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극을 배우다 후기]벌써 2년, 지금 나에게 교육연극은?
180시간, 1년간의 긴 배움의 기록을 3년 만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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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사실 지난주에 올린 ‘교육연극 지도자 과정 수료’는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배움을 마친 후 지금, 교육연극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교육연극을 배운 영향력은 나의 교실보다 나의 삶에 더 빠르게 찾아왔다. 1년의 교육연극지도자과정을 수료하고 다가온 2017학년도의 겨울방학, 나는 남편과 내 인생 첫 유럽 배낭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남편과 나의 여행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었다.
그 전까지 나는 ‘여행사’스러운 여행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몇 해 전 친구와 둘이서 간 해외여행을 준비할 때 나는 가이드 같았다. 여행을 가기 전날까지 검색의 검색을 거듭해서 나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블로그에 적어둔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대중교통을 타는 방법이나 간단한 현지어, 맛집과 그곳에서 시켜야 하는 메뉴를 파악했다. 혹시 문제가 생겼을 경우의 대안코스까지 거의 다 정해놓은 완벽한 시간표를 만들어 여행을 떠났었다. 그렇게 여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줄 알았다.
“여기 이 식당이 유명하대.”
“제일 많이 시키는 메뉴가 이거 이거래.”
“아 그 사진이 여기서 찍은 건가봐!”
나는 여행을 가기 전 열심히 블로그 등 SNS를 살펴보고, 핫플레이스에 가서 남들이 찍어둔 구도와 비슷한 사진을 남기고 오면 그 여행이 성공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과 결혼하고 나서 이런 여행 스타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남편은 남들과 같은 사진을 왜 찍느냐고 물었다. 띠용? 왜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답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마음에 꽂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누가 무얼 시키든지 상관없이 자신이 시키고 싶은 메뉴를 시키고 싶어했는데, 행여 그 음식이 별로 맛이 없어도 ‘푸하하하 이게 뭐냐’며 웃고 만다. 띠용??
심지어는 길을 헤매면서도 우리만의 길을 찾았다며 좋아한다.띠용????
남편의 여행 방식은 낯설었다. 남편의 방식대로 여행을 한다고 꼭 망하지는 않던데, 그래도 그대로 따르기가 불안했다. 실패할까봐, 그러니까 맛이 없고 볼 거 없고 바가지쓸까봐 걱정됐다. 그래서 이번 유럽여행은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교육연극을배우다05]교육연극, 이론 수업도 있어요에서도 얘기한 적 있듯, 교육연극지도자과정의 1학기 필수 수업은 주로 정해진 책을 미리 읽고 와서 토론을 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교수님과 배우게 된 2학기의 선택과목 수업에서도 이런 자유로운 토론의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예술수업인 교육연극을 배우는 과정답게, 논리를 따지는 것보다는 평소에 못 보던 질문을 던지고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수업에서 ‘블로그에서 검증된 곳들만을 찾아다니는 여행은 현실에서 허구를 쫓는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현실은 완벽할 수 없는데, 남들이 좋아 보이는 사진만 모아놓은 모습인 허구를 쫓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완전히 나의 모습이었다. 부끄러웠다. '실패할 여유가 없이 살았던 나의 삶의 습관이야'라는 변명이 떠올랐지만, 미래에 나에게 계속 이런 습관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허구를 쫓으며 현실에서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여행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자주 째즈연주를 듣는 자리를 찾았지만 '음~ 분위기 좋네~'라는 생각 이후에 더 이상 깊은 감상은 하지 못하고 '막힌 느낌'이 들곤 했었다. 특히 옆에서 누군가(주로 남편) 더 깊이 빠져들고 있을 때 더욱 나에게는 '벽이 있다'고 느껴졌다. 미술관에 가서 미술작품을 볼 때도 그러했다. 예술을 접할 때뿐만 아니라, 그냥 ‘내가 내 하루의 삶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던 일상 속 막힌 느낌까지 다 설명이 되었다. 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끼워 맞춰져 있는 것에만 익숙했던 것이다.
겨울방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 첫 유럽배낭여행은 생각만해도 너무나 기대되고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냥 지금처럼 익숙한 대로 하루를 살고, 주말을 보내고, 삶과 예술을 느끼다보면 일상이 그러하듯 결국 여행조차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은 뻔했다.
