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자, 우리 - 교탁에서의 사유 (3. 우리도 사랑을 알아요 (2)배신과 복수)
둘의 핑크빛 사랑이 무르익은 지 3일째, 갑자기 지영이가 우리반으로 찾아와 진규를 불러냈다.
“우리 헤어져.”
지영이가 진규에게 건넨 이별편지 안에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알고보니 지영이는 썸타던 현우(가명)가 있었고, 현우가 지영에게 시큰둥한 사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진규를 덥석 받아들인 것이다. 아이들은 요란법석이었다.
“근데 지영이가 3일 만에 찬 거는 좀 너무했지 않냐?”
“지영이가 모쏠 탈출할려고 아무나 사귄 거래.”
“진규가 엄청 잘해주던데.”
편지를 받아들고 부들부들하는 진규에게 누군가 기름을 부었다.
“진규야 현우가 지영이한테 시킨 거래.”
“그래서 지영이가 헤어지자고 한 듯.”
“헐 완전 진규 놀아났네.”
진규는 자리로 돌아와 색연필을 두 손에 쥐고 뚝 분질렀다. 쉬는 시간 잠시 교실을 비웠던 내가 돌아오자 아이들은 흥분해서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선생님! 진규가 현우랑 맞짱 뜬대요!”
“현우가 지영이한테 시킨 거래요!”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진규는 분노에 차 씩씩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고 조용히 진규를 불러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현우가 지영이한테 헤어지자고 말하라고 했대요.”
“너가 직접 확인했어?”
“아니요. 애들이 그랬어요.”
“그럼 정확하지도 않은데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지.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지영이가 시켰다고 너한테 말했다는 것도 웃기다.”
진규는 대답이 없다.
“지영이 때문에 현우와 싸운다면 지영이는 더 실망할 거야.”
“상관없어요.”
“너 지영이 많이 좋아해?”
“...네.”
크... 사나이의 진심에 나는 탄복할 뻔하다가 정신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싸움은 안 돼.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
그리고 반 아이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너희, 진규 부추기지 마. 남의 애정사에는 끼어드는 거 아니야.”
아이들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다행히 진규는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추스렸다. 마냥 아이같던 진규가 좀 더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내심 대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마냥 웃기고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어른들이 하는 양이랑 꼭 닮았다. 아니, 어쩌면 어른보다 낫다. 가식 없고 솔직한 아이들은 부끄러움보다 내 마음과 사랑이 우선한다.
용기낸 고백, 연애의 달콤함,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하는 최선, 주변의 참견, 삼각관계의 씁쓸함, 이별의 아픔과 배신감.
아이들을 통해 우리를 보고 사랑을 본다. 재밌고 사랑스러운 7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