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담임으로 살아남기[에피소드 편]
1학년 담임으로 지낸 지 한 학기가 되어간다.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니 귀여워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일도 있고, 어른들이 보기에 황당한 장면들도 있었다. 몇 가지 이야기들을 엮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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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님의 관심이 필요해요!
쉬는 시간이 되면 선생님 책상 근처로 오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 태권도 가방 보여줄까요?”
태권도 도장에서 가방을 일괄적으로 바꾸어 주었나보다. 몇몇 아이들이 같은 말을 하고서야 왜 가방을 보여준다고 했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에는 맥락은 없지만 의미는 있다. 나중에라도 이야기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면 조금은 다행이다. 아이들이 하는 던지는 말을 이해하려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내가 조금 더 집중하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지금은 반성하지만 바쁜 일과 시간에는 하나하나 반응해 주지 못하기에 미안할 때가 많다. 맥락은 없지만 ‘들리게’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고마운 편에 속한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들릴랑 말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게다가 선생님과 3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럴 땐 울화통이 터지지만 내가 의자를 질질 끌고가 물어봐 준다.
“뭐라고?”
한 번에 이해하면 다행이지만 두 번 세 번 물어봐야 이해되는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무언가 끊임없이 말하고 싶어한다. 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싶은 아이들의 표현 방법이다. 말로 하지 않고 몸으로 하는 친구들도 있다. 조용히 옆에 와서 다리를 쫘악 찢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너무 조용히, 옆에서 그러고 있어 모르고 지나갈 뻔 한 적도 있다. 아이를 발견한 뒤,
“우와! OO이는 어떻게 그렇게 다리를 잘 찢어?”
과하게 응수해 주었다.
“발레학원 다녀요.”
여자아이가 씩 웃으며 만족한 얼굴로 자기 자리로 간다. 같은 시간, 발레학원에 다니는 여학생 두 세 명이 교실 앞으로 쓰~윽 나오고 있는게 보인다. 태권도를 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연신 태극 1장을 옆에서 해대는데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바쁘지만 ‘아는척’하고 넘어가주기. 선생님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겐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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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무도 찾지않는 ‘나를 찾아주세요’
우리 반 한 구석에 ‘나를 찾아주세요’바구니가 보인다. 안에는 연필, 지우개, 싸인펜 등등 아이들이 잃어버린 물건들이 가득하다. 조금은 아까운 물건들도 보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관심이 없다. 한가지 공통점은, 바구니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학기 초 학부모님들께 메시지를 보냈다. 작은 것 하나하나 모두에 이름을 표시해 달라고. 번거로웠겠지만 세심한 것 하나하나까지 이름을 붙여 주신 부모님들 덕분에 그 아이들은 물건을 잃어버려도 쉽사리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부모님들은 두 번 세 번 아이들의 학용품을 다시 사주셔야 했을 것이다.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어서인지 아이들 자체가 학용품에 큰 애착이 없다. 고민 끝에 ‘분실물 탐정’을 만들었다. 1인 1역할에서 이 친구는 분실물의 주인만 찾아준다. 몇 번 주인 찾아주기에 성공을 하기에 칭찬해 주었더니 해당 역할의 인기가 높아졌다. 자연히 분실물도 줄어들었다. 분실물을 줄이는 다른 한가지 방법은 책상 서랍 및 사물함, 가방 정리를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물건들의 짝을 맞추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3. ‘꾀’가 말짱한 아이들
급식 이후 학교 운동장에서 나가 놀아도 된다고 아이들에게 말한 뒤, 잘 놀고 있는지 살펴볼겸 급식소에서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운동장 한 켠에 놓여져있던 우유곽을 저 멀리서 달려오던 남자아이가 발로 있는 힘껏 찬다. 담겨있던 우유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내 눈에 띈 이상 그냥 보낼 수는 없기에 불러서 이야기한다. 덩치로 보니 우리 1학년 아이다.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니 1학년이라고 한다. 몇 반이냐고 물어보니 6반이라고 한다.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 이름이 없다고 한다.
“엥?”
