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기분] - ep5. 열린교육시대
그런 날이 있다. 하루 종일 되는 일이 없다.
출근길부터 평소와 다르게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출근길 서로 예민하다 보니 접촉사고가 났다 보다.
아침에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 잔뜩 있는 데 결국 지각을 하고야 말았다.
부랴부랴 컴퓨터를 켰는데 수많은 쪽지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
이렇게 열심히 하는 데 왜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 걸까?’ 나의 능력 부족 탓으로 돌리고 수업을 한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상태에서 하는 수업은 늘 어렵다.
내가 힘들면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도 즐겁지 못하는 것이 느껴진다.
쉬는 시간에 잠시 마음을 쉴까 싶었는데 긴급회의가 있단다.
부랴부랴 교무실에 다녀왔는데 수업 시간에 늦어버렸다.
그 틈을 노려 아이들은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늦은 건 내 잘못이니 아이들에게 나무랄 수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몇 쪽이냐'는 말로 수업을 시작했다.
미친 듯 정신없었던 하루가 끝나간다.
오늘따라 많았던 6시간의 수업을 마쳤다.
푹푹 찌는 여름날 아이들의 날숨에 교실은 후덥지근해질 데로 더웠다.
부족한 전기비를 핑계로 에어컨도 없이 잘 버텼다. 커피 한잔할 시간 없이 숨 가빴다.
아이들은 이렇게 정신없는 나를 보며 어떻게 생각을 할까?
‘능력이 많은 똑똑한 우리 선생님 최고!’ 혹은 ‘맨날 바빠서 우리한테 관심도 없으셔’일까
듣고 싶은 말은 전자인 데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말은 후자였다.
어쩔 수 없는 업무임을 알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복잡한 감정은 평온을 찾았던 마음을 또다시 뒤집어 놓았다.
아이들이 가면 커피 한 잔이라도 해야겠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잠시 뒤돌아 낮에 왔던 수많은 가정통신문을 찾아헤맸다.
그때였다. 개구쟁이 녀석이 장난을 쳤는지 고요했던 교실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결국 하루 종일 꾹꾹 눌렀던 감정이 넘쳐버렸다.
5학년 되었다.
그 유명한 열린 교육 시대였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목적도 취지도 몰랐다.
그냥 우리 교실이 넓어졌다.
우리 반만 특히 옆 교실과 벽을 허물었다.
앞쪽은 기존의 교실과 같았고 뒤쪽은 매트가 깔렸다.
빈자리에 앉은뱅이책상과 놀이도구가 들어왔다.
청소하기는 어려웠지만 쉬는 시간에 놀기에는 엄청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선생님께서는 엄청 바쁘셨다.
쉬는 시간에는 늘 교실 밖으로 나가셨고 돌아오셔서는 소란스러움에 화를 내셨다.
교실이 더 넓으니 더 시끄러웠다.
보이스카우트 대장이시면서 합주단을 지도하셨다.
무슨 부장님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상당히 젊은 나이에 교감으로 승진을 하셨다고 한다.
한 날은 공개수업을 하였다. 대본이 있었다.
지금은 꿈에도 생각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당연했나 보다.
나는 역할극 수업인 줄 알았다.
선생님은 답변이 적힌 종이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친구들은 그 대답을 달달 외웠고 수차례 반복하였다.
정장 입은 많은 분들이 오셨고 그렇게 수업은 잘 마무리되었다.
그 와중에 내 대사는 하나도 없었다.
그날 오후였다.
선생님께서는 칠판에 알림장을 쓰고 계셨다.
나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피해 고개를 기웃거리며 알림장을 받아 적었다.
갑자기 짝꿍이 내게 장난을 걸었다.
기분도 좋지 않았고 장난치고 싶지 않아서 무시했다.
무시하는 내가 미웠는지 짝꿍은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짜증을 내며 어깨를 툭하고 쳤다. 그냥 무시하고 말았어야 했다.
참지 못하고 나도 짝꿍의 어깨를 쳤다.
지극히 어린아이의 생각이었다.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리고 두 대 맞으면 두 대를 갚아줬다.
