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꼬리아!!
좋은 기회로 영국과 프랑스에 다녀올 수 있었다. 더욱이 그냥 관광이 아니라 교육연수로 다녀왔기에 개인으로는 어쩌면 불가능할 일정들인 교육기관을 방문하고 교육자들의 강의나 토의를 할 수 있는 교사로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영국의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를 다녀왔고 그곳에 영재교육기관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견학했다. 노벨상을 받은 분의 강의를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고, 프랑스에도 각급 학교와 교육기관을 다녀왔다. 영국과 프랑스는 실로 대단한 나라였다. 절로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질 정도로 우리나라와는 많은 모습을 보여줬다.
자존심이 가득한, 그리고 그 자존심이 당연히 인정되는 나라, 영국, 광활한 들판에 자리 잡은 그들은 오래전부터 우수한 문화와 기술이 발전했고, 역사적으로 문화 사회적으로도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200년 전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재개발의 ㅈ도 꺼낼 수 없다는 주민들의 이야기에 우리나라와는 참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전통이 자존심인 나라 영국의 문화 앞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얼마나 새로운 것이 있는지 자랑하기보다, 우리 학교에 얼마나 오래된 것이 있는지 자랑하는 모습에서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과 일찍부터 발전된 생활 환경을 나도 모르게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다양성이 힘이 되는 나라, 그 다름이 낭만이 되는 나라, 프랑스, 영국과 함께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선도했고, 섬나라였던 영국과 다르게 요지에 자리 잡은 프랑스는 각지의 문화를 흡수하였으며, 그것이 곧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고 수용하며 그 과정에서 숱한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고 강대국으로 이름을 알렸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멋진 배경이 되는 파리의 도시 풍경과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자기 삶이 더 중요한 그들의 생활에서 여유를 넘어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의지보다 타인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매우 달랐다.
양국의 교육시설은 감탄을 만들어 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수만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와는 견 줄 수도 없다. 기초 기본학문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사고력을 끌어내는 교육과정, 전통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성장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활동, 교육자들의 양심과 자부심이 만들어 낸 합작으로 교육을 그려가고 있었다. 장소마다 새로운 영감과 반성을 자아내곤 했다.
적어도 내가 좀 더 어렸다면 그렇게 소감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 16년 차를 넘어가는 교사다. 한 직을 위해서 4년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2년을 더 공부했다. 16년 동안 한길을 걸어온 나는 이제 준전문가의 대열에 올라서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리나라의 교육과 서양 강대국의 교육을 비교했을 때 결론은 그럼에도 코리아! 다.
기초 기본교육의 중요함, 중요하다. 이건 어느 나라에서나 초등교육의 당연한 목표이자, 교사들의 주된 활동일 것이다. AI와 인공지능, 디지털 활동을 한다고 해서 기초 기본교육이 소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디지털 교육활동은 수업의 일부이다.전 교과, 전 활동에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디지털교육과 기초 기본교육은 양날의 검이 절대 아니다. 함께 갈 수도, 따로 흘러갈 수도 있는 교육의 분야일 뿐이다. 역설하여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과 프랑스는 디지털 교육에 대해서 거의 접근하지 않았다. 이를 기초 기본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전통을 부족할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선진 부분은 존재했다.
교사들의 질이 더 우수함. 영국, 프랑스, 한국을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교사 양성 제도가 가장 우수했다. 점점 기피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제도로 봤을 때 우리나라처럼 전문적으로 양성이 가능한 나라는 없었다. 영국은 수학, 과학 전문가들은 연봉이 높은 직으로 빠져나가기에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은 교직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프랑스 역시 과목의 전문가가 교사가(중등) 되지 않기에 매년 해당 과목에 대한 전문 연수를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인재들은 4년 동안 양성하고(물론 교대의 커리큘럼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한 한국의 교사들은 전문가로 시작한다. 교사로 선발하여 전문가로 키워가려는 두 나라와의 제도와는 차이가 크다.
