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아- 5) 난 게임하며 사랑받는다
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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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1 10:23
담배를 피우는 시간마저도
교수가 책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보며 말한다.
"이 위대한 책을 읽으면서 어찌 감히 담배를 핀다는 말인가?"
학생은 대답한다.
"저는 책을 보며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는 시간마저도 이 책을 보고 싶은 겁니다."
야단을 치려던 교수는 오히려 학생을 칭찬하고 가게 된다.
대학시절, 교수님은 그냥 똑같은 행동에 대한 말장난인 것처럼 이야기했고 다들 웃었다.
하지만 난 진정 이 이야기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난 지금 게임을 하면서도 아내에게 사랑받고 있다.
나는 반이나..
게임을 한 만큼의 보상을 아내에게 주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게임을 하는 것은 야단이 아닌 칭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컵에 물이 반이나 차 있는지, 반 밖에 없는지는 그 물의 가치를 내가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있다.
그리고 그 해석의 기준은 나의 요인과 외부 요인으로 나뉜다.
나의 목마름은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꽉찬 물컵도 '고작 한 컵 밖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목마름이 아닌 다른 요인을 보면 그 물의 가치는 달라질 수 있다.
내 아이가 그 작고 여린 손으로 받아온 반도 안되는 물이라면, 자신은 마른 침을 삼키며 나에게 건낸 마지막 물이라면..
나는 반이나 되는 물컵이다.
이리도 건방지게 말할 수 있는 이유..
게임을 하는 시간마저도
"저는 육아를 하면서 게임을 하는 게 아닙니다. 게임을 하는 중에도 육아를 하는 겁니다."
라고 말하면 세상 모든 엄마들한테 한대씩 맞겠지?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담배를 피우는 시간마저도 책을 읽는 것'이 칭찬 받는 첫째 전제는 교수와 학생 모두 '담배'를 당연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책을 읽는 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개인에게 온전히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담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게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향유하는 시간에도 책을, 육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많은 엄마들이 불만이 많을 것이다.
"육아를 하면서 향유하는 시간을 바라는 것은 사치이다.
남자만 향유하는 시간을 갖고선 건방지게 말한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향유하는 시간에 대한 전제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서로 없애는 것이 아닌 만들고자 노력한다.
책은 넘어가는가
두번째 칭찬의 전제, 담배를 피우는 그 학생이 정말 책을 읽고 있다는 것.
담배에 빠져 책에는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핑계로 책을 두고 있는지 확인하라.
게임, TV 등에 빠져서 아기가 뒤집어져 우는 줄도 모른다면 '담배 중 독서'는 핑계에 불과하겠지.
게임을 하는 내가 정말 아이를 보고 있다는 것.
담배를 빨아들이는 순간에도 눈이 책을 향해 있다는 것.
아내가 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두 번째 전제조건이다.
게임을 내려놓다
대학교 3학년 때, 아내는 정말 크나큰 실수를 했다.
게임을 하는 나를 보다가 "나도 한 번 해볼까?"라고 말해버린 것.
그 말 이후로 약 7년간 '던파' 지옥의 던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무한 리젠되는 몬스터의 늪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임신 덕이다.
어쨋든 아내의 임신과 함께 둘이 함께 하던 게임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난 혼자 하는 '롤'이라는 게임을 시작했었지..
하지만 첫째의 출산으로 이 마저도 내려놓았다. 한 번 시작하면 30분에서 한 시간까지 몰입해야하는 이 게임은 부르면 언제나 달려가야할 내게 불가능이었다.
난 결국 핸드폰 게임만 남았다.
둘에서 혼자로, pc에서 phone으로..
조금씩 내려놓은 가치를 내 아내는 안다.
하지만 그따위 것 버리지 못하냐고..
여가를 내려놓다
2015년, 학교 형을 따라 배드민턴을 치러 갔었다.
아내는 일주일에 두 번을 허락해 주었으나 결국 난 배드민턴을 버렸다.
직장의 회식에, 내 취미에, 그로 인해 생길 또 다른 관계와 자리들..
나는 가족 밖에 있는 다른 소중한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지 않는다.
운동이든, 낚시든,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든..
언제든 버릴 수 있는 핸드폰만 내 손에 남아 있다.
"게임하고 있는 당신이 고마워. 그래도 밖으로 안 나가고 내 옆에 있어주려고 그러는 거잖아."
10년이 넘게 함께 해온 아내는 내 하찮은 모습의 본질을 알고 있다.
의미를 채우다
내 아내는 말한다.
"당신이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아이를 보는 게 참 대단해 보여.
그 전에는 몰랐지만 그렇게라도 필사적으로 자기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잖아."
나는 대답한다.
"고마워. 내 하찮은 행동의 이유를 살펴줘서.
너도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너의 의미를 찾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우리 서로의 의미를 지켜주자."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아내이지만 나에게 게임을 버리라고 하지 않았다.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 이지만, 오늘도 카페에 들려 라떼를 시킨다.
사람이고 싶다.
교사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싶다.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과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 사람임을 놓치는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