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친일청산 프로젝트] 친일화가와 표준영정제도
왜구와 일제에 맞선 위인, 감히 친일파가 그리다
조선의 마지막 어진화가 이당 김은호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순종 어진. 나라가 패망하자 이당이 그릴 대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그림 실력을 선보일 곳이 없었던 이당은 참 방황했을 것입니다. 100년 전인 1919년 3.1운동에도 참가했다가 체포된 이력이 있는 것으로 보면, 조선에 대한 충정이 처음부터 없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일본 유학 후 1937년에 <금차봉납도>를 그립니다. 더 이상 그의 마음에는 조선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그는 이후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태평양전쟁 등을 찬양하는 친인 미술 작품 심사에 참여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의 제자인 운보 김기창과 월전 장우성 역시 조선,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사실입니다. 이당의 두 제자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미술가로 활동하며 여러 점을 신문에 싣습니다. 그런 그들이 광복 후에는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거장이 되었고, 김기창은 을지문덕, 세종대왕, 임진왜란 의병장인 조헌 등의 표준영정을, 장우성은 임진왜란 때 왜구를 섬멸하고 조선을 지킨 이순신과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한 윤봉길 의사의 표준영정을 그렸습니다. 일본이면 치가 떨릴 선조들의 통곡이 지하에서 들린다고 한다면, 그게 과연 상상에 지나지 않을 허언일까요?
일제의 전쟁동원을 위한 친일 미술 활동 이력의 두 거장, 미적 재능이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민족정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의 정의와 원칙을 세우는데 특별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들은 새 세상에서 구시대의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나라를 지키기 위한 위인와 열사들의 표준영정을 그려 그들과 민족의 명예에 심각한 누를 끼쳤습니다.
표준영정이 무엇인가?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하는 민족적 영웅, 위인들의 영정 난립을 막고자 문체부 장관이 지정한 영정만 사용하는 법적 절차로, 정식 명칭은 '정부표준영정'입니다.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시하여 제정된 것인데, 이 때 정부에서 위인의 영정을 그릴 화가들을 찾아 1:1로 매칭시켰고, 그 때 친일 이력이 있는 화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나라를 지킨 이들의 영정을 그렸습니다. 현재까지도 표준영정은 바뀌지 않고 지속되었고, 우리가 매일 쓰는 화폐에도 표준영정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당이 그린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표준영정,, 김기창이 그린 세종대왕 영정과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표준영정은 우리나라 화폐에 그대로 옮겨져 있습니다.
표준영정을 바꾸려는 움직임
아산의 한 시의원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친일잔재 천상의 기회로 표준영정 지정 해체 및 이순신의 영정을 교체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미 2010년에 현충사 관리사무소에서 표준영정 지정 해체를 신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편 이순신 장군의 당시 모습을 그린 초상화의 사본이 남아 있다는 언론의 취재도 있었는데, 바로 황의돈이 쓴 <증정 중등조선역사>라는 교과서 속에 나오는 초상화입니다. 임진왜란 때 휘하에 있던 승병이 그린 그림이라고 전해지는 이 그림과, 동아대박물관에 소장 중인 영정 등 이순신 영정은 현재 장우성이 그린 영정 말고도 두 점이 더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그림 또한 진본은 현재 존재하지 않았고, 이순신을 모신 사당 몇 군데에 있던 것을 모사한 것이라 확실한 영정이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만, 완전한 상상력으로 그린 그림보다얀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그림이 아닐까요? 어찌됐든 지금 우리가 쓰는 이순신 표준영정을 계속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표준영정제도 또한 사라져야 합니다.
-2007년 장우성이 그린 유관순 영정은 고문 당시 찍힌 사진을 그대로 그렸다는 비판과, 화가의 친일논란이 있어 새로운 영정으로 교체되었다.
-사진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A5%98%EA%B4%80%EC%88%9C
[3.1운동 100주년 기념 친일청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3.1운동 100주년 기념, 친일청산 프로젝트의 마지막 글이 되겠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중간에 연재를 그만두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지식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 차례 검색과 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제가 하고 있는 문제제기들이 실은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이뤄졌던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벌써 15~17년 전의 문제가 지금까지 공론화되지 못했거나 해결되지 못했는데, 한반도 남쪽 따뜻한 항구도시에서 고작 20명 내외의 학생들에게만 아주 큰 영향력을 끼치는 제가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안타까움 떄문이었습니다. 인기나 구독을 바라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적었던 글의 조회수 또한 연재의 지속을 망설이게 했습니다.
인기없는 이유를 나름 고민해보았는데 - 이미 알고 있는 걸 또 말해서, 또는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해서, 그것도 아니면 나라의 상징을 부정하는 모습에 거부감을 느껴서 - 여러 고민들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떤 이유더라도 변하지 않은 현실 한 가지가 있다면, 예나 지금이나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무공, 율곡, 세종, 신사임당의 표준영정을 바꾸고 화폐도 새롭게 발행하자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이것이 당장 실현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마어마한 재정이 투입될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많은 갈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친일 행위를 생존으로 바라보고 있는 일부(혹은 꽤 많은) 시민과 언론의 시선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없애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기억하며 역사의 거울로 삼는 교보재로 활용하면 됩니다. 잊어야 한다거나, 덮어두자는 말로 친일의 행적을 망각하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민주공화제의 시작 3.1운동의 정신과, 민국을 만든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지 100년, 이제는 우리가 제대로 정리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제안합니다.
1) 우리에게 중요한 상징처럼 다가오는 것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탐구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국화는 언제, 어떻게 제정되었는지, 국가(國歌)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쓰는 화폐에 담긴 그림은 왜 실렸으며 누가 그렸는지, 그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하고, 역사로 배움을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2) 친일행위가 지니는 구조적 문제(후학 형성-과오의 정당화-학계 장악-문화 침투)를 인식하고, 선한 학생, 정의를 세우는 학생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정의가 아닌 불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따져야 합니다.
3) 독립운동가가 예우받고, 친일행위는 사죄해야 한다는 명확한 가르침이 온 교실에 퍼져야 합니다.
*참고자료:
-https://www.minjok.or.kr/archives/75803(민족문제연구소, 이순신 장군 초상화 어디로 갔을까)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1809171423301&pt=nv (주간 경향,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찾아서)
- https://www.youtube.com/watch?v=yYIoMMNQd54(ebs 다큐시선- 우리 곁의 친일잔재 2부 - 미술, 친일을 그리다)
*금차봉납도 : 일제의 중일전쟁 비용을 위해 헌금하는 여성단체 '애국금차회'의 일화를 그린 그림
**정부표준영정 : 1972년 율곡 이이의 영정을 의뢰한 곳이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 사였는데, 율곡의 모습이 마치 서양사람처럼 표현되어 '표준영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