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쌤의 Book극 이야기] 14. 학교에서 수박이 먹고 싶으면
올해 제가 가장 잘 한 일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수박을 키운 일입니다.
책과 교육연극을 넘나드는 Book+극, 북극이야기! 14번째 시간! 오늘은 'Book'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수박을 키우며 그림책을 만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아이들과 처음 수박을 키워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림책 하나를 만난 뒤였습니다. 전주에 여행을 갔다가 방문한 그림책 책방 '같이:가치' 사장님께서 「수박이 먹고 싶으면 - 김장성 글, 유리 그림」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이 작품은 수박이 씨부터 시작해 열매를 맺고 사람들이 나누어 먹기까지, 수박의 한살이의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마침 4학년 아이들과의 1년이 약속되어 있어 수박을 키우며 식물의 한살이를 지켜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책방 사장님의 이 한 마디였습니다.
"선생님, 수박은 다른 과일과 다른 특징이 있어요. 무엇인지 짐작 하시겠어요? 수박은 혼자서 다 먹을 수 없는 과일이에요. 수박은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먹을 수 있어요."
아이들과 수박을 함께 키우며 '함께 나눈다는 것', '생명(식물)이 주는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하나, 씨앗 불리기
「수박이 먹고 싶으면 - 김장성 글, 유리 그림」을 교과서 삼아 수박을 키웠습니다. 수박을 키우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자라라 잘 자라라"하고 이야기해 주어야 합니다. 4학년 과학책에 보면 강낭콩 씨앗을 페트리접시에 불려서 심고 키우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강낭콩을 수박씨로 대체하여 물에 불렸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싹을 실내와 실외 화단에 심었습니다.
둘, 식물이 성장해 열매를 맺은 모습을 상상하여 그리기
미래를 상상해 본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요? 아이들과 식물이 성장해 열매를 맺은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안녕달 작가의 「수박수영장」을 읽은 친구들도 보입니다.
셋, 씨앗 옮겨심기
물에 불린 씨앗을 옮겨 심었습니다. 팀을 나누어 일주일마다 수박을 돌보며 관찰할 수 있게 안내했습니다. 학급신문에 그 이야기가 자세히 실렸습니다.
넷, 수박의 성장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기
수박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팀별로 관찰한 결과를 관찰일지에 그림과 글로 옮겨적었습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글과 그림은 그림책의 글재료로 활용됩니다.
중간에 위기도 있었습니다. 다른 학년 아이들이 수박서리를 해 가거나 수박을 따서 던져버리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반 아이들은 많이 울었습니다. 저도 울었습니다. 무엇이든 시간과 정성을 들인 생명은 소중한 법이지요.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우리반 아이들은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수박 한 덩이를 사오게 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회의를 통해 이러한 것을 하기로 했습니다.
수박 서리를 한 학생들은 수박식물사랑 캠페인을 해야 했습니다. 이 이야기도 그림책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다섯, 수박이 익기를 기다리기
위에 언급한 수박 서리 사건 이외에도 수박을 학교에서 지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처음 목표였던 7월말 수박파티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난히 더웠던 여름방학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저는 수박농사는 끝나다고 포기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방학 중 업무를 하기 위해 찾아간 학교에는 커다란 수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누군가 꾸준히 물을 준 흔적이 있었습니다. 여름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과 학교 행정실 선생님께서 꾸준히 관리를 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2학기 개학과 함께 수박을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여섯, 수박파티, 그림그리고 글쓰기
아이들과 수박을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책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그동안 기록했던 글과 그림을 기초로 글팀과 그림팀을 모집하고 「수박이 먹고 싶으면 - 김장성 글, 유리 그림」을 모티브 삼아 '학교에서 수박이 먹고 싶으면' 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관찰그림과 사진을 보고 그림팀이 그림을 그리면 글팀은 학급친구들이 기록한 글을 바탕으로 그림에 어울리는 글을 함께 쓰고 투표를 했습니다. 전체 그림과 글이 완성되고 마지막으로 합평과정을 통해 그림책의 그림과 글이 완성되었습니다.
일곱, 그림책 편집하기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자의 형태로 만드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스냅스와 찍스와 같은 포토북을 만들어주는 사이트의 툴을 이용하는 방법, 부크크같은 자가출판사이트를 이용하는 방법, 북셀프 같은 소량문집을 제작해주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방법, 인디자인을 사용해 편집하고 독립출판을 하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저는 그림책의 형태이고 소량으로 제작해야 해서 포토북 사이트의 툴을 사용하였습니다. 아이들의 그림을 스캔하고 사진보정 후에 포토북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툴을 사용하여 편집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수박이 먹고 싶으면 그림책 완성!
그림책이 완성되고 아이들과 소박하지만 행복한 출판기념회를 열었습니다. 책 두 권은 학급문고에 비치하고 한 권은 학교도서관에 등록했습니다. 나머지 두 권은 지역에 있는 공공도서관에 등록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도 함께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 우리가 만든 그림책 보러 공공도서관에 자주 갈거예요!"
교실에서 꽃피운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아이들의 가정과 지역사회에 퍼질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림책 하나를 테마로 식물을 키우고 그것을 책자의 형태로 엮어낸 단순한 활동처럼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이야기가 책이 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책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닌 우리 주변의 작은 이야기들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문화로서 누리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가슴속에 남아 행복한 에너지가 되는 풍경을 꿈꾸어봅니다.
10년 뒤에도 수박을 보면 이 아이들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그럴까요?
아이들과 수박을 키우며 지냈던 1년 이야기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유쌤의 Book극 이야기 연재
01. 아이들과 천천히 깊게 나누어 볼 책들을 소개합니다(2018)
02. 책조각으로 상상을 나누다. - 읽기 전 활동으로 작품에 애정 갖기
03. 쉽고도 어려운 핫시팅! 학급 모두를 주인공으로!
04. 호기심 상자로 이야기 상상하기 - 저학년 읽기 전 활동으로 작품 예상하기
05. 교육연극을 시작하기 전에 놀큐(Q) 키우기!
06. 수업 시작 전, 책을 먼저 읽은 아이가 있다면?
07. 생각과 배려를 키우는 연극놀이
08. 꾸준히 정리하면 이야기 지도가 완성된다.
09. 배려와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연극놀이, 틀림그림찾기
10. 이야기지도를 건너 감정그래프 그리기
11. 유쌤, 교육부 장관이 되다._책으로 연극적 상황 만들기
12. 미술작품을 통해 생각 나누기
13. 낭독극으로 함께 읽는 즐거움을 누리다!
14. 학교에서 수박이 먹고 싶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