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한살이의 끝은 날아가는 것이었구나.
애벌레 대탈출 소동 이후로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교실에서 기르던 배추흰나비가 번데기가 된 이후로 매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확인하는 건 번데기가 잘 있나 확인하는 거였다. 그건 나나 어린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비대면 수업 날로 어린이들이 집에서 공부하는 날이었다. 배추흰나비를 관찰하는 푸른 망 사이로 번데기가 잘 있나 보았는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번데기가 어디 있는지 잘 못 찾아서 이따 과학 시간에 애들 보여주면서 나도 같이 봐야 한다는 생각에 슬쩍 보고 말았다. 그리고 3교시 후 쉬는 시간 어린이들에게 카메라로 보여주려고 배추흰나비 사육 상자를 컴퓨터 앞으로 가져왔다. 어라? 근데 아무리 봐도 번데기가 없다. 자세히 보려고 푸른 망을 살짝 잡아당기자 안에서 뭔가 파닥거린다.
설마!
밤사이에 번데기가 나비로 변신해서 푸른 망에 붙어있었다. 어린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하필 온라인 수업 때 일어나다니. 언제부터 나비가 된 건지 알 수 없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아무것도 못 먹고 굶어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오는 날까지 나비를 안에 두면 좋겠지만 금, 토, 일 3일을 지나 월요일이 돼서야 대면 수업 날인데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 나비가 살아있을지 불투명했다. 나비를 살리려면 오늘 풀어줘야 한다. 나는 예정된 수업은 뒤로 미루고 수업을 나비 관찰로 바꾸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어린이들에게 긴급속보, 대박 뉴스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때는 나도 흥분을 했다. 차분하게 뉴스를 전하는 앵커처럼 말을 하려고 했으나 올라오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기 어려웠다.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1~3교시 동안 열심히 공부하는 사이에 우리가 기르던 번데기가 '나비'가 되었어요!"
모니터 안의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뒤로 가장 큰 눈이 되어있었다.
"네??!!"
"그런데, 이 번데기가 언제 나비가 되었는지 선생님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그게 어젯밤일 수도 있고, 오늘 오전에 우리가 공부하던 시간일 수도 있어요. 직접 보고 싶고, 많이 아쉽겠지만 이 나비가 엄청나게 배가 고파서 오늘 날려줘야 할 것 같아요."
아쉬움의 탄식이 들려왔다. 어린이들에게 이름을 정해보자고 하고 날리는 모습을 밖에 나가서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비를 날리기 전 카메라를 사육장 가까이 갖다 대며 나비의 생생한 날갯짓이 모니터 너머로 전해지길 바랐다. 먼지 같았던 알에서 나비로 변신한 모습은 너무나 신기했다. 동물의 새끼를 낳는 과정을 '생명의 탄생'이라는 말을 붙였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알 수 있었다. 이런 광경을 아이들이 직접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어린이들이 나비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넣은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얼른 핸드폰을 켜서 다른 아이디로 줌을 들어왔다. 어린이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쉬워할 아이들을 위해 화질이 좋은 탭으로 영상을 찍으려고 탭도 챙겼다.
결국 한 손엔 핸드폰, 다른 손엔 탭을 잡고 양손으로 배추흰나비 관찰 망을 안고 낑낑대며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망을 열면서, 나비가 망에서 나오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영상까지 촬영하려고 하니 도저히 두 팔로는 안 되었다. 결국 컴퓨터실에 있던 원격 보조 선생님께 잠시 시간을 내어주길 부탁하여 나비를 날리는 동안 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날 아이들은 감동과 작별의 눈물을 보이며 나비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하였고, 나비는 그 마음을 아는 건지, (혹은 배가 고팠던 건지) 내가 날려준 꽃밭 근처에서 꽃의 꿀을 먹으며 오랜 시간 머물렀다. 날아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며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마지막 꿀을 먹고 이제 미련 없다는 듯이 나비는 아주 높이 날아오르더니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우리는 한 달 넘게 함께 했던 나비를 보내주었다. 나비에게 정을 많이 줬던 어린이들은 집에서 눈물을 훔쳤다.
비록 계획했던 수업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이 순간에는 나도 아이들도 나비가 파란 망으로 갇혔던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자유롭게, 안전하게, 또 씩씩하게 살기를 기원했다. 교실로 올라와서는 찍었던 영상을 다시 보면서 나비와의 마지막을 추억했다. (영상 속에 호들갑 떠는 내 목소리에 민망했다.)
나비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를 글로 또는 시로 써보라고 했다. 나비를 보내며 눈물짓던 순수함, 자식을 보내는 어미의 마음이었을까.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인사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 다행이다. 우리는 몰랐다. 이 나비가 우리가 보내는 마지막 나비가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