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를 위한 개념과 멘트- 16) 범인은 네 안에 있다
낭상
0
1468
2
2018.06.25 09:04
오리가 사라졌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오리였다.
그리고 전날 저녁 학교에 왔던 한 학생이 있었다.
의심의 이유
가장 먼저 범인으로 몰리는 건 당연히 그 아이다.
오후까지만 해도 있었던 오리가 사라졌으니.
또 그 아이를 본 목격자도 있었다.
평소에 행실도 똑 부러지지 않는 데다, 비슷한 사건까지 있었어서 더 그랬다.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면 우린 그걸 합리적 의심이라 한다.
하지만 100프로 이 학생이 범인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교실에서 뭐가 없어져도 이런 경우가 생긴다.
누가 들고 다니는 걸 봤다느니, 누가 도둑질한 적이 있다느니.
이런 유의 사건은 확실한 물증 없이 추측과 주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기 쉽다.
물론 증거나 증언이 너무 명확할 때도 있다.
그래도 그 대답은 본인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TV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확신의 오류
교무부장님은 그 학생을 불러 물었다.
학생은 본인이 한 게 아니라 어떤 아저씨가 가져갔다 했다.
교사는 학생이 거짓말을 한다고, 학생은 교사가 의심한다고 여겼다.
그날 저녁 아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받았다.
친구들은 오리 도둑이라 놀리고, 교무 선생님은 몰아세운다고.
난 의심이 먼저 된 부분은 사과드리고, 상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한 후 연락드리기로 했다.
범인이라고 인정하는 시점보다, 범인이라는 주장이 먼저 오면 위험하다.
그런 마음으론 확인이 아닌, 취조나 협박에 가까워진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정답을 갖고도 위태롭다.
난 교무부장님께 얘기했다.
"저도 이 학생이 했을 확률이 높다는 생각은 들지만, 심증만으로 학부모님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확실한 증거를 원하는 건 아이의 편을 들고자 하는 뜻이 아닙니다.
누가 범인인지를 찾는 결과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아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확인의 과정
여러 목격과 정황을 들어보니 전체적인 윤곽이 잡혔다.
다른 누가 가져갔다는 얘기는 거짓말임을 인정했다.
오리 사육장 망을 뜯어서 오리가 탈출을 했단다.
고학년인데.. 몸도 정신도 너무 어린 아이다.
답답한 오리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동화 같은 발상이라니.
자기는 훔쳐가려는 의도가 아니었는데, 도둑이라고 하니 당장의 억울함만 남은 거다.
"먼저 책임질 수 없는 행동을 한 건 잘못이야.
이 오리는 학교에서 같이 키우기 위한 거야.
너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해 버릴 문제가 아니지.
아무렇게 도망갔을 때 넌 감당할 수 없었고,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힐 위험도 생겨.
그것보다 거짓말을 한 게 더 큰 잘못이야.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진 않았지.
선생님은 네가 도둑질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아.
하지만 훔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오리가 사라진 원인은 네가 한 행동이니까.
거짓말로 도망가지 말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해."
명탐정 코난은 이렇게 외친다.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이 말이 멋지게 보이는 건 나중에 범인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범인은 이 사람이야!'
처음부터 내 속에 이 아이를 범인으로 넣고 얘기했다면 솔직히 터 놓지 않았을지 모른다.
난 반 학생들에게 말한다.
"누가 제거 훔쳐갔어요. 누가 제 식물 부러뜨렸어요."
이미 범인이 있는 것처럼 단정 지어 말하지 말라고.
의심이 생기면, 확신하는 게 아니라 확인해야 한다는 걸.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