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기분] - ep4. 이해할 수 없는 학급회의
학생자치는 참 어렵다.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없이도 아이들끼리 과연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활동이다. 의견을 주고 받는 일, 의사결정을 하는 일, 그리고 안에서 수없이 부딫혀야할 많은 일들 모두가 아이들에게는 거쳐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현명하게 낼 수 있는 용기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배우기를 바랬다. 그렇게 어렵게 결정된 일을 학급의 규칙으로 정하고 서로 소중하게 지켜준다면 선생님으로써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조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학생들 손으로 하나씩 만들어 가는 모습이 옳다고 생각했다.
우리반 학급회의에서 선생님은 없다. 나는 교실 뒤에 있거나 교사 자리에 앉아 있는다. 가급적 큰 문제가 아니면 중재를 하거나 의견을 내지 않는다. 아이들끼리 작은 다툼이 있더라도 지켜본다. 늘 별것도 아닌 것으로 다투는 모습이 속상하기도 하지만 티비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다를 것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그 날도 회의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말을 꺼냈다.
“학급어린이회의의 주인공은 선생님이 아니라 여러분 입니다. 선생님이 옆에 있긴 하겠지만 없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회의를 만들어 보세요.”
말이 끝나고 교탁은 회장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교실 뒤쪽 구석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의 모습을 간단히 메모할 수 있는 수첩을 올려놨다. 그렇게 오늘도 선생님이 없는 학급어린이회의가 시작 되었다.
새롭게 터를 잡은 그 곳에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 반이 조금 다른 것인가 이 동내가 원래 그런 곳일까 두려움은 쌓이고 이내 나를 더 움추리게 만들었다. 하루 만에 왕따가 되어 버렸다. 존재감이 없었다. 차라리 아무도 신경 안쓰기를 바랬다. 덕분에 나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전지적시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학급회의 시간이었다. 그 당시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다. 우리반은 토요일 3,4교시에 항상 학급어린이 회의를 했다. 선생님은 그 시간동안 전용 책상에 앉아 계셨다. 주로 일기장 검사나 채점을 하셨다. 회의는 회장과 부회장이 알아서 진행을 했다. 생활 목표를 정하고 건의사항을 하는 것까지는 이전과 비슷했는 데 마지막은 조금 달랐다.
학급재판이라는 것이 있었다. 교실 우체통에서 익명으로 쓰인 사연을 부회장이 읽는다. 거의 본인을 괴롭혔거나 장난이 지나치다거나 큰 잘못했다는 고자질 쪽지였다. 부회장이 다 읽고 나면 회장이 오늘의 사건을 선정하고 진실여부를 파해친다. 말이 어린이 회의지 거의 인민재판이었다. 판결은 회장에 의해서 결정됬고 선생님은 무관심하셨다.
지용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사연인 즉 친구들이 지용이를 지렁이라고 놀려서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게 정말 속상했던 것 같았다. 나 역시 아이들이 꿈틀이 젤리를 가지고 지용이를 놀리는 것을 몇번 보았다. 당시는 같이 장난 치는 줄만 알았다. 회장이 "누가 놀렸냐?"라고 묻자 몇몇 장난꾸러기의 이름이 나왔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라는 물음에는 엉덩이를 세대씩 때리고 싶다고 했다. 난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는 실제로 아이들 앞에서 손으로 엉덩이를 세대씩 때렸다. 선생님은 여전히 책상에 계셨고, 맞은 아이들은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나는 내 이름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찌보면 거의 말을 안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다음 사건은 선생님이 이어가셨다. 갑자기 화가 많이 난 듯이 선생님의 오르간의 받침을 고장낸 사람을 찾으라 회장에게 명하셨다. 회장은 이내 목격자를 찾았다. 반에서 주류 무리였던 여학생 삼인방이 입을 모아 아영이를 지목했다. 아영이는 아니라고 울면서 말했지만 받아드려지지 않았고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나는 늘 교실에서 마지막으로 나갔다. 하굣 길 친구가 없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묘한 감정이다. 친한척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친구가 없는 게 부끄러웠다. 그 날도 난 교실에서 친구들이 다 나가기를 기다리며 밍기적 거렸다. 그리고 그 여학생 삼인방이 선생님의 오르간을 가지고 노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심지어 고장내는 것도 보았다.
내 말을 믿을까? 말을 할까? 나도 같이 왕따가 되려나 고민했다. 고민했다는 것은 말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아영이는 선생님에게 혼이 났고 벌청소를 명 받았다. 그 날 집에 돌아가려는 빈교실에는 요란스럽게 떠들던 삼인방 대신 혼자벌청소를 하는 아영이만 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말 없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대학생이 되고 우연히 동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영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날 못알아봤을 테다. 그래 주기를 바랬다. 물론 봐도 못알아봤을 지 모른다. 익숙한 얼굴에 명찰에 고이 적인 이름이 있었고 친절한 미소를 보니 지금은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반가웠지만 인사할 틈도 없이 그 날 비겁하게 입을 닫았듯이 아이스크림을 입을 틀어막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 일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멀쩡한 사람이 공개적으로 벌을 받고 무고한 사람이 몇몇의 이야기로 죄를 뒤집어쓰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말이다. 왜 내게는 정의감이 없었을까? 비겁하게도 그들의 무고함을 이야기하거나 편을 들어주지 못할 망정 눈을 감아버렸다. 다른 아이들보다 어쩌면 더 나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이 후로도 나는 종종 죄책감에 휩싸인다.
성인이 되고 내 주변사람의 작은 일에도 버럭하는 일이 잦아졌다. 비겁했던 지난 날의 대한 후회일까 주변에서 약자를 볼 때면 괜히 오지랖이 생긴다. 그 시절 말 못하고 소심했던 나는 잊은 채 남의 일에 끼어들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약자의 편에 서는 정의로움은 아니다. 그냥 지나치면 후회할 것 같은 나를 위한 감정적인 일일 뿐이다. 끼어드는 나도 상대방도, 그 사이에 더 난감해질 사람에게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