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저희 반에 성후라는
또래보다 덩치가 큰 학생이 있습니다.
3월에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을 때,
인사 겸 상담 전화로 성후 어머님께 전화를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성후가 장난이 많이 심해요, 선생님.
아마 선생님 생각보다 훨씬 더 심할 거에요.
저는 괜찮으니 성후가 말썽을 부리면 엄하게 혼내 주시되, 친구와 다툴 경우 꼭 성후의 이야기도 끝까지 들어주세요.
애가 덩치가 크다 보니 친구와 싸우면 선생님들이 성후만 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성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저는 성후가 학급 내에서 친구와 분쟁이 생길 경우,
꼭 성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판단을 내리겠노라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휴업 기간이 지나
4월에 처음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왔습니다.
그런데 성후가 수업 시간에 막 돌아다닙니다.
5분단 끝쪽 자리였는데,
1분단까지 와서 수업 시간에 막 떠들고 장난을 칩니다.
주의를 주어도
1교시부터 5교시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 돌아다닙니다.
이런 아이는 정말 흔치 않은데...
화가 났습니다.
혼냈습니다.
결국은 못 참고 소리도 질렀습니다.
몇 주 후부터는 성후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후가 수업 시간에 다른 친구와 다툼이 생겼습니다.
역시 화가 났습니다.
물론 자초지종을 듣는 시간을 가지기는 하였지만
제 마음은 이미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선생님이 이야기했잖아!
수업 시간에 자꾸 돌아다니니까 문제가 일어나지!’
라는 생각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실제로 그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날 아이들을 집에 보낸 후, 일주일 내내 후회가 되었습니다.
반드시 성후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아이들 모두를 좋아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미워하지는 않는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었는데...
그 때부터 제가 이래서는 안될 것 같아
성후를 따로 불러 사과를 하고, 그때부터 성후의 장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보다 보니
장점이 정말 많은 훌륭한 아이입니다.
성격이 활기차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여
성격이 내성적인 친구에게도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반의 모든 친구들과 친하게 지냅니다.
그리고 표현을 잘 합니다.
친구에게 좋아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때로는 친구들과 다툼을 벌이더라도
꼭 먼저 다가가서 사과를 합니다.
친구와 화해가 잘 되지 않으면
그게 마음이 아파서 눈물도 보이고,
시간이 더 지난 후에도
잊지 않고 먼저 다가가서 화해를 하려고 시도합니다.
성후가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는 것은
교사로서 매우 힘들고
이에 대해서 계속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성후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저는 성후를 많이 예뻐하게 되었습니다.
성후도 저와 레포가 많이 형성되어서 처음보다 훨씬 많이 나아졌습니다.
최소한 이제 제가 앞에서 말하는 동안에는
돌아다니지 않으니까요.
올 한해 코로나19로 인해,
여러 가지 처음 겪는 일들이 있었고 힘든 일들도 많았었지만
성후와 함께 울고 웃고 했던 시간들도
저에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기울어져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평등을 찾다보면
불평등한 해법이 나오기 쉽다.
기울어진 땅에 서서 양손으로 평행봉을 들면
평행봉 역시 똑같이 기울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