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향한 상상력] 백두대간 수목원에서 만난 앵두
앵두를 향한 상상력은?
통나무집에서 가족들과 이틀을 머물고 떠나는 날, 아쉬움에 혼자 수목원을 한 바퀴 돌았다.
‘짧은 시간 안에 다 돌고 갈 수는 없으니 발길 닿는 대로 일단 걸어보자.’
입구부터 오른쪽길을 따라 조금 걷다 짧은 계단을 오르니 음지식물 표지판이 보였다. 계단 올라가는 길 옆으로 물이 흐르고 축축하여 음산한 기분까지 들었다. 오종종 떨어져 있는 도토리와 낙엽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계단을 오르는데 개 한 마리가 쪼르르 나를 지나쳐 윗쪽에서 멈춘다. 움직이는 동물을 사진으로 남기기란 쉽지 않은데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며 포토타임을 내어주는 기특한 견공. 눈에는 안보이지만 나와 자기 사이에 동그라미 연결선을 그으며 (나와 너를 더해) 우리로 만드는 의식같은 것이었을까? 잠시 자신을 각인이라도 시키듯 재롱을 부리는 건지 몸을 둥글게 말았다가 멈춰 서있는 내 발 냄새도 맡으며 한동안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걷다가 멈춰 자연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담는데 벌써 갔으려니 했던 개는 10여 미터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자꾸만 반복되는 상황에 궁금증이 생겨서 이번엔 일부러 따라 걷는 척하다가 멈춰 서 보았다. 똑같이 앞장 서 걷다가 내가 멈추니 멈춘다. 그리고 내가 사진을 찍는 걸 재촉하지도 않으며 무심히 기다려 주고 내가 움직이면 자기도 앞장 서 움직이기를 계속 했다. 그렇게 그냥 지나쳐 가려니 했던 개는 깊은 산 속 수목원 산책을 30분간이나 앞장서서 이끌었다.
나와 너(앵두)의 관계는 매일매일 만나는 우리반 친구들과 나의 관계를,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 장면에서는 앵두가 교사고, 나는 학생이다. 수목원 전체가 큰 그림으로 들어오는 앵두와 처음 가 본 길에서 세상 신기해 이리저리 살피는 나는 교사와 학생 입장과 많이 닮아 있다. 먼저, 앵두는 나를 살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민감하게 살폈다. 또, 내 시간과 공간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주었다. 식물 꽃잎 수도 세고, 다양한 생김새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하는 내 리듬을 고려하면서 내가 필요로 하는 걸 츤데레 모드로 해주었다. 앵두는 방관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안내자로, 꼼꼼히 살피되 부담가지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학생을 대하는 교사와 같았다. "너"를 향한 내 상상력에 불을 지펴준 앵두에게 이 글로 감사함을 표하며 계속해서 "너를 향한 상상력" 연재를 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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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에서 "너"는 내가 아닌 모든 사람, 사물, 동물, 자연, 장소를 포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