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맹 탈출_10]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2): 핀란드 편
외국에서 우편물이 왔어요
행정실에서 온 메시지다. 핀란드에서 드디어 우편물이 도착하였다. Sanna가 보낸 것이다. 4층 교실에서 1층 행정실로 한달음에 뛰어가 커다란 오렌지빛 우편물을 받아왔다. 그 속의 내용물이 너무너무 궁금하여 살짝 뜯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우리 반에 온 것이니 반 아이들과 함께 열어보는 것이 맞겠다 싶어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개봉을 기다리는 우편물
어서와~ 핀란드는 처음이지?
2009년 6월, 미국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중 학회 참석차 산타마을로 유명한 핀란드의 Rovaniemi(로바니에미)에 간 적이 있다. 그 때, Sanna는 학회가 열린 로바니에미대학의 미술교육학과 석사과정 학생으로 학회 진행을 돕고 있었다. 몇 마디 건넨 인연으로 학회 중간에 로비에서 만난 내게 "오늘 학회 일정 마치고 저녁 때 하이킹도 하고 소시지 구워먹지 않을래?"란 제안을 했다. 사실, 처음에는 소시지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줄 알고 이런 구경 또 어디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약속을 잡았었다. 상상은 그냥 상상에 그쳤으며, Sanna는 가게에서 소시지 한 봉지를 샀고, 우리는 다운타운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 숲 속 공터 같은 곳까지 한참을 걸어갔다. 쉼터로 만들어진 장소에서 소시지를 구웠고 구운 소시지는 자연 속에서 더 맛있었다. Sanna가 준비해 온 차와도 잘 어울렸다. 숲 속 공터를 가득 채운 옆자리 다른 일행들의 기타음악도 자연스레 우리 것이 되었다.
‘이런 밋밋하고 잔잔한 놀이가 또 있을까?’
‘핀란드 사람들은 별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과 공간을 즐기는구나!’
지금도 신선한 문화충격으로, 핀란드하면 떠오르는 가장 큰 기억이다.
망루같은 곳에 올라가 아래쪽을 향해 줌인하여 찍은 사진
몇 학년 가르쳐?
Sanna와는 그 이후로도 계속 페이스북 친구로 지내며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핀란드 에스푸(Espoo)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는 소식까지는 알고 지내다가 작년 9월 Sanna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몇 학년 가르쳐?"
2학년 담임이지만, 미술은 4학년(전체)도 가르친다고 했다. 우리와는 다른 시스템인데 뭔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어 매주 목요일마다 인터넷 미팅을 하자고 했다. 시차(한국이 7시간 빠르다.) 계산을 해서 한국은 밤(10시)이고 거기는 퇴근 전(오후 3시)일 때 온라인에서 잠시 만나 우리 아이들(핀란드 4학년들과 우리반 4학년)을 연결시켜줄 무언가를 구상해 보자고 하였다. 구글닥스(GoogleDocs)에 파일을 하나 만들어 미팅할 때마다 우리가 한 대화를 쪽지 주고받듯 (인터뷰 복기하듯) 그 곳에 타이핑해 내려갔다. 이렇게 몇 주 하면서 우리의 생각은 하나로 모였다. 한국과 핀란드를 대표하는 것들을 큰 그림엽서(8절 정도의 크기로)형식으로 그려 서로에게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핀란드)을 대표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생각해 보게 하여 앞쪽엔 그림을 그리고 뒷면엔 자기 얼굴을 그리고 짧게 소개하는 글을 엽서 형식을 빌어 쓴 뒤 우편으로 서로 교환하자고 한 것이다.
핀란드 친구들이 보낸 것들 중 하나의 예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마침,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을 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그램은 핀란드 친구들 편을 다루고 있었다. 이 프로는 우리반 친구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었는데 핀란드를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두둥!
오렌지빛 우편물에는 핀란드 마이닝키 초등학교의 4학년 아이들이 보낸 핀란드를 알리는 엽서작품과 함께 핀란드의 대표 캐릭터인 무민 스티커, 무민 자석, 그리고 세 가지 맛의 캔디류가 담겨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작품 하나하나를 보며 핀란드를 느꼈다. 핀란드의 자연을 담은 그림들, 무민의 캐릭터들, 헬싱키 시내를 그린 그림, 놀이동산 등 다양한 테마로 핀란드를 알리기 위해 친구들이 애쓴 흔적이 작품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보였다. 반 아이들과 핀란드 친구들이 보낸 작품들을 모두 하나씩 들고 “휘바 휘바” 외치며 짧은 동영상을 찍었다. (이것은 함께 공유하는 블로그에 올려 핀란드 친구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손선생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 곳에서 보내온 Salmiakki를 1단계, 천연과일 맛 젤리를 2단계, 초콜릿을 3단계로 맛의 단계를 정해 1단계를 통과하면 그 다음 단계의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규칙을 정해 놓고 하나씩 시식 하게도 했다. 첫 번 째, 살미아끼는 핀란드 전통캔디류로 고약하기 그지없는 맛을 가졌다. 그 다음 것을 맛보기 위해서는 한 개 씩 다 먹어야 하는데, 수한이가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우는 수한이 덕분에 살짝 겁이 나, 다 못 먹을 아이들은 뱉게 하고 다 먹은 아이들은 2단계인 젤리를 두 개씩 주었다. 원래 먹기 싫은 것부터 먹으면 나머지는 다 맛있게 마련이라 게 눈 감추듯 3단계 초콜릿까지 다 맛을 보고도 아이들은 입맛을 다신다. 이렇게 핀란드 맛도 보았다. 스티커는 모둠별로 4개 씩 잘라서 주고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긴 사람이 먼저 선택하는 식으로 하나 씩 나누어 주었다.
핀란드에서 온 선물
받은 작품 중 일부
우리는 아이들 작품 외에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세트, 카카오톡 프렌즈 스티커, 두레생협 호박엿을 보냈다. 친구가 고맙게도 개봉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내주었다. 물건을 하나 씩 꺼낼 때마다 핀란드 아이들이 좋아하며 환호를 지르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평창올림픽 마스코트가 나올 때는 더 큰 환호성이 나오는 걸 우리반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
우리가 보낸 선물
보낸 작품 중 일부
Sanna를 만나 핀란드를 더 가깝게 느꼈고 그래서 어느 날은 겨울엔 몇 시에 해가 뜨고 지는지 궁금해 페이스북 톡으로 물어보기도 했다.(참고로 10시에 해가 뜨고 오후 3시에 해가 진다고 한다.) 가끔 핀란드 소식이 글로벌뉴스에 나올라치면 반갑기도 하고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렇게 지난 인연(나와 Sanna)이 현재의 인연(우리반 아이들과 Sanna의 학생들)을 서로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