알 수 있도록 도울까?'는 차이가 크다.
배움의 주체가 누구인지 확실히 대비가 된다.
최: "아이들은 생각하다 하다 모르면 질문을 해요."
양: "학생들이 많이 손을 들지는 않는 것 같던데....."
최: "우리 아이들은 뭔가 달라요. 손들고 발표하지 않더라도 참여할 수 있어요."
"생각하는게 수업에 참여하는 거예요. 발표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없어요. 발표한 아이보다 듣고만 있던 아이가 더 많이 학습 할수도 있어요."
양: "아......"
최: "침묵이 나쁜게 아니에요. 발표 잘 하는 수업보다 생각하는 수업이 되어야 해요."
보여지는 참여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참여도 있는 것이다.
최혜경 선생님은 단 한번의 만남으로 나에게 수업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열어주셨다.
아이들이 어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스스럼 없이 표현해도 되는 선생님.
내가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주는 선생님.
스스로 궁금하게끔 만드는 선생님.
내가 어려워할 때 도와주려고 하는 선생님.
항상 미소로 대하는 선생님
나도 선생님을 닮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