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향한 상상력] 그림 앞에 머무는 너의 이야기
ⓒ 손명선
[너를 향한 상상력]에서 ‘너’는 세상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 즉 다른 사람, 사물, 동물, 식물, 장소, 공간, 자연 등을 포함하며, 이 주제에서는 내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들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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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한 작품 앞에서 관람자가 한참을 머무는 풍경,
관람자가 자신이 마주한 작품을 카메라로 찍고 있는 풍경,
작품을 배경으로 하여 관람자가 자신의 사진을 찍고 있는(셀카일 수도 아닐 수도) 풍경.
이 중 당신은 어떤 풍경 속에 자주 있었을까? 처음과 두 번째는 내 모습이고 세 번째는 내 경우엔 드물지만, 작품과 작품을 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작품과 그 작품을 찍고 있는 사람을 한꺼번에 찍는 것은 내가 자주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8년 전 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 카메라를 목에 건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분과 자주 마주쳤다. 호기심이 생겨서 그 분을 관찰해 보니 자리를 옮겨 다니시며 작품 앞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뒤에서 찍고 계셨다. 다가가서 여쭤보았다.
“뭘 찍으셨어요?”
자신은 정신과 의사로 퇴직을 했는데 미술관에 와서 사람들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그들을 카메라에 자주 담으신단다.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볼 때는 일단 멈추고 대체로 편안하고 긴장 풀린 자세가 되는데 그 모습에 매료되어 자주 미술관을 찾으신단다. 미술관에 작품을 보러 오기보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을 관찰하러 오신다는 이야기에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미술관에 가면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보고 싶은 전시, 그 전시의 작품들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후부터 작품을 보는 사람들도 작품과 함께 세트로 보기 시작했다. 요즘은 관람객을 관찰하는 것이 은근히 재미있기도 하고 셀프카메라로 찍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주겠다고 자청하기도 많이 한다. 이 글에서는 미술관의 작품과 관람객인 ‘너’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너를 향한) 내 상상력을 도움삼아 비집고 들어가 보려고 한다.
ⓒ 손명선
수많은 작품 중에 왜 너는 하필 그 작품 앞에 멈췄을까?
경쾌한 차림의 소년이 초상화 한 점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명화가 걸려 있는 이 미술관에서 왜 이 작품에 유독 마음을 빼앗겼을까? 팔짱을 끼고 왼발을 콕. 찍은 재미있는 자세로 그림을 보고 있는 이 소년과 그림 사이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남자일까? 여자일까?"
멀리서 보니 액자 속의 인물의 머리가 짧아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중일까?"
액자를 가로로 길게 늘여 시선이 닿는 곳까지 그린다면 어떤 사물이나 풍경이 그림 속에 들어올까도 궁금해진다.
"이 사람을 발끝까지 다 그린다면 다리는 꼬고 있을까? 어떤 신발을 신고 있을까?"
그림의 액자 바깥쪽 모습을 더 상상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 손명선
너는 왜 이 작품을 카메라에 담고 있을까?
네 옷과 네 백팩의 푸른 빛이
여인을 감싸도는 푸른 빛과 닿아 있구나.
일단, 네 눈길이 짙푸른 빛과 만나
너를 머물게 했고
그 여인이 푸른 빛을 배경 삼아 도드라지니
너는 카메라를 아니들 수 없었겠구나.
이 사진을 딱 한 사람에게 보낸다면
너는 누굴 꼽을까?
ⓒ 손명선
작품과 사람을 찍으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작품과 그 앞에 선 사람이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점은 사진을 많이 찍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관람자도 의식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품 앞에 선 사람들이 작품과 비슷한 느낌의 차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마그리트의 작품 앞에선 이 여인의 코트를 보면서 나는 그림 속의 가구들을 연결시켰고, 그녀의 운동화와 파란 하늘과 구름을 연결시켰다.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가 이 여인의 뒷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 손명선
이 두 사람은 미술관의 작품을 지키는 안전요원(Museum Safety Guard)이다. 우연히 마크 로드코의 작품 앞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각각의 작품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옷 색깔과 작품이 맞아떨어져서 순간포착한 사진이다. 이 사진 보면 웃음이 절로 나는 것은 왜일까?
이렇게 미술관에는 작품들도 있지만 (그 작품과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은 작품과 사람을 함께 감상해 보는 것도 미술관 관람에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또, 자신이 자주 머물게 되는 작품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감상활동이 될 것이다.
ⓒ 손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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