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맹 탈출_07]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1): 미국편
미국 펜실베니아주에 위치한 스테이트 컬리지 (State College)는 고향(강릉)과 현재 근무하고 있는 인천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이다. 긴 여행 같던 공부를 인연으로 머물렀던 이 도시는 주립대학의 본교가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인천에서 국제선을 타고 워싱턴, 디트로이트,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대도시에서 국내선으로 한 번 또는 두 번을 더 갈아타야 갈 수 있는 곳. 작은 몸체라 더 큰 굉음을 내는 국내선을 타고 바뀌는 지형들을 새의 눈이 되어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어 Happy Valley로도 불리는 그 곳에 도착한다. 위치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제공하자면, 미국 동부의 주요도시인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와는 차로 4시간 정도, 피츠버그는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곳이다.
이글에서는 그곳에서 만난 베프이자 인생멘토인 Patricia와의 인연을 소개하려고 한다. Patricia라고 이름을 부르는 사이이긴 하지만 70대에 처음 만나 지금은 80대가 되신 할머니 친구이다. 나이와 언어, 국경을 초월한 친구 사이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가끔 안부전화를 나누며 근황을 서로 전하고 미국에 갈 때마다 꼭 뵙는 분이기도 하다.
학교에 입학하고 수업시간(주로 읽고 온 과제를 소화해서 토론으로 진행되는)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토플이나 GRE(대학원 입학시험)의 시험점수내기 위주의 공부를 하고 어학연수도 해본 적 없던 터라 유학생치고는 귀와 입이 뚫리는 데에 남들 보다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 그래서 학교공부 이외에 영어로 이야기하고 미국문화에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친구가 필요해 외국학생들을 위한 Global Connection이란 교내 프로그램을 찾아갔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공부하러 온 다른나라 학생들이 서로의 문화도, 도움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현지 가정과 연결을 시켜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청을 하고 몇 달 잊고 지내던 어느날 연락이 왔다. 서로 관심사가 비슷하고 일인가정이니 그 조건이 맞아 서로에게 좋은 짝으로 맺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운전면허 주행시험을 위해 자신의 애마를 선뜻 빌려주시며 2번의 주차연습과 시험에 동행해 주셨고, 차가 없을 당시, 다운타운을 벗어나 차로만 갈 수 있는 골동품 가게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가게' 같은 가난한 유학생 신분에도 마음껏 지를 수 있는) 중고물건 파는 Goodwill에도 데려가 관심과 필요를 충족시켜 주셨고, 룸메이트와 함께 남들 다 떠난 기숙사에서 밀린 숙제하며 추수감사절 연휴를 쉼으로만 보내지 못할 때, 집으로 저녁식사 초대도 해주셨고, 세 개의 질문으로 세 개의 글을 써야 하는 초긴장표 종합시험을 치르는 동안에도 이런 저런 하소연을 하면 오롯이 받아 주셨고, 급기야는 중고차를 사고 얼마 안되어 라이트를 켜놓고 내렸다가 배터리가 방전되었는데 손수 집에까지 오셔 본인이 직접 자기차와 연결시켜 충전도 해주고 가셨다.
이렇게 받기만 하던 관계에도 반전이 생기는 일이 종종 있었다. Patricia에게 초기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 방사선치료가 필요했는데, 일주일 동안 병원을 오가며 운전을 해드렸다. 멀리 살아 오지 못하는 자식들이 무척 고마워하여 부끄러웠던 일인데 나라도 해드릴 수 있어서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1년, 2년, 3년...살면서 생활의 노하우도 생기고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서 Patricia에게 새로운 정보나 조언을 역으로 주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나도 미국생활에서 미국현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는 기쁨을 주는 그 관계가 너무 좋았다.
내 친구, Patricia의 집은 이제 State College에 있지 않다. 집은 월넛 스트릿에 그대로 있지만 재작년부터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뉴저지에 있는 아들의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실버타운으로 집을 옮겨 이제는 그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다. 사는 곳은 달라졌지만 스테이트 컬리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 미국에 가면 꼭 얼굴을 보고 오는게 큰 기쁨이고 가끔 전화를 걸었을 때 받지 않으면 걱정되어 자꾸만 전화번호를 누르게 되는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다. 오늘은 안부전화를 한 번 걸어봐야겠다. '지금이 밤 11시 45분이니, 거기는 오전 10시 45분이겠네.'
(이름을 부르는 사이이다 보니 글에 존댓말, 반말이 어색하게 마구 섞여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