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읽어요] 근질근질, 여행이 그리울 때.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에 일상이 된 지 10개월에 접어들었다. 전염병은 우리의 발을 단단히 묶어 놓았다. 이제는 가고 싶다고, 일상에서 떠나고 싶다고 바로 비행기표를 지를 수 없다. 우리의 발이 자유로워지기까지 전에 다녀왔던 여행의 추억들을 먹고 살며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여행에 대한 간절함을 키운다. 날이 좋아지면 SNS에서는 여행 가고 싶다는 글이 올라오고 집콕여행을 해시태그로 걸며 옛 여행 사진을 올리며 자신에게 의미있었던 지난 날의 자유로운 날들을 돌이켜본다. 불과 몇 달 전에 다녀왔던 거지만 사진을 보면 한참 과거의 일로 느껴진다. 과연 내가 그런 여행을 다녀오긴 한 걸까? 먼 옛날의 여행은 사진으로 박제되었지만, 여행의 기억은 마치 꿈을 꾼 것 같이 아련해진다. 여행을 그리워하는 그대에게 여행의 여운을 느끼게 해줄 여행기가 있다.
해외 여행하면 제일 손꼽히는 나라인 이탈리아. 그 이탈리아의 남단에 있는 섬 '시칠리아'에 다녀온 김영하의 에세이와 패키지여행의 가이드와 같이 다니는 곳마다 썰을 푸는 유시민의 박학다식함이 빛나는 '유럽 도시 기행 1편'으로 상상 여행에 빠져보자.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세계 테마기행 녹화차 시칠리아에 다녀왔던 김영하가 방송 진행 일정으로 인해 짧게 둘러봐야만 했던 아쉬움을 달래고자 다시 시칠리아로 떠난 10여 년 전의 여행 에세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은 2009~2010년이 되겠다. 그때만 해도 문자 세대였다. 십 년 전 사람들은 핸드폰을 고를 때 '폴더폰'이냐 '슬라이드'냐를 가지고 고민을 했던 시절로 스마트폰의 없던 시절이다. 친구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문자를 사용해야 했고 여행을 갈 때도 '여행시리즈 책'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여행책으로 예습은 물론이고 두껍고 무겁고 막상 여행하면 보진 않지만 안 가져가면 계륵 같은 존재였다. 이랬던 시절이 무색하게도 지금은 SNS를 통해 어디가 핫 플레이스인지, 어디를 가서 어느 각도에서 찍어야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지 정보가 횡횡하다. 예습을 철저히 하면 학교 공부가 재미없어지는 것처럼, SNS와 인터넷으로 한 꼼꼼한 여행지 예습은 내게 여행지에서의 또 다른 '할 일'을 만든다. 이미 가기도 전에 완벽히 숙지한 여행은 몸으로 부딪치며 새로움을 발견하는 재미가 없다.
그러나 그가 시칠리아로 떠난 시절에는 예습하고 싶어도 정보의 한계가 있던 시기다. 여행지의 숙소만 겨우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어디를 갈지는 터미널에 내려서 인포메이션 센터를 방문하거나 발품을 팔아 길거리의 현지 여행사를 통해 알아가야 한다. 김영하도 그 당시의 여행이 그랬듯 직접 기차역에 가서 기차표를 구입하고 여행지에 내려서 숙소를 구한다. 숙소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호객하는 사람을 따라간 거라 운에 따라 좋은 숙소가 걸릴 수도 나쁜 숙소가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때때로 직감적으로 고른 것이 되돌아보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지난날의 업무차 왔던 시칠리아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시칠리아의 구석구석을 빙 돈다. 그가 여행하는 방식을 따라가며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라떼는~' 그 시절의 아날로그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그는 몸으로 부딪치는 여행을 담담히 그려낸다.
