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교실16] 선생이 공개하는 급식검사 통과비법
나의 친애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수년간 식판 검사를 하면서 여러분들의 숨은 재주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먹기 싫은 잔반을 들키지 않고 선생님의 '합격' 사인을 받아내는 기술이다. 성격에 따라 유형도 다양하였다. 언제나 모든 음식을 다 싹쓸이하는 급식계의 하이에나들은 아래 유형에서 뺐다.
뻔뻔형 - 당당하게 잔반을 남기고 온다. 자신감 있게 '여기요!'라고 외친다. 돌려보내면 몇 개 먹고 또 남겨온다.
소심형 - 멀리서 교사 눈치를 보며 다가온다. 목소리가 힘이 없다. 식판을 위로 들거나 뒤로 빼내는 동작을 한다. 딴에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급식실에서 가장 의심스럽게 행동한다.
협상형 - 구체적인 근거를 내밀며 '통과'를 요구한다. 보통 알레르기, 원래 못 먹는 성격, 음식과 관련된 나쁜 기억, 컨디션 난조 등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 몸에 맞지 않거나 병과 관련이 있을 경우 인정이 되나 나머지는 얄짤없다.
그림자형 - 검사를 받는지 안 받는지 알 수 없다. 기분따라 오고 간다. 차분한 표정과 주변 친구들의 반응으로 보아서는 다 먹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기 배식에서는 급식판이 앞으로 야채 배식에서는 급식판이 뒤로 간다.
어느 분야나 고수들은 존재하는 법. 본인의 손을 거쳐간 여러 학생들 중 단연 최고는 삼척시 J 초등학교의 김ㅇ수, 손ㅇ훈 학생이었다. 급식 검사 맡기의 달인 김ㅇ수& 손ㅇ훈 콤비의 5대 비법을 배워보자.
제1초식, 양념에 김치를 버무려라. 김치를 잘게 쪼개어 쌈장, 고추장과 섞어라. 선생님은 분명 양념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통과를 외친다.
제2초식, 국그릇 바닥에 야채를 붙여라. 국에 파가 들어있어 고민인가? 양파도 있다고? 걱정 마시라. 야채를 얇게 펴자. 그리고 국그릇 바닥에 붙여라. 다른 친구가 식판 검사를 받고 있을 때가 기회이다. 은근슬쩍 친구 옆에 서서 식판을 들고 있자. 정신없는 선생님은 무조건 오케이다.
제3초식, 으깰 수 있다면 최대한 으깨라. 두부, 청국장, 된장, 감자 같이 분해된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식품에 사용하면 좋은 기술이다. 숟가락을 이용해 음식을 분해하라. 작아진 덩어리들을 식판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치하면 끝. 지나치게 음식을 나누어 놓은듯한 느낌이 든다면 하수의 식판이다. 잘 수련하면 웬만한 음식은 이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제4초식, 국물 속에 감춰라. 깊은 물은 본디 바닥을 보이지 않는다. 우선 잔반 두께를 얇게 만들어라. 높이를 줄여야만 성공확률이 올라간다. 국은 건더기 위주로 먹고 국물은 보존한다. 국물이 존재해야만 가능한 기술이다. 담임 선생님의 지도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국물까지 비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남겨진 국물에 반찬을 담그고 조심스레 검사를 받아라. 좌우로 흔들리면 반찬이 드러나 낭패를 볼 수 있으므로 주의하자. 국물이 너무 맛있을 경우 충분히 먹은 뒤 보리차를 받아와 국칸에 보충하는 꼼수도 있다.
제5초식, 시간이 약이다. 고수의 수준을 뛰어넘어 도인 경지에 이르면 깨닫게 되는 궁극기이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자가 가장 뛰어나다 하였다. 급식판 검사는 선생님이 있어야 성립되는 싸움! 상대가 퇴장하고 나면 승리는 당연히 남은 자의 몫이다. 테이블 구석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풍경과 하나가 되자. 선생님은 남아있는 당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리를 뜰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흠이 될 수 있으나 때로는 점심식사를 천천히 음미하는 여유도 가져보자.
잘 먹는 그대들은 부모님의 기쁨이요 교사들의 행복이다. 지금껏 골고루 먹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는가? 살다보면 메뉴 선택에 있어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고 싶은 날도 있을터이다. 이에 급식판 검사 특급 비밀을 전수하노니 학교 생활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그대들의 영원한 급식마스터 이준수 선생 씀 -
- 깜짝 퀴즈. 맞추면 당신도 초딩입맛인증!
문제 : 다음 중 옳지 않은 음식을 고르시오.(문제에 오류는 없습니다. 이의신청 거절합니다.)
1) 호박전 2) 파전 3) 오렌지 4) 김치
힌트 : 양이 많아요