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출 -애벌레편-
갈색 사물함 위에 초록색의 무언가가 있어서 자세히 보니 애벌레였다.
아뿔싸.
관찰 통을 둘러싸던 푸른 망사 망이 관찰에 방해가 되어 벗긴 것이 원인이었다. 혈기 왕성한 애벌레는 푸른 망이 걷힌 것을 알고 낮에는 얌전히 지내다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뛰쳐 기어나간 것이다. 관찰 통에서 달아난 애벌레들로 온 교실이 애벌레 천지가 되어 있었다. 사물함 위부터 교실 바닥, 학생 책상 밑까지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일찍 등교한 어린이들이 '선생님! 제 의자 밑에 있어요!'라면서 애벌레들을 찾아냈다. 가장 멀리까지 간 애벌레는 화분으로부터 5m 넘는 곳까지 이동해서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고작 2cm 자란 벌레의 몸으로 교실 종주를 하다니. 이렇게 멀리 이동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얼마나 배고팠던 거니. 기어도 먹을만한 잎이 나오지 않아서였는지 애벌레들은 상당히 지쳐 보였다. 윤기 나던 털은 힘이 없어 보이고 촉촉했던 표면은 쭈글거린다. 집 나간 애벌레들이 어디 있는지 구석구석 찾고 찾은 애벌레부터 이동을 시켰다.
여기서 대부분 실수하기 쉬운 것은 애벌레는 손으로 잡거나 나무젓가락으로 잡아서 옮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화분 밖으로 나가 교실 모험을 할 정도로 용기 있는 애벌레지만 2-3cm 애벌레는 손톱으로 찍- 누르면 바로 죽을 만큼 연약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무젓가락으로 집는 적은 손의 압력만으로도 애벌레가 다칠 수 있다. 그래서 애벌레를 옮기려면 먹기 좋아할 만한 잎을 앞에 무심코 던져두고 애벌레 스스로 잎사귀 위에 올라타게 한 다음 새 잎사귀로 옮겨줘야 한다. 그런데 탈출한 애벌레만 5마리가 넘어서 어떤 애벌레는 잎사귀 위에 잘 올라타고 어떤 것은 한참을 기다려도 잎사귀에 올라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종이에 태워서 옮겨줘야 했다. 등교 시간이 가까웠기에 어린이들이 오기 전에 모든 애벌레를 집(사육 상자)으로 돌려보내기엔 시간이 촉박했고, 등교 시간이 되어 애벌레가 탈출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아침 시간은 더욱 카오스가 돼버렸다.
이렇게 집을 탈출한 애벌레들을 무사히 집으로 귀환시키고 더 큰 잎사귀들이 있는 화분으로 옮겨주니 함께 고비를 넘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레 하나를 무사히 나비가 되기까지 기르는 데에도 세세한 관심이 필요하고 이런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어린아이를 키우는 세상의 모든 보호자가 위대해 보였다. 학교에서는 제법 어른스럽기도 한 우리 반 어린이들도 지난 10여 년의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위험을 딛고 무사히 아가 시절을 보내고 무럭무럭 건강히 자라준 것이 고맙고, 새삼 학교생활을 잘 해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는 데까지 2주밖에 걸리지 않지만, 인간은 보호자 품이 필요한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약 20년의 세월이 걸린다. 오늘 구해낸 애벌레들처럼 우리 반 어린이들도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을 무수한 고비를 잘 넘기고 잘 자라길 소망한다.
잠깐, 여기서 잊고 있는 존재가 있다. 대탈출 소동에도 가만히 잠자고 있던 번데기는 어떻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