그렇게 한 대가 다섯 대 열대가 될 때쯤 선생님께 경고를 받았다. 우
연일까 내가 맞는 것은 못 보시고 내가 때리는 장면만 두세 번 보셨던 모양이다.
내가 눈치가 없는 건지 짝꿍이 약아빠진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격노하신 선생님께 불려나갔다.
아마 그날 무더위가 잊힐 정도로 혼이 난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앞으로 불려나가 아이들 앞에서 엄청나게 꾸지람을 받았다.
내가 억울한 것을 변명할 기회 따위는 없었다.
아마 기회가 있었더라도 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늘 선생님은 내 편이 아니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여자를 때리는 놈은 인간도 아니다”
‘선생님도 여자애들 혼낼 때 때리잖아요’
“내가 알림장을 쓰는 데 계속 장난을 쳐?”
‘저만 그런 거 아니에요, 짝꿍이 먼저 시비 걸었어요’
“너 내가 하라는 거는 다 하고 하냐?”
‘네 다 했어요 지금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어요’
“넌 정말 비겁한 놈이다. 너 가르치고 싶지 않다”
‘…… 저도요…..’
마음속으로는 또박또박 말대꾸를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화가 많이 나 무서워질 때로 무서워진 선생님 앞에서 입을 열지 못했다.
눈에서는 원치 않는 눈물만 흘렀다.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는 무거워졌고 눈은 퉁퉁 부었다.
정신이 없어서 아이들 앞에서 창피함마저도 잊었다.
사실 아직도 선생님께서 왜 그리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유배를 가게 되었다.
교실 두 개를 합친 넓은 교실의 맨 뒤로 갔다.
놀이용 매트에 홀로 앉았다.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고 칠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의자도 책상도 없었다.
위로받을 친구도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겐 선생님도 없어졌다.
그리고 오후에는 텅 빈 교실을 홀로 남아 청소를 해야 했다.
짝꿍이 원망스러웠다.
원래 사이가 좋지도 않았지만 그 날 이후 우린 더 어색해졌다.
당시는 나도 어려서 함께 혼나지 않은 그가 미웠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깊게 기억해보니, 방과 후에 벌 청소를 할 때 몇몇 친구들이 함께 해줬던 것 같다.
누군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감사할 일이다.
풀이 죽어 집에 갔다.
엄마방에 들어가 패밀리 게임을 틀어 혼자 게임을 했다.
그 기분에 게임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엄마도 뭔가 느끼신 건지 그냥 내버려 두셨다.
전화가 한 통화 걸려왔다.
엄마는 목소리를 낮추셨지만 나는 담임선생님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내 엄마가 물어보신다.
“너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니” 엄마는 더 물어보지 않으셨다.
다음 날 학교에 갔다.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어제의 패닉 상태에서 좀 회복되니 상황 파악이 되었다.
나는 교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버려져야 한다.
교실에 가서 놀이 매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멍하게 있는 나를 선생님은 또다시 칠판 앞으로 불러 세웠다.
칠판 앞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도 멀었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반전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나를 칭찬하시기 시작했다.
“우리 성환이가 어쩌고저쩌고…."
그게 욕인지 칭찬인지 들리지도 않았다.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
냥 내 어깨 위에 있는 선생님의 손이 너무 무겁고 역겨웠다.
그렇게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갔고 다음 주 짝꿍이 바뀌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훗날 내가 선생님이 되겠다고 교육대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 엄마가 나를 따로 부르셨다. 그리고 서로 잊은 듯 살았던 그날을 기억에서 꺼내셨다.
“그날 선생님이 전화를 했었고 엄마가 선생님을 찾아갔었고 작은 선물을 드렸다. 평생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네가 선생님을 한다고 하니까 알려준다. 너는 절대로 그러지 마라”
우리 반에는 규칙이 있다.
1. 저학년과 싸우면 무조건 고학년 잘못,
2. 다른 반과 싸우면 무조건 우리 반 잘못,
3. 남자 여자가 싸우면 무조건 남자가 잘못,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규칙으로 정했고 아이들은 나름 지키려고 노력을 한다.
나 역시 다른 것은 몰라도 3번 규칙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날 내 머릿속을 강하게 두드린 이후 세뇌를 당한 것만 같이 그냥 그렇게 믿고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