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으로 살기 힘들다_(3) 교사는 '중립'을 지켜야 해
교사는 '중립'을 지켜야 해
‘정치적 중립성’,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켜야 하나요?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양심이 뜨끔했던 적이 몇 번 있다. 제주 4·3사건, 세월호, 4·19, 5·18, 6월 민주항쟁 등의 계기교육을 할 때마다 왠지 내가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느낌을 팩트체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찝찝하기는 싫어서.
가장 먼저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교사가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를 ‘수업시간에 정치적인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건을 균형있게 다뤄야 한다.’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발언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길러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사실 이 부분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상호 간의 의견을 조정하는 것인데, 이런 발언을 금지하는 것은 어떤 시의성을 띤 교육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세상일에 관심 끄고 귀 막고 입 닫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 아름다운 시를 읽고 수학 문제를 풀고 자연을 보여주고 그림이나 그려라. 그런데 우리, 사실은 모두 세상과 맞닿아있는 교육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반박하고 싶다. 그래서 법을 좀 찾아보았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정치 운동의 금지)
① 공무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
② 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생략... 투표운동, 기부금모집 등)
③ 공무원은 다른 공무원에게 제1항과 제2항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정치적 행위에 대한 보상 또는 보복으로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약속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제3항 외에 정치적 행위의 금지에 관한 한계는 대통령령등으로 정한다. <개정 2015.5.18>
오케이. 나는 정당에 가입되어 있지 않고, 특정 정당을 위한 운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직 사회에 있는 동안에 이 정도는 지키고 살아가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교사가 해서는 안 되는 정치적 금지 조항은 이게 전부였다.엥? 정치적 발언이나 교육에 대한 내용은 없네. 그럼 현장에서 이해하고 있는 ‘정치적 중립성’은 뭘 근거로 나온 말이지? 좀 더 찾아보았다.
(+ 교사의 ‘정당 가입 제한’을 명시해놓은 국가공무원법 제 65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엄연히 따져보면 교사가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는 것과 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하는 것을 연결짓는다는 게... 상당히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의 개인적인 정당 활동과 학교에서의 교육활동이 구분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뭐 암튼. 다음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조성은, 인권위 재차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 허용해야”, 19.10.01.,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59351?no=259351&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
대한민국 헌법 제7조
①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②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응??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된다고? 내가 아는 한 ‘보장’이라는 단어는 의무다 아닌 ‘권리’와 어울린다. 정치적 중립성이 권리라는 의미인가?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조금 더 찾아보자. 마침내 한 기사에서, 나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으로 보장하게 된 배경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아, 우리에게는 어둡고 아픈 역사가 있다. 공무원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때. 교사가 앞장서서 유신체제를 홍보해야 하고, 전두환 5공 시절 민정당에 강제로 가입해야 했던 때. 이 역사를 거치면서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또한 보장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이 내용이 그대로 헌법에 실린 것이다. (출처 : 김행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 아닌 권리, 오마이뉴스, 11.08.0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8323)
이 기사는 우리의 ‘권리’가 ‘의무’로 잘못 해석되면서, 교사는 정치적 입장을 가지면 안 된다는 잘못된 통념이 자리잡았다고 말하고 있다. 오예! 그럼 이제 아이들에게 편하게 역사적 그분들에 대해 욕해도 될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교사의 정치적 발언이 징계받는 경우가 있다. A교사가 조국 의혹을 수사한 검찰을 비판하는 SNS글을 인용하여 시험문제를 출제했고, B교사는 문재인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런데 이 교사가 징계받게 된 법적 근거가 뭘까요? 시험문제로 다룬 것이 지나치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데 진심으로 궁금해서... 아시는 분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출처 : 우경임, 정치 편향 교사 첫 징계...(중략), 동아일보, 20.01.07.,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107/99109901/1)
심지어 이번 선거, 이런 내용도 담고 있다. [한국당, 교육공약 발표... 정치적 중립성 훼손 교사, 교단에서 배제]
(http://www.newspim.com/news/view/20200117000714)
물론 교사가 왜곡된 역사인식이나 편향된 정치적 시각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거나 교육 주제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에는 국민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행동이나 말 또한 모델링하기 때문에, 나 또한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사가 교육자료를 선택하고 가공할 때 무척 신중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사실상 교사가 완전무결하게 모든 정치적인 입장으로부터 ‘중립적’이 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당장 계기교육만 놓고 보더라도 1년에 스무 개도 넘는 ‘무슨무슨날’이 있다. 이 모든 날들에 똑같은 비중을 놓고 똑같은 분량으로 교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교사는 교육적으로 중요하게 다룰 ‘날’들을 취사선택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도 교사의 가치관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14년 4월 16일에 아는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구하다가 배에서 나오지 못하셨다. 나는 이게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아픈 일이었기에 해마다 4월이 되면 반 아이들과 추모 행사를 하고, 아이들의 편지를 선생님의 묘소에 전했다. 나름대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감교육이라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 중점을 두어 교육했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물었다. “왜 세월호만 계기교육하고, 천안함은 계기교육 안 하세요?” 그때는 그 말이 너무 화가 났다.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 나도 아픈데 왜 너만 아프다고 징징대냐고 핀잔하는 꼴이랄까. 그런데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말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있었던 많은 사건들 중에 나는 나에게 좀 더 와 닿는 세월호 사고를 선택했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들에게 진짜 도움이 될 것 같아서라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교육이어서인 게 더 컸다.
나는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치중립을 완전히 지키기 어렵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가치를 함부로 드러내고 교육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계기교육을 선택해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선택할 때의 기준이 ‘나’ 가 아닌, ‘아이들’ 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만한 가치 있는 주제인가, 아이들은 이 교육을 통해서 뭘 배우고 얻게 될까.
그럼 다시 처음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켜야 하냐고? 일단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는 공무원법에 어긋나므로 하지 않는다.(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다.) 그리고 헌법이 보장해 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누린다.(나라가 특정 사상을 교육하도록 요구할 경우 헌법을 들어 단호히 거부한다.) 개인의 양심적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고,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역량(모든 의사결정과정)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자료를 재구성, 제공한다. 이때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가치는 교사 개인의 가치보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치를 우선시한다.
(다음 '선생님으로 살기 힘들다' 시리즈는 15일에 업데이트됩니다. 정줄을 놓아 업로드가 하루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