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낭독극 - 윤동주와 헤어져/시민배우 공연후기
2019년 4월, 극단 논다에서 입체낭독극 시민배우를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SNS 페이지에 올렸다. 평소 교실에서 학생들과 낭독극을 무대에 올리고 교육연극 수업을 하지만 내가 실제로 연기(Acting)를 해 본 경험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내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학급에서 낭독극 만들기 - https://www.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RhyuSaeyoung&wr_id=70&page=1
시민배우들이 모인 첫 모임, 14세 중학생부터 70세 참가자까지 다양한 직업과 연령의 사람들이 모였다. 연극놀이를 통해 가볍게 몸을 풀고 함께 뮤지컬 페퍼민트의 삽입곡인 '푸른 숲 같은 사랑'을 불렀다. 극본 주제가 정해지고 '맘마미아'팀과 '윤동주와 헤어져'팀으로 나누어져 리딩연습을 시작했다.
사실 배역 오디션을 할 때 급성장염으로 입원을 해서 참여하지 못했는데 연령과 여러 상황을 고려해 뜻하지 않게 윤동주라는 큰 배역을 받았다(사실 송몽규 배역을 희망했었다.). 사실 학생들과의 연극수업에 도움을 받고자 참여한 활동이었는데 주연을 맡겨주시니 갑자기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표현하려고 하지말고 그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발산하세요!"
첫 연습 때 극단 논다의 강용복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표현하려고 하면 '자기 자신'이 나오니 극본을 읽고 인물을 분석하고 자기 마음에 그 인물을 담아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윤동주를 이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윤동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집을 읽고 영화 동주를 보았다. 강하늘 배우가 표현한 동주가 인상깊어서 연기연습을 할 때마다 강하늘 배우의 연기와 목소리톤을 떠올렸다.
"유쌤, 솔직히 말해봐요. 일주일동안 얼마나 연습했어요?"
배우들의 발성과 호흡을 지도해주신 임주희 음악감독님은 목요일 연습때마다 나에게 연습량을 물어보았다. 악기처럼 연기도 연습량에 따라 표현의 정도가 달라졌다. 정신을 바짝차리지 않으면 그저 대사를 줄줄줄 읽기 쉽고, 일제강점기의 생활을 담은 극이다 보니 한자말에서 버벅대는 경우가 많았다.
"연기가 많이 어색해요. 혼자 말하지 말고 상대방 대사를 듣고 맞춰서 말하듯이 이야기하세요."
내 대사만 신경쓰고 연습하다보니 단체연습에서 주고 받는 대사가 정말 어색했다.
몽규: 동주야!
동주: 몽규야!
몽규: 잘 지냈지?
동주: 언제 나왔니?
이 4줄의 대사가 그렇게 어색해서 공연 이틀 전까지도 몽규역을 맡은 창*군과 계속 연습했다. 연기를 하려면 내 대사만 숙지하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까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유쌤, 내가 유쌤반 제자라면 유쌤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을 것 같아요."
임주희 음악감독님은 공연 전 목, 금, 토요일에 동주, 몽규, 김다은PD, 황부장역할을 맡은 배우들을 데리고 개인레슨을 진행해주셨다. 내 대사를 들으며 발음과 발성에 대한 지도를 지속적으로 해주셨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현장선생님들에게 수업을 여러차례 소개했었는데 발음, 발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시니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전문가가 보았을 때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배웠다.
볼펜을 치아 끝까지 밀어넣어서 물고 발음연습을 하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발성을 하며 대사를 읽었다. 긴 대사에서 호흡을 어떻게 나누어서 사용할지 고민하고 발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연습을 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때,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정보를 전달 할 때 대충 내뱉는 것이 아니라 낱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제대로 '말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공연하는 날이 왔다. 대기실에서 서로 격려하며 응원을 해주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연 전까지는 다소 어색했던 시민배우님들과도 급하게 가까워졌다. 대본을 보고 하는 입체낭독극인데도 떨리는 마음에 객석을 마음껏 바라보지 못했다.
최대한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윤동주의 삶에 몰입하려고 애를 썼다. 연습할 때 지도해주셨던 톤을 머리 속에 그려보고 윤동주의 삶을 계속 떠올렸다. 그렇게 60분의 공연이 끝났다. 막이 끝나고 떨리는 몸을 간신히 추스렸다. 윤동주에 너무 빠져있었나 보다. 이제 '나'로 돌아갈 시간이다.
학생들과의 연극수업에서 활용할 경험을 얻기 위해 참여했던 공연이었는데 개인적인 성취가 더 컸다. 공연을 준비하며 윤동주의 삶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내 인생 중에 어느 한 순간은 '배우'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가장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제공해주신 극단 논다의 강용복 감독님, 임주희 선생님, 강희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입체낭독극 공연에 참여하며 알게 된 것들
- 해설을 읽을 때도 분위기를 담아야 한다.
- 과정드라마가 아닌 보여지는 공연(Theater)을 할 때는 결국 연출자의 역할비중이 크다. 그 말은 학교에서 연극을 꾸밀 때 교사의 역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학생들에게 연출을 맡길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교사가 연출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지 옆에서 꼼꼼하게 챙겨줘야 한다. 또는 1학기에는 연출을 교사가 하고 2학기에는 학생에게 맡겨보는 방법도 있다.
- 낭독극도 '극'이기 때문에 상대방과 주고받는 호흡이 중요하다.
- 낭독극이지만 배경을 묘사하는 경우에는 영상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 이미지와 음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대사를 음악과 맞추어서 연결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