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맹 탈출_09] 서로 다른 우리가 만나는 그 곳, 학교
등굣길 보도블록 위를 코딩하며 걷는 아이
며칠 전 등굣길에 영준이를 만났다. 2년 전 돌봄교실에서 <놀이로 배우는 미술교실> 수업을 할 때 만났던 아이이다. 상식이 풍부하여 설명도 잘하고 이야기도 잘 만들어내는 친구로 기억을 하는데 학교 근처 성당을 지나는 길에 함께 걷게 되었다. 사실 뒤에서 부터 그 아이를 발견하고는 따라잡을 때까지 걸으면서 재미있는 점 하나를 발견하였다. 몇 가지 색으로 구성된 보도블록을 나름대로 패턴을 고려하며 걷다 듬성듬성 청록빛 보도블록에서는 잠시 멈춰 섰다 다시 패턴 찾기를 하며 걷고 있는 것을 포착한 것이다. 그것도 혼자 중얼중얼 이야기를 만들면서 말이다. 뒤에서 쫒아가다가 만나자마자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영준아, 지금 어떻게 가고 있는거야? 왜 초록색에서 잠깐씩 머무르는거야?"
"아아, 초록색은 에너지예요. 제가 에너지를 거기에 멈출때마다 얻게 되는 거예요."
라며 자신의 의도를 말해주었다. 노란색 정지선과 발모양이 그려진 부분에 다다르자 궁금증이 발동하여 또 한 번 물어보았다.
"만약 이 위에 올라서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에 올라서면 무한에너지를 얻게 되는거죠.".
정말 재미있는 반응에 감탄만 연신하며 교실에 들어갔다. 그렇게 영준이는 학교가는 길을 자기 나름대로 코딩을 하며 걷고 있었다. 혼자 게임을 하듯 이야기를 만들며 온몸으로 코딩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고만할 때 같은 색깔 보도블록 찾아 건너뛰며 길을 가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은 최근 학교에서 코딩교육연수(홍수빈 선생님이 강사셨어요.)를 받고 나서인지 그 모습이 더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책상이 작업실이 된 아이
9월 복직으로 9월을 3월처럼 아이들을 익히고 각자의 흥미와 서로의 관계를 살피며 보냈다. 그러던 중 우리반 주아의 첫인상은 바로 주아책상이 주는 아우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친구들의 책상과는 다르게 까만 매직으로 그린 그림으로 뒤덮인 책상. "우리반에 예술가가 한 명 있구나!"로 시작된 궁금증은 매일매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주아에게로 옮겨갔다. 교실에 모아놓은 재활용 재료와 여러가지 학습준비물로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만들고 그려서 창작의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채우는 아이의 책상은 분주한 작업에 비해 너무 작아보였다. 교과서를 비롯해 필통에, 재료에 너무나 많은 것이 한 공간을 차지하여 여분의 책상을 하나 더 놓아 주며 '주아의 작업실'을 차려주었다.
철사로 척척 자전거를 만드는 아이
준범이가 물었다.
"선생님, 혹시 색철사 가지고 와서 학교에서 뭐 만들기 해도 돼요?"
"으음. 그래. 그런데 철사는 눈찌르기 쉬우니까 조심해서 다루면 좋겠어."
이렇게 시작된 철사로 자전거 만들기. 이제는 우리반 천장에 네 개나 자전거가 매달려있다, 그 중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자전거는 바퀴가 돌아갈 수 있는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하나의 재료, 하나의 활동, 무언가 주어질 때마다 그 시간에 빨려들어가듯 몰입하여 끝날 때까지 숨소리도 안나게 무섭게 집중할 줄 아는 아이이다.
친구들의 중국어 선생님이 된 아이
주니셩쯔콰일러(생일축하합니다)~
주니셩쯔콰일러(생일축하합니다)~
주니셩쯔콰일러(생일축하합니다)~
주니셩쯔콰일러(생일축하합니다)~
5분만에 우리반 애들은 생일축하노래를 중국어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장 하나만 한국말 발음으로 칠판에 적어주니 익숙한 멜로디에 넣어 떼창으로 불러제낀다. 다 우리반 중국어 선생님 유하 덕분이다. 요즘은 중국어 5분 강의가 10분 강의로 늘었고 파워포인트까지 제작하여 온다.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또 어떤 내용으로 강의를 해줄까?
다음 주 한자수업시간의 10분은 유하의 시간이다.
* * * * *
서로 다른 아이들이 모여 학급을 이루고 학교를 이룬다. 우리가 그들과 만나는 시간들은 만들어진 교육과정과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통해 일년 동안 채워지고 그들의 다름은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나는 미술과 환경, 그리고 관계 맺기에 관심이 있어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과 흥미에 대해 신호를 보낼 때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아이들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 편이다. 이것은 그들이 교실에서 자기색으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바로 '장소와 나와의 관계 맺기'라는 말로 여기에서는 표현하고 싶다. 학생 각자가 특정 장소에 관계를 맺어 자존감을 키우면 그 장소에 대한 소속감도 커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특히,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직 신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고 관찰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4인 24색, 우리반은 24색 크레파스 한 상자와 같다는 걸 늘 명심하면서...
ⓒ 박주아, <손선생>
참고설명: 불가사리와 조개껍데기를 서로 붙여 그 위에 그림으로 손선생을 조금 뚱뚱한 모습으로 표현함. ^^
(선물이라며 무심히 건네고 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