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육과정 워크샵(을 도망가면 안 됨)
[2020년과 2021년 사이]
보통 다음년도 교육과정은 겨울방학 때 보직교사와 관리자가 모여 '워크샵'이란 명목으로 이것 저것 다양한 내용들을 점검한다. 여기에서 결정된 것은 교육과정부장(다른지역은 연구부장이라고 한다던데..)이 방학 중에 열심히 계획을 짜 놓는다. 물론 안 짜고 다음 학교로 도레미파솔라시앗삑사리,망했다가기도 한다.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도... 아, 아니다. 여기서 밝혀선 아니 될 것 같다.
나는 혁신학교에 근무한다. 학교의 의사결정, 특히나 교육과정과 같은 중요한 일은 모든 선생님들이 모여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다. 1학기 교육과정 반성회에서도 날을 하루 잡아 야근하면서 1학기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짚어놓았고 이를 2학기에 실천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 눈엔 내 업무를 포함해 썩 이행되지 않은 것들이 보였다. 내가 가고 나면 그만이지만 나는 이 학교(의 순수하고 착한, 앞으로 더욱 크고 멋진 인생을 살아갈 아이)를 애정하므로, '어영부영'하다 망치는 일이 없도록 밑그림을 제대로 설계하고 갈 생각을 했다.
오늘은 교육과정 워크샵, 모두 학교에서 교실에 계시지만 그 유명한 줌으로 접속하였다. 나는 3가지 화두를 던졌다. 첫째, 1학기 반성회 이후 우린 얼마나 실천하였는가. 둘째, 학교자체평가(자율장학과는 좀 다른 혁신학교 평가)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셋째, 2021년도 교육계획수립 설문조사를 같이 읽어보지 않겠는가. 3가지를 해도 생각에 변화가 없거나 교육과정이 바뀌지 않으면 끝이겠지만, 그럴리가 없다.
우린 얼마나 실천하였을까? 실천한 것들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그 와중에 안 된 것이 더러 있었고, 꽤 중요한 것들이었다. 학생선거는 교사가 쉽게 일할 수 있도록 '한 번에 임원이 선출되는' 방식으로 선거가 치뤄졌는데, 교사가 좀 번거롭더라도 학생이 더 많이 투표하고 리더의 자리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선거 절차'를 바꾸기로 했다. 바꾼 절차 중 특이할 만한 점은 득표율이 지나치게 낮은 경우에 한해 '결선투표'까지 넣도록 반영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결선투표가 꼭 들어가서 학생이 학급반장 선거에서 1회성 투표로 끝이 나지 않고, 한 번의 고민이 더 포함되길 바랐기에 더없이 기쁜 결정이었다. 내가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음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반장선거' 자체를 학습의 기회로 바라봐 주셨다.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반면 학교공사로 어수선해진 시기의 컴퓨터실과 무한상상실에 제대로 정비되도록 한번 더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2학기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1월 말 개학과 동시에 모든 교사가 함께 다모임에서 태블릿PC를 들고 로그인부터 설정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크롬북 아이디와도 연결할 수 있게끔 구글 아이디 계정부터 설정을 다 해두고 갈 생각인데, 혼자 하려다가 오히려 동료를 얻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노심초사,걱정, 설렘만 가득한 학교 사회에 '아름답게 끝을 맺는' 문화가 만들어지길 소원한다. 내가 수년간 머물렀던 공간에서 나의 흔적을 조심스레 정리하고, 더 나은 방향이 되도록 조금이나마 돕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제 갈테니까, 다음 사람이 하겠지, 내년이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하자'는 말들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럼 모든 학교는 동시에 '어영부영'이 되고 '흐지부지'된다.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내가 있었던 곳의 학생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으로, 또 실천으로 마무리짓는 것으로 학교와 아름답게 이별하면 어떨까? 올해, 지금 당장, 내년이 오기 전에, 다음 사람이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오늘 나의 워크샵은 제대로 된, 아름다운 이별 준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