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큰 잔치
가끔씩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제가 선생님이 되었을 때,
한 학생이 특정 분야에서 재능을 보이는데
그것이 비인기 분야라면
저는 그 학생과 학부모님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주어야만 할까요?
한때 잠시나마 우리 나라에서는 최고의 불모지 중 하나인
재즈 음악쪽으로 진로를 정하려고 했었던
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비인기 종목, 비인기 분야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은
단순히 열정만으로 극복해내기에는
힘든 부분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나라에서
실력과 인기에서 극단적인 반비례를 보이는 대표적인 종목,
여자 핸드볼에 대한 이야기와
여기에 대한 저의 교육적인 생각을 조금 섞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여자 핸드볼하면
저에게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가슴 아팠던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2번의 연장전과 승부 던지기 끝에 아쉽게 은메달을 획득한 후 있었던
울먹이는 임영철 감독님의 인터뷰.
“어떻게 올림픽에 이렇게 나와서 대표 선수하는
세계적인 기량을 갖춘 그 종목의 선수가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그런 팀이 국내에 없다는 자체가
그것을 뭘로 어떻게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 후 여자 핸드볼팀 임영철 감독의 인터뷰 中 -
여자 핸드볼팀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었는데
우리 국민들이 여자 핸드볼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었던 이 인터뷰를 통해
저 역시 우리 나라 비인기 종목과 비인기 분야에 대해
이와 같이 질문하며 많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핸드볼 큰 잔치
(매년 열리는 핸드볼 대회 중 가장 큰 행사. 지금은 ‘핸드볼 코리아 리그’로 개명)
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무작정 혼자 찾아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혼자서 2장의 표를 끊고...
그 때는 핸드볼 경기의 규칙과 선수들도 잘 몰랐었고
텅 비어 있었던 관중석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었지만
핸드볼 경기를 직접 찾아가서 보는 것은
우리 나라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던 여자 핸드볼팀을 위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제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그렇게 몇 년을 지속한 후에 회사를 지방으로 가게 되면서
더 이상 핸드볼 경기를 관람하지 못했지만
저는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 언젠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제가 결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다시 한 번 핸드볼 경기를 보러 가고 싶다고...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서
핸드볼의 인기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짐으로
제가 2장의 표가 아닌 1장의 표만 끊어서 들어가도 되는 그 날이 온다면
제가 앞으로 만나게 될 핸드볼에 재능을 보이는 학생에게도
당당히 핸드볼을 한 번 해보라고
권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여자 핸드볼 대표팀 관련 영화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개봉, 감독: 임순례)’에서처럼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핸드볼을 응원하러 가는 그 순간에는
저에게 있어서도 ‘제 생애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한 명의 국민이자 한 명의 교육자가 될 사람으로서
많은 비인기 종목과 비인기 분야에서
열정 하나로 이겨내시는 많은 훌륭한 분들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분들 덕택에,
현재는 인기가 없는 종목과 분야에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에게도
교사로서 당당히 그 분야를 권해줄 수 있는
그런 날들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 국제 대회 주요 성적>
1984년 LA 올림픽 은메달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아게임 금메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