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일지1 - 나는 어쩌다 유배를 결심하게 되었는가?
학기말 각종 업무로 바쁘디 바쁜 어느 날이었다.
최근 발목 인대 파열로 병자 아닌 병자로 생활하며 안그래도 학기말 힘든 상황 속에서 우울과 고통의 나날로 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공문서 하나. 바로 교육연수원 파견교사 공모였다.
나의 삶은 안정적이었다. 나름 직장에서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고 인정도 받고 있었다. 많은 동료들과 관리자에게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으며 -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 2024년의 플랜도 어느 정도 구성되어 있었다. 떠날 생각을 전혀하지 않아서 내년에 할 일까지도 올 해 기틀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내가 유배를 갈 이유는 전혀없었다. 물론 100%만족이란 없겠지만 난 충분히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왜 그런 결심을 했을까?
글세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객기였을까? 누군가가 말렸다면 포기했을 수도 있었다. 다행인지 아쉬운건지 아무도 나를 말려주지 않았다. 숭고한 뜻도 간절한 필요성도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간절했던 사람들이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사실 모든 게 결정난 지금도 (현재 결정난지 일주일이 안된 상황) 이게 맞는지 아닌지 얼떨떨하고 헷갈리는 중이다. 그럼에도 나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했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는 지.
우선 해보고 싶었다. 나는 초등교사다. 보통의 초등교사는 정년때까지 교사로써의 길을 걷는다. 초등교사 타이틀을 버리지 않고 조금 다른 길을 찾고자 하면, 관리자로써의 승진이나 수석교사, 전문직으로 전직을 의미한다. 아주 단순한 구조이다. 또한 취직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일 수 있겠지만 한평생을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며 지낸다는 게 나에게는 답답했다. 그래서 초등교사로써 해볼 수 있는 건 다해보는 게 내 목표가 되었다. 물론 모든 길을 다 갈 수는 없겠지만 그 때에 맞는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파견교사 근무는 그 중에 하나였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파견교사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빈 자리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인맥이나-요즘은 거의 없다.- 근무할 수 있는 상황이 따라 줘야 한다. 경우에 따라 경쟁자가 있어 나름의 절차를 통해 선발이 되야한다. 즉,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내가 할 수 있을 때 도전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사실 도전이 처음은 아니다. 4년 전에는 학습연구년을 했기에 파견교사가 불가능 했고, 2년 전에는 다른 기관에 면접에서 떨어졌다. 사실 신청하면서도 되도 좋고, 안될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했던 것 같다. 늘 준비는 하고 있었고 기회가 왔을 뿐이다.
나름의 계산도 충분히 했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 사실이지만 득실을 따져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게 무엇인가에 무모하게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젊지도 않고, 내가 책임져야할 일도 많기에 결심을 하기 까지 닥터스트레인지에 빙의하여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물론 이제와 놓친것들이 떠오르지만, 출퇴근 시간과 거리,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 나의 근무 가산점, 경험의 유의미, 놓치게 될 것들에 대한 대안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언제나 득이 있으면 실도 있는 법이다. 그 부분에서 조금 흔들렸지만 득과 실이 평행하다면 도전하는 쪽이, 경험하는 쪽이 유리하다 생각했다. 뭐든 안하는 것보다 망해도 하는 것이 인생 전체에서는 더 큰 의미라고 여긴다. 늘 그렇게 살아왔다.
솔직히 내가 파견근무를 생각할 기간이 충분했다면 아마 결심하지 못했을 것 같다. 누가 보면 해외라도 가는 줄 알겠지만 고작 여기서 저기 가는 파견으로 쓸모없이 진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의미 있는 일을 찾기보다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는 건 내 인생의 지향점이다. 내 삶은 내가 판단하는 거고 고민을 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헷갈려 결심이 더뎌질 때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가 결심을 했을 때의 심장의 요동침이 두려움인지 설레임인지 잘 들어보고 판단하면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과는 나왔고 이게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새로 만날 것에 대한 설레임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해보고 그릇되면 경험이 되지만, 안 해보면 후회만 남는다.
자.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