그의 여행기를 읽으니 대학교 1학년 때 뭣도 모르고 떠났던 유럽 여행이 생각난다. 그때의 여행은 우연이 주는 행운에서 오는 재미가 있었다. 숙소 가까이에 있어 무심코 들어간 음식점이 내 입맛에 기가 막히게 맞다든가, 목적 없이 걸었던 거리에 생각지 못한 유적지가 있다든가, 우연히 접어든 골목길이 아기자기함이 있다든가. 요즘은 내가 스마트폰이 없거나 예약하여 오지 않으면 좋은 숙소는 사람들이 미리부터 다 채간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예약하고 여행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게 된다. 즉, 우연에 기댄 행운의 여신이 내게 올 가능성이 줄었다. 심지어 여행지에서 어디에서 어느 각도로 어느 시간에 가야 좋은 사진을 담을 수 있는지까지 세세한 정보를 알 수 있고, 그렇게 공들여 직은 사진은 SNS로 자랑한다. 진정한 여행은 무계획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말이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지도를 보며 실시간으로 검색기능을 사용하며 도움이 필요할 때 스스로 해결해나갈 힘이 생겼지만 그러기에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도 적어지고 여행의 웬만한 어려움은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불편했던 즐거움을 다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김영하가 세계 테마기행을 영상으로 남겼다면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1'은 글로 읽는 여행 다큐멘터리다. 그의 여행은 세계 테마기행 -유럽 편-이다. 이 책은 유럽의 큰 도시들의 문화와 유적을 역사와 함께 엮어 보여주려는 출판사의 목적에서 비롯된 여행기이다. 정해진 기간 내에 역사 문화적으로 유명한 유럽의 4개의 대도시를 여행해야 되는 상황이 있기에 훨씬 꼼꼼하게 짜인 계획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앞의 책이 배낭여행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박학다식한 가이드와 함께하는 프리미엄 패키지여행이다. 유시민은 주로 걸을 수 있는 거리는 모두 걸으며 도시의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유적들의 의미와 그 시대의 모습을 걸으며 또 상상한다. 처음은 그리스의 '아테네'로 시작하여 이탈리아'로마', 터키의 '이스탄불'로 이어지며 프랑스의'빠리'로 마무리된다. 유럽의 도시와 그 도시에 켜켜이 쌓인 역사를 한 꺼풀씩 벗기면서 역사 유적지에 얽힌 소소한 역사적 일화를 썰로 풀어내는데, 그 썰을 읽다 보면 과거 그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지낸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의 발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설명하는 지식이 모두 뇌에 남지는 않지만, 기분만큼은 나도 그 못지않은 문화교양인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특히, 나도 다녀온 적이 있던 로마나 빠리를 이야기할 때 기억 저편에 묻혀있던 나의 여행 기억도 떠올랐다.
그는 하나의 도시의 여행기가 끝날 때마다 그 나라의 '인사말'을 넣어서 챕터를 마무리 짓는다. 우리는 평소에 타인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아도 여행을 떠나면 제일 먼저 그 나라의 인사말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기본적인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는 그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내가 유일하게 아는 그 나라의 언어이자 가장 친숙한 말이 되고 여행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도 내 입가에 맴돈다. 아마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금 손끝에 그 인사말이 맴돌았을 것이다.
이 책들을 읽으면 후유증이 생긴다. 가지도 못할 시칠리아섬은 어떻게 생겼나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고, 그가 말한 산과 도시가 어디인지 가늠해본다. 티비에서 다큐멘터리로 시칠리아에 들어온 아프리카 난민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가본 적은 없는 곳이지만 최근에 글로 여행한 '시칠리아'여서인지 왠지 관심이 간다. 마치 내가 그곳에 여행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처럼 말이다. 유럽을 다녀온 적 있는 사람은 유시민의 여행 발자국을 따라 내가 여행했던 루트는 뭐였지, 아' 나도 여기 갔었는데! 하면서 손뼉을 치며 보게 된다. 그리고 한동안 들어가지 않던 클라우드에 들어가서 사진을 감상한다. 옛 여행 사진을 보고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지면서도 미칠 듯이 가고 싶으면서도 그 시간의 내가 더는 없는 게 아쉬워지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버티는 것이 최선인 것을 어쩌겠는가. 이 두 권의 책이 여행 결핍증으로 아픈 그대를 치유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