엄마가 이름을 안 지어주셨단다. 너무 황당해서 다시 한번 물었더니 엄마가 바빠서 이름을 안지어 줬다고 한다. 당돌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좋은 말로 타일렀다. 이렇게 우유를 발로 차면 안 된다며 선생님이 같이 치워 줄테니 교실에 가서 걸레를 2개 가지고 오라고 하였다. 잠시 뒤 걸레 두 개를 들고 왔길래 함께 바닥에 펼쳐진 우유를 닦았다.
“선생님 근데 우유가 있는지 저는 몰랐어요!”
아이가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억울한 표정으로 자기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끝내 그 아이의 이름은 묻지 않았다. 방과 후에 6반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한참을 웃었다. 귀여운 녀석들. 1학년 아이들이지만 자기가 불리할 땐 꾀가 말짱해서 놀랄때가 있다.
4. 처치곤란 공짜 우유
강원도 내 초등학교는 소규모 학교일 경우 전교생이 우유 무상 급식이고 큰 학교의 경우 저학년은 우유를 무상으로 제공해 준다. 공짜라서인지 늘 우유통에 서너개씩 남는다. 몇 번은 우유를 가져가지 않은 아이들이 있길레 한 명 한 명 확인해서 겨우 주인을 찾아주었다. 우유를 먹고 나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기에 함부로 우유 먹기를 강요할 수도 없다. 날씨가 무더운 여름이면 집으로 가져가는 것도 건강상 문제의 소지가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가방을 축구공 삼아 발로 뻥뻥 차고 다니는 1학년 아이들 가방에 우유를 넣어 보내는 것은 우유 폭발 대참사의 민원 발생 소지가 다분한 일이다. 여러모로 고민이 되었는데 결국 자율적으로 먹는 것으로 하였다. 대신 우유를 먹기 싫은 날은 우유통의 우유를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을 약속했다. 하교 할 때 쯤이면 우유가 3~4개 놓여있었다.
해결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우유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생님이 옛날에는 키가 정말 작았거든, 그래서 힘도 약하고 친구들한테 괴롭힘도 당하고 여간 힘든게 아니었어. 그런데 우유를 먹기 시작하면서 말이야...”
한껏 부풀려 우유를 먹고 몸이 튼튼해졌다며 키도 많이 컸다고 까치발을 들고 알통도 보여주었다. 이야기가 끝나고선 아이들에게 물었다.
“혹시 너희들 중에 튼튼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은 사람 없니?”
그날 이유로 남는 우유 문제는 해결되었다.
5. 인사는 나의 힘! 아니, 너희들의 힘!
아침이 되면 우리 반은 앞문으로 들어와 선생님께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며 시작한다. 쥐꼬리만한 목소리로 인사하거나, 삐딱하게 하는 둥 마는 둥 인사하면 제대로 된 인사를 할 때까지 담임교사와 다시 인사한다(인사에 진심인 편). 아이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소위 말하는 ‘인사만 잘해도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 때문이다. 인사는 모든 것의 기본이고 시작이다. 누군가의 첫인상이 결정되는데 불과 몇 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첫 만남에서의 인사는 그 중요성이 대단할 것이다. 아이들 중 유달리 인간관계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 섣불리 주변 친구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관계맺기의 좋은 시작 방법은 인사하기이다. 그 친구 혼자만 인사하면 쑥스럽기에, 우리 반 전체가 서로 인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담임교사에게 인사를 한 뒤, 자연스럽게 교실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안녕?’ 짧은 순간이지만 아이들끼리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며 이후 친구들끼리의 관계를 발전 시킬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확률이 아주 높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강조한다. 며칠 간 학교에 나오지 않은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의 안부를 물어주는 것.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매번 강조하는 내용이다. 친구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표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기본적이지만 의외로 잘 안되는 아이들이 많다. 매번 강조하지만 우리 반도 친구끼리 인사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친구의 안부를 물어보고 걱정하는 일이 1학년 아이들에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학부모님들께도 이런 내용을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가정과 학교에서 모두 같은 방향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눈썹이 눈을 자꾸 찔러 눈수술을 하고 오랜만에 학교에 왔다.
“00야, 잘 갔다 왔어?”
“많이 아팠어?”
안부를 묻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