나에게 익숙한 이 옷을 벗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질문하며 살고, 낯설게 느끼며 사는 것은 참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를 살아가며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 가보고 싶다는 기대가 들었다.
그렇게 나에 대한 성찰을 계속 해왔다. 특히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데 아주 좋은 도구였다. 주로 블로그에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곤 했는데, 사실 한동안은 좋은 것만 기록하고 싶거나 해소된 감정만 글로 남기고 싶은 가면을 벗기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는 나 스스로 ‘셀프상담’이라고 칭할 정도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쓰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마음이 복작복작하여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을 때 셀프상담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글쓰기 전에 깨닫지 못했던 내 감정의 이유를 알아가기도 하고,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게 깨닫게 된 내 모습은 꽤나 찌질한 날이 많다. 하지만 그게 내 모습임을 인정하고, 나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나면 일상을 조금 더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에듀콜라에서도 교육연극 배우는 이야기도 열심히 썼다. 육아휴직 중에 이 글을 마무리짓게 될 줄은 몰랐다.(에듀콜라에 쓴 25개의 글 중 14개가 아기를 낳은 후 육아휴직 중인 올해 올린 글이다.) 당연히, 한가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기는 나랑 항상 붙어있어도 또 계속 붙어있기만을 원한다. 내가 굳이 시간을 내고 누군가와 협의하지 않으면 친구를 만나 밥을 먹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틈만 나도 치열하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 물었다. 그 답은 글쓰기일 때가 많았다. 에듀콜라에 연재하기 시작하며 약속했던 이 글을 꼭 마무리하고 싶었다. 책임감 때문일 뿐 아니라,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고 재밌는 일이기에 글을 쓰는 힘이 났다. 연재 글을 쓰기 위해 2년 전에 블로그에 나 혼자 보기 위해 써둔 거친 글을 다시 보는데, 마치 그 때로 돌아간 듯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이 교육연극을 배우는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는지 다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나에게 질문하고, 답하고, 내 마음을 알아채고 있는 이 모습이 교육연극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바라왔던 바로 그 모습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렇게 교육연극은 나의 삶에 굵직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의 나의 삶에도 영향을 주었다. 학생들이 풀어질까봐 걱정되어 놀이를 주저하기 보다는, 놀이를 통해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열는 시간을 자주 가졌고 , 적극적으로 놀이를 활용해 학생들의 솔직한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국어, 사회 과목 등에서 엮을 수 있는 주제가 나타나면 연극을 활용하여 학생들이 보다 참여하고 빠져들 수 있는 수업을 구상했다.
더 중요한 것은 연극 수업을 몇 번 했는가보다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교대에서 실습을 하며 수업을 준비할 때 지도안이나 형식으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교육연극을 배우며 틀보다 먼저 수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를 생각하며 수업을 준비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피스모모라는 시민단체를 통해 평화교육에 대해서 조금씩 배우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여기서도 교육연극 이론 수업에서 들었던 ‘파울로 프레이리’와 ‘아우구스또 보알’의 교육철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하여서 반가웠다. 앞으로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내년에는 복직을 한다. 물론 두렵다.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믿는다. 교육연극을 처음 배웠을 때 낯설음 속에서 느꼈던 떨림을 기억한다.([교육연극을 배우다03] 3월 2일, 첫날)교육연극 수업이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것 같아도 눈 딱 감고 안경을 들어 쓰고 수업을 시작했던 순간도.([교육연극을 배우다09] 눈 딱 감고 한 번, 해보자!) 아직 교사도 적응 못 했는데 엄마라는 이름까지 더해져서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만만하지 않겠지만, 만만하지 않으니 더 신기한 일들도 많겠지. 교육연극을 통해 배운 것처럼, 다시 교실에 돌아가서도 지금 여기에서의 나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서울교대 교육연극지도교사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적는 글입니다. 제가 기록한 내용들이 모두 교육연극의 정설이나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엄마 글 쓸 수 있게 쿨쿨 잠이 들어준 소중한 나의 아가와,
그 옆에서 같이 잠들어준 남편에게 특별히 고맙습니다:-)
에듀콜라 필진분들, 동료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교육연극 배우는 이야기, 진짜 끝!
수업에서 교육연극 활용한 이야기들 나누고 싶어지면 번외로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