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한 번데기 녀석
'동물의 한살이' 수업을 시작하고 모든 반에서 애벌레를 기르면서 옆 반 선생님과의 아침 인사가 서로 자기 반 애벌레의 안부를 묻고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선생님 반 애벌레는 어때요?"
"우리 반은 아직 다 새끼들이야."
"우리 반은 벌써 작은 화분 잎사귀는 다 먹었어."
교실마다 기르는 애벌레는 우리 학년의 공통 관심사이자 대화 주제가 되었다. 벌레에게 마음을 주는 내 모습이 유난인 것 같고,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한 것을 보며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소중히 하려는 게 사람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알에서 애벌레가 나온 뒤, 교실 문을 열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애벌레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되었다. 작은 벌레가 뭐라고 간밤에 저녁은 잘 먹었는지, 잠은 잘 잤을지 걱정된다. 어제는 애벌레 중에서 독보적으로 큰놈인 대장 애벌레가 먹지도 않고 왔다 갔다 하기만 해서 잘 있는지 더욱 궁금하였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애벌레 화분이 있는 관찰 통으로 향했다. "하나, 둘, 셋, ...." 침착하게 애벌레의 마릿수를 세며 어제와 개수가 같은지 확인하는데, 어제 그렇게 애벌레가 안절부절못하며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통 속을 헤집으며 다닌 애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녀석이라 못 찾을 수가 없는데, 다시 하나 둘, 셋 확인하지만, 여전히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케일 잎사귀 뒷면을 슬쩍 기웃거려보니, 새로운 번데기 하나가 보인다.
"와 번데기다."
안도와 기쁨이 교차한 순간이었다. 드디어 우리 반 애벌레 한 마리도 번데기가 된 것이다.
'그래. 번데기가 되려고, 너 자리를 찾고 싶어서 애를 먹었구나."
이 녀석은 번데기로 변하는 때가 되어 종일 자신이 원하는 최적의 번데기 장소를 찾아 헤맨 거였다. 벌레한테 무슨 성격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엄지만 한 애벌레도 번데기 자리 선정에 신중했다. 애벌레는 자기가 원하는 잎 뒤에 다소곳이 자리를 잡았고 교과서의 사진처럼 잎사귀와 비슷한 보호색을 띠고 있어 관심을 두고 보지 않으면 우리들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등교하자마자 한 마리가 번데기가 되었다는 빅뉴스를 알려줬고 쉬는 시간마다, 또는 수업 시간에도 사물함에 가는 척 어린이들은 번데기를 한 번씩 보고 오는 게 일과가 되었다. 온라인 수업 날에도 실시간 화상으로 쉬는 시간에 교실의 애벌레와 번데기를 보여줬다. 어린이들이 교실에 없지만, 애벌레와 번데기는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제 우리 반에는 애벌레 7마리와 번데기 1마리가 있다. 이 작은 것들이 언제 나비가 되려나. 모든 애벌레 꼬물이들이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어 관찰 통 안을 펄럭이며 다니는 날을 상상한다. 한 마리가 번데기로 변신하니, 나머지 애벌레들도 분발하는 것 같았다. 전보다 열정적으로 잎을 갉아 먹어 화분의 잎사귀는 줄고 줄기는 점점 앙상한 뼈대만 남는다. 가만히 둬도 잘 크는 녀석들의 활기찬 몸짓을 보니 흐뭇했다.
다음날, 평소처럼 교실 문을 열고 애벌레들이 있는 관찰 통으로 향했다.
관찰 통 화분이 텅 비었다. 날 반겨주는 애벌레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