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를 위한 개념과 멘트- 14) 차별을 대화하자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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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1 12:17
"쌤~ 차별하지 마요~"
교실에서 간혹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학생들은 쉽게 뱉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욕구와 차별
대부분 차별이란 말은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사용한다.
남자 또는 여자라서, 키가 작아서 혹은 공부를 못해서.
어떤 조건으로 하지 못하거나 갖지 못할 때.
즉, '차별'이라 말하는 건 내가 욕구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남자들만 축구를 하는 게 차별이 되는 건 여자도 하고 싶을 때다.
여자들이 체육시간에 쉬는 게 차별이라면, 나도 쉬고 싶다는 말이 된다.
내가 먹고 싶은 반찬을 키가 크다고 더 받으면 억울하다.
싫은 반찬은 많이 받아가 주면 오히려 고마운 거다.
내 욕구가 아닌 것에 차별이라 말하지 않는다.
남자들만 놀고 있으면 여자애들이 차별이라 말한다.
남자들만 일을 시키면 남자는 힘이 세니까 당연한 것이라 말한다.
아이들은 두 집단의 객관적인 차이보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한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반찬만 가져간다면 균형이 맞지 않아.
많이 먹는 친구는 맛있는 반찬도 많이 가져가지만 다른 반찬도 많이 가져가.
그 친구의 맛있는 반찬만 보며 차별을 말한다면 그건 솔직히 이기적인 마음이라 생각돼."
개인적인 이기심을 전체로 포장하려는 '차별'은 주의시킨다.
매번 비교하고 까칠하게 구는 몇몇 친구들은 특히 교육이 필요하다.
차별이란 단어로 선생님을 공격하지 말고 '이런 요구가 있습니다.'로 표현하도록.
배려와 제한
물론 이기심은 인간의 기본적 특성이다.
차별이라 느낄만한 상황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문제를 '차별'의 프레임에 넣는 건 막고 싶다.
체육시간에 수업을 하면 어쩔 수 없이 남녀가 갈린다.
운동 능력, 선호하는 종목 등등 고학년은 특히.
자유시간을 주면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다.
축구를 같이하면 여자들은 걸어 다닌다고 욕먹는다.
피구를 같이하면 남자들은 세게 던진다고 욕먹는다.
종목을 나누는 건 집단 성향에 따른 선택을 교사가 배려했을 뿐이다.
문제는 집단에서 평균적이지 않은 것을 욕구할 때이다.
남자 중에서 피구를 하고 싶거나, 여자 중에 축구를 하고 싶은 친구가 있을 때.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때론 개인을 제한하기도 한다.
교사가 남자들만 축구를 시킨 게 차별이라 말하기 어렵다.
여학생이 축구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잘못된 게 아니다.
평균을 지켜야 하는 교사와 특별한 너, 우린 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균과 편견
평균적으로 덩치가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 비해 많이 먹는다.
그러나 반대로 마른 애가 엄청 먹거나 뚱뚱해도 적게 먹는 경우도 있다.
가끔 오시는 배식 도우미 어르신은 겉모습만 보고 주시기에 불평하는 아이들이 있다.
자주 보는 담임교사나 조리사는 학생마다 얼마큼 먹는지를 안다.
안 남기고 잘 먹는 친구들은 많이씩 주고, 맛있는 거만 받으려는 친구들은 다 먹고 더 받으라 한다.
모르면 평균으로 대하고, 알면 개별로 대한다.
평균을 인식하는 것이 곧 차별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평균으로 모두를 대하면 편견이 되기 쉽다.
편견이 되지 않으려면 한 명 한 명을 알고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보통 칠판 당번은 키가 큰 친구가 많이 해.
높은 데까지 닦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작은 친구가 못하는 건 아니야.
점프를 뛰건, 의자를 놓던 정말 원한다면 할 수 있어.
여학생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물론 남자랑 하려면 불편하고, 같이하려는 동성친구를 찾으려면 도시 전체로 봐야 할 수도 있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축구를 하려는 여자가 적으니까 국가대표가 될 가능성도 높겠지.
내가 교사로서 전체를 이끌려면 평균에 맞춰야 되는 상황들이 있어.
그래도 만약 남들과는 다른 뭔가가 필요하다면 얘기해줘.
차별로 느낀다는 건 남들과 '차'이가 있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거니까.
차별을 대화할 수 있다면, 우리에겐 그 어떤 차이도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테니.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