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아- 29) 내 밥은 누룽지가 돼요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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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09:17
꼭 미운 관계에 있는 게 아니어도.
배우자보다 애가 더 중요해지는 경우가 있다.
목숨
우리 부부는 35살이다.
아직 살 날이 많지만, 내 아이보다는 아니다.
객관적으로 놓고 봐도, 나보단 아이가 사는 게 낫다.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지 않은가 싶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내 목숨을 아이에게 주려는.
가족이 물에 빠졌다 해도, 내 목숨보다, 아내보다, 아이를 먼저.
얼마 전 삼척 강 줄기에 황어 떼가 올라왔다.
알을 낳으러 먼길을,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왔다.
다리 위 쪽에서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알을 낳고, 힘이 빠져 다리 아래로 흘러내려갔다.
이것이 어쩌면 동물적 본분인지 모르겠다.
우리 부부도 아이를 낳고 삶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내 앞의 작은 생명은 우리의 목숨을 걸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남편
여기서 마치면 아이를 위한 감동적인 이야기로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의 시작은 사실 반대였다.
아내가 아이보다 날 더 소중히 여기는 그런 느낌에서.
국물에 밥을 말고 김치를 얹어야 짱이다.
근데.. 밥이 애매하게 많아서 먹긴 부담, 남기긴 민망.
아내는 말했다.
"많으면 남겨. 애들 누룽지 해주면 돼."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고, 제목이 되었다.
난 통계를 내 본 적도 없고, 다른 부부는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
다만, 우리 부부의 기본 삶엔 아이보단 서로가 우선이다.
서로
어쩌면 1문단과 2문단은 서로 모순적 내용으로 보일지 모른다.
아이를 최우선으로 한다 했다가 다시 또 아니라니.
하지만 목숨을 바치는 것과 평상시 삶은 다르다.
정말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새끼지만, 나도 죽으려 사는 건 아니다.
너희들은 커서 떠나겠지만, 나이 든 우리는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몫은 너희가 잘 클 때까지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아이는 키울 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한다.
날 향해 웃어주고, 손을 잡고 걷고, 널 품에 안은 그 모든 순간.
커서 성공하길, 효도하길, 전화하길, 자주 오길 바라는 건 욕심일지 모른다.
우리는 이제 알을 낳고 떠내려가는 중이다.
인간의 목숨은 모질게도 길어, 동물적 삶을 끝내도 사회적 삶이 남는다.
두 딸을 보내고 둘이 남아도, 아내와 난 서로 기대며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죽음은 아이를 위해, 우리의 삶은 서로를 위해.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