교사는 가르치는 것만 함.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교사의 일이 엄격히 나뉘어 있었다. 교사는 가르친다. 나머지는 다른 직이 한다. 교권 침해의 논란 속에서 살고 있는 요즘 상당히 달콤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가르치는 것의 범위를 어디까지 둬야 할까? 예로부터 '스승'의 개념 속에서 선생님이 된 우리나라의 교육에서는 교사는 단순히 지식 전달뿐 아니라 인격 향상, 인생의 모범 등의 복합적인 개념으로 자리잡혀 있다. 가끔은 그런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만 '두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듯 스승의 존재는 그만큼 중요했다. 어찌 보면 아이들의 정서에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교사의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학부모, 사춘기를 격하게 표출하는 학생들의 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만의 고름은 아니다. 정서에 어긋한 정책들을 상처에 반창고 붙이듯 치료하지 말고 차근차근 지혜롭게 이겨낸다면 충분히 우리 교육도 희망은 있다.
전통이 있는 교육활동. 우리나라의 학교를 탐방하면 새로운 것들을 자랑하기 바쁘다. 이런 것들이 새롭게 시작했다 저런 것들을 개선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연달아 이야기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교육기관들 설명은 대부분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켜왔고 얼마나 오랫동안 발달시켜 왔는지 자랑하곤 한다. 물론 노벨 과학자 양성이 교육의 척도라고 하면 우리나라는 완패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경과 문화가 확연히 다르다. 우리나라는 잦은 침략으로 문화의 발달에 정체가 있었고 많은 훼손이 있었다. 너른 평야에서 석재문화를 발달시킨 그들과는 달리 산지에서 생활했던 우리는 목재가 더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안에서 전통을 지키고 문화를 양성했던 민족이다. 온고지신, 분명히 전통은 필요하고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독창적인 문화를 다시 만들어 내기에는 변화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1000년 넘은 건물은 없지만 1000년 넘게 사용될 한글이 있고, 노벨상은 없지만 우리나라만의 감정이 있다. 얼, 한, 낙, 넋, 정 다른 나라에는 없는 눈에 보이지 않은 전통이 가슴에 자리 잡은 나라 우리 대한민국이다.
물론 배울 점은 분명히 있었다. 아니, 교육적인 영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들과 우리는 분명히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왔기에 무분별하게 따라 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한 백 년의 계획인 교육에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함께 간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위치에서 한국의 교육에 접목할 많은 교육의 나뭇가지들을 담아왔을 것이다. 이 가지들을 한국 교육의 큰 줄기에 어떻게 접목할지 기대된다. 누군가는 행정가의 관점에서 누군가는 관리자의 관점에서 또 누군가는 평교사의 관점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학교 현장에 적용해 보고 안타깝게 시든 가지는 내쳐버리되, 잘 자리 잡은 가지들은 반드시 꽃을 피워 열매를 만들어 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발전이란 바로 이 접목이다.
노벨상 수상자와 면담에서 '당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한 건 무엇일까요?'란 질문을 하였다. 그는 그저 자신의 앞에 놓인 일들을 묵묵히 해냈을 뿐이라고 대답했고, 그 과정에는 늘 좋은 교사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좋은 교육자란 교사 스스로 능력이 있어 저명한 사람이 아닌 학생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역시 그런 선생님과 교수들을 만났기에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올릴 수 있었고, 스스로 제 일을 묵묵히 해내고자 노력하였기에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을 대변하는 듯하다.
최근 참으로 심란한 교육 현장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히 이 자리를 지켜내야 한다. 좋은 교육자로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역경을 잘 이겨내며, 교육의 발전을 위해 오늘과 같이 노력하고,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한 번 더 고민할 때이다. 그리고 그 과정과 아픔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이번 영국, 프랑스 교육기관 방문을 요약하자면 그럼에도 대한민국, 그럼에도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