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리딩 도전기] 책을 느리게 읽는 열 번째 방법 - 마지막 연재
"사!"
"삼!"
"이!"
"일!"
통일 전망대 매표소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만석이 형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 이것으로 순례를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와아!"
-김남중, 불량한 자전거 여행 _206 中-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을 김남중 작가님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통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 열 번째 방법을 안내해 드리고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 이라는 타이틀의 연재는 마무리가 됩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렸던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
1.'제목에 유의하라'
2. '경쟁하는 목소리에 유의하라'
3. '이정표를 찾아라!'
4.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라!'
5. '작가의 문체를 감지하라!'
6. '인내심을 가져라!'
7. '의심의 기술을 길러라!'
8. '작가의 기본생각을 발견하라!'
9.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자!'
이제까지 아홉 가지의 방법을 안내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1년 동안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방법 하나를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바로 '책에 메모하며 놀자!'입니다.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 10. 책에 메모하며 놀자!
책, 어떻게 읽으시나요? 저도 원래 책을 깔끔하게 보는 편이었습니다.
책은 성스러운 것이며, 건드려서는 안되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깨끗하게 읽고 책장에 다시 넣어두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책을 탈고하면서부터 책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책에 대한 권리는 독자가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책에 대해 했던 최초의 메모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출처 엄지뉴스]
문제 하나, 위 학생은 교과서에 왜 메모와 낙서를 할 수 있었을까요?
답: 자기 책이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 책이나 학교 도서관 책이면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요.
자기 책이기에 메모할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만원 남짓한 돈을 지불하고 내가 그 책을 온전히 즐길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죠.
"나는 책을 깨끗하게 볼거야! 책에 낙서하면 중고로 팔 수도 없고, 내 성격과 맞지 않아"라고 생각한 당신,
메모하며 책을 읽는 즐거움을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메모는 자신과의 대화와도 같으며, 한 작품을 함께 공부하는 동료 독자의 역할도 어느 정도는 한다
<중략> 한 작품에 대한 처음의 반응과 나중의 반응을 비교하고 그것을 기록해 두면, 당혹스러움이 흥미로운 평가로, 엉뚱한 질문이 좀 더 실질적인 질문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_느리게 읽기, David Mikics 199p
여기 한 권의 헌 책이 있습니다. 책을 너덜너덜하지만 누군가의 생각이 달린 메모들로 가득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햄릿' 메모를 한 사람은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입니다. 상상만으로 행복해 지지 않나요? 전 세계에서 이 책을 읽어보려는 사람들로 줄을 설 것입니다. 경매에 올리면 얼마의 낙찰가가 나올까요?
책을 읽다가 발견한 중요한 문장, 떠오른 새로운 생각들, 이런 보물들을 찾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보물들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지 않나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내 머리 속에 남아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메모를 합니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을 꾸다가 깨어나 보니 침대 속에서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의 첫 문장-
실제로 작가들은 책을 읽으며 여백에 메모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소설가이자 곤충학자였던 블라드미르 나보코프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며 갑충에게는 사실 날개가 있으며 주인공은 날아서 괘씸한 가족들에게서 탈출할 수도 있었다고 메모를 했습니다. 여러 책에 메모를 하던 그는 결국 메모들을 모아 출간까지 하게 됩니다.
책에 메모하기가 싫다면 따로 독서노트를 작성해도 됩니다. 하지만 저는 책에 바로 메모를 했습니다.
슬로 리딩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책을 분석하고, 샛길새기 활동들을 책에다 직접 적어놓았습니다.
먼저 제가 작품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읽고, 연재를 위해 여러 번 더 읽으며 메모를 정리했습니다.
메모를 하며 책을 훼손한 것이 아니라 책에 더 다가가고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책과 대화를 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도 메모를 했습니다. 책에 나와있는 삽화에 인물 이름을 써보며 상상하던 인물의 이미지와 대조해 보게 했습니다.
"신석기 삼촌은 누구일 것 같아?" 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상상하며 맞추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매 삽화마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수수께끼를 풀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간 인물들을 맞추는 활동은 명확하게 답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서 작가님께 직접 물어 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작가님이 삽화 속 인물들 이름을 알려주시던 순간, 사실 삽화는 다른 분이 그리셔서 헷갈려 하셨다는 것은 비밀]
책을 읽으며 책에 나와 있는 모든 것들을 즐기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자기 책을 가지고 책 날개부터 작가의 말, 책의 삽화까지 즐기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책에 메모를 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보게 하고 싶습니다.
책에 메모를 하는 것은 작가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반응을 책에 적는 것이지요.
책에 메모를 하는 것은 책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책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입니다.
책에 메모를 하는 것은 작가가 책을 쓰는 방식을 이해하게 됩니다.
책을 통해 독해력을 늘리는 것도 좋고, 책을 통해 사고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책을 읽고 즐기고 누리는 '문화'를 아이들과 함께 즐기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니 아이들과 1년 동안 자전거 일주를 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남의 책이 아니라면, 빌린 책이 아니라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이라면, '메모'라는 특권을 사용해보시지 않으시겠어요?
책을 느리게 읽는 열 번째 방법. '책에 메모하며 놀자!'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샛길새기 활동>
1. 작품 속 인물 그리기
-작품 속 나오는 인물을 그려보게 했는데, 그냥 그리려니까 어렵더군요. 아이들은 삽화를 보고 그려왔습니다. 강요는 하지 않았고 그려올 친구들만 그려오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은 그림들을 그려왔습니다.
2. 미니 불꽃놀이 하기
-여행 마지막 밤,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문구점에서 개당 백원짜리 불꽃놀이 막대를 들고 운동장에서 불꽃놀이를 했는데, 낮에는 별로 효과가 없더군요. 밤에 하시기를 추천합니다.
3. 1년 간 슬로 리딩 수업했던 사진, 동영상 보며 이야기 나누기
-여행 마지막 밤, 여행을 하며 찍었던 사진들을 등장인물들이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슬로 리딩 수업을 마무리 하며 아이들과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며 많이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1년 동안 책 한 권을 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며 공유할 추억이 생겼다는 것,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상으로 '책을 느리게 읽는 방법' 연재를 마칩니다.
다른 이름의 연재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