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수업]x[교육의정의] 소년법 폐지에 대해 토론하다 -2
소년법 폐지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촉법소년의 연령에 해당하는 초등학교 5학년의 아이들 25명. 이들 중 소년법 폐지에 찬성하는 이는 16명, 반대는 단 5명이었다. 찬성에 속하지만 이번 토론에선 판단을 유보하기로 한 4명의 학생은 수업을 참관하러 온 10명의 학부모님과 함께 판정단이 되었다. 찬성 입장을 내비친 판정단 학생 만으로 결과를 판정짓지 않으려는 나의 조치였다. 찬성과 반대의 양측 주장과 반박의 시간이 오가면서 아이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 냈고, 이런 장면을 어른들은 숨죽이며 지켜봤다.
찬성측 의견은 주로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잘못을 따끔하게 혼내지 않으면 똑같은 범죄가 발생할 것이며, 단호한 처벌이 없으면 이 법을 이용(악용)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어리더라도 잘못을 했으니 법에 따라 어른과 똑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4-5학년 수준의 아이들은 아직 마음 속에 '정의감(?)'같은 것이 살아 있어서, 잘못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 확고하였다.
한편 반대측 의견으론 범죄를 저지른 학생들이 (본래 나빠서가 아니라)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므로 가정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 판단력이 부족한 점 등을 근거로 들면서 어른과 같은 처벌은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중 한 학생은 '나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니, 봐줘야 합니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 안다고.. 좀 봐줘야 한다..'고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주장했는데, 수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매우 재미있어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반에서 장난을 많이 쳐서 친구에게 많은 원망을 사고 있는 학생A의 주장이었다.
반박 단계에 들어서자 토론은 더 치열해졌다. 어린 학생들의 범죄는 갑작스레 생기는 우발적 현상이라 참을성이 없는 것이므로 교육과 치료부터 해야 한다는 반대측 반박이 있었다. 이에 대해 찬성측에선 현재 소년들의 범죄는 매우 계획적이라 우발적이지 않았던 실제 사건을 반례로 들었다. 상당한 준비성과 논리적인 발표가 돋보이는 치열한 반박 속에서 찬성측 주장의 논리에 반대측이 약간 밀리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A학생은 자신만의 이유와 까닭을 들며 '소년에게 심한 처벌을 내려선 안 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반박 시간이 끝난 후 나는 판정단의 질문 차례가 되어 내가 부모님께서도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린다고 말했는데, 학부모님 중 유일하게 수업을 참관하러 오신 아버님 한 분이 반대의견을 계속 주장한 A에게 질문을 하고 싶다고 손을 드셨다. 나는 흔쾌히 발언권을 드렸고, 아버님은 A학생의 의견에 대해 이렇게 반박하셨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마음이나 피해자 부모님이 입을 상처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인데 봐주기만 하면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겠는가?' 심각하고 냉철한 논리에 대해 A는 쭈뼛거리며 '아무리 그래도 우린 어린데..'라고 말해 논리를 감성으로 반박하곤 주위를 웃음짓게 했다.
A학생과 아버님이 나눈 대화의 의미, 그리고 주변의 시선을 생각해보니 그 당시의 내 마음은 약간 불편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수업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의 추측이 맞다면 아버님은 자녀가 걱정되어 A학생의 의견에 강하게 반박하셨을 것이다. 또한 A는 자기 나름의 의견을 반박하였지만 타인을 설득하기엔 자신의 주장이 부족하다는 것을 주위의 시선과 스스로의 생각으로 조금은 느꼈을 것이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수업이란 형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견, 자녀에 대한 부모로서의 걱정을 자녀의 친구에게 매우 품격있게 전달한 셈이 되었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소년법을 폐지해야 하나요, 폐지하지 말아야 하나요?". 거수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게 하였는데, 학생판정단을 포함해 20:5였던 찬반 비율이 수업 후에는 18:7로 바뀌었고,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으나 몇몇 학생을 설득시킨 토론이 되었다며 '훌륭한 토론이 되었다'고 학생들을 칭찬하였다. 그런데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하게 된 것은 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수업 후 한 학생의 어머니와 전화 상담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선생님 수업 보고 나서 아이랑 이야기를 나눴어요, 우리 딸은 찬성이었는데 저는 반대에 손을 들었거든요. 아이가 저에게 '왜 엄마는 나랑 같은 편에 손을 안 들었냐'고 묻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00아, 엄마는 너를 믿지만 혹시나, 만에 하나 네가 이런 일이 휘말리게 될 경우에 처벌받게 된다면 엄마는 너무 슬플 것 같아. 그래서 반대에 손을 들었어'라고요."
토론은 싸움이 아니라 이해의 과정이다. 내 자식이 안전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 반에서 소외되고 있는 학생의 아빠가 우리반 아이들의 장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 장난이 심한 친구가 사실은 우리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은 토론을 통해 얻은 이해의 결과다. 이번 수업을 통해 우리반 아이들과 어른들은 서로의 생각과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고, 이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