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친일청산 프로젝트] 다시 생각해야 할 애국가
어린이에게 친일 음악을 가르쳐도 될까?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선율, 오래도록 불러왔던 동요는 그 자체로는 사회와 유리될 수 있더라도 존속의 과정에선 사회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도록 불린 것엔 그만한 이유, 즉 곡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곡이 지니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곡가의 삶이 아름답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노래의 순수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까지 불러왔다는 이유 만으로, 잘못된 배경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관성처럼 따라오는 곡의 상징 때문에,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창작된 노래를 계속 부르려고 합니다. 우리는 노래와 작곡가를 따로 떼어 내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또한 우리는 어린이에게 곡과 배경을 따로 떼어서 가르쳐야만 할까요?
애국가의 상징성에 대한 문제제기
국내에 애국가 문제가 제기된 것은 2006년 즈음입니다. 독일 베를린 연방문서보관소에는 1942년 만주사변 10주년, 그러니까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는 경축 음악회에서 '에키타이 안'이 지휘하는 <만주환상곡> 영상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한 평생 친일음악을 연구한 故 노동은 중앙대 교수와, 현재 [안익태 케이스]란 책을 저술한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이 기록을 토대로 애국가의 상징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만주환상곡 영상에 담긴 선율을 채보한 것과 한국환상곡의 선율 일부가 일치하는 것, 일제를 찬양했던 노래를 바꾸어 한국에서 자기 활동을 숨기고 <한국환상곡>을 연주한 점 때문입니다.
안익태는 음악적으로 성공하려는 욕심이 매우 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내에서 음악을 배운 몇 안 되는 사람이었고,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 유학하며 계속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는 에하라 고이치라는 유럽 주재의 일본 정보 총책 집에서 기거하게 되고, 이후 에하라 고이치의 지원을 받으며 유럽 전역에서 일본을 찬양하는 만주환상곡이나 에텐라쿠 등을 지휘합니다. 해방 이후에는 한국에 들어와 만주환상곡 악보 일부를 수정하여 <한국환상곡>으로 바꾸고, 뮤지컬 영화화 제작을 의뢰하는 청탁성 편지를 이승만에게 보냅니다. 5.16. 이후에는 박정희에게 <한국환상곡> 레코드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해영 교수는 이런 행적을 두고 '권력의 성격이 무엇이건......(중략) 권력에 추수적이고 영합적인 모습을 보였음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새로운 국가(國歌) 제정을 위한 노력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일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지휘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애국가'를 더이상 한 나라의 상징으로 존속시킬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배경을 모른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무비판적으로 애국가를 배우고, 부릅니다. 통탄할 일이 아닙니까?
여태껏 부른 애국가를 버릴 수는 없다는 일각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애국가는 법정 국가(國歌)가 아니라 준용되어 불러질 뿐입니다. 한편 애국가 대신 법정 국가를 새로 지정하자는 논의가 1949년의 국회에서도 이뤄졌습니다. 1960년대에는 경향신문에서 새 국가 공모를 했으며, 1970년대 후반에는 서울교대 박찬석 교수가 새로운 국가 제정의 필요성의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가사가 미흡하고, 불가리아 민요곡을 닮았다는 설이 있으며, 우리 음악에 맞지 않는 서양식 작곡이다'. 전두환 시절에는 '국가 제정 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새 국가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 무궁화 3천리 : 일제의 반도 사관(영토를 한정시킨다는 주장)
- 마르고 닳도록 : 소멸적
- 하느님이 보우하사 : 의타적, 어려운 용어
- 불가리아 민요와 유사(오오 브란스키 크라이)
물론 현재의 애국가 가사를 안익태가 지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까지 누가 지었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가장 유력한 설은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것입니다만 확실치 않습니다. 만약 이 설이 사실이라해도 윤치호 또한 1920년대에 변절해 친일 행위를 하였으니 그대로 부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찌됐든 애국가의 가사는 사실 안익태와 큰 상관이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가사에 덧붙여진 멜로디는 안익태가 작사한 것이며, 우리는 그의 행적을 보다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 우리가 할 일을 제안합니다
누구나 부르기 쉬운 선율, 그 나라의 역사와 정통성이 담긴 가사로 새롭게 만들어 정식 '국가'를 지정해야 하지만, 문제제기가 되었던 2000년대나 지금이나 여론만 무성할 뿐 제대로 된 사업 추진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음악을 지도하는 이 나라의 교육자라면 애국가의 배경을 제대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잘못된 것을 알고도 관습이란 이유로 유지한다면, 일본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알까요?
지금 당장 학교에서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교무회의 또는 교사 다모임 시간에 이런 생뚱맞은 건의를 하시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조금씩 고쳐 나가려고 노력해하는 것이 교사이자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가 아닐까요.
첫째, 방송조회에 사용되는 애국가 제창을 유보해야 한다.
둘째, 친일음악을 구별하여 우리 교과서 속 숨은 일본음악을 찾아내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셋째, 이러한 노력을 위해 교사들이 스스로 찾고 공부할 수 있도록 연구서적을 구입해야 한다.
첨언
* 이 글의 대부분은 -[안익태 케이스], 이해영 저, 삼인출판-을 참고하였습니다.
* 음악전문가들은 한국환상곡의 음악성 자체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 당초 한국환상곡 작곡 시기가 1930년대라고 추정되므로 친일 행위 전의 작곡이기에 친일과 상관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노동은 교수에 따르면 이 글의 제목인 '꼭꼭 숨어라'와 같은 여러 동요 또한 일제가 심어 놓은 일본 노래라고 합니다. 필자는 이 사실을 알고 일부러 제목을 '꼭꼭 숨어라'로 지어 봤습니다.
* 아래 서적을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여 교직원이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모두 고 노동은 교수의 저서입니다.
- 친일 음악론 / 민속원, 2017
- 항일음악 330곡 / 민족문제연구소, 2017
- 노동은의 세 번째 음악상자 / 한국학술정보, 2010 - 교과서에 있는 친일동요, 음악